언어의 품격을 잃은 페미니즘

'빻은 판결'과 '초라한 남근다발'

타인의 의견에 대해 동의와 비판은 자유다. 그러나 ’빻았다‘는 혐오표현이나, ’추하기 그지없다‘는 모욕적인 발언은 법률가로서,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모두 실격인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쓴다는 건, 혐오와 싸운다면서 오히려 혐오에 물든 페미니즘 운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안희정 유죄 주장 여성변호사의 언어: “1심 재판부의 빻은 판단”, “민주원씨의 추하기 그지없는 글”

안희정 전 지사의 유죄를 주장하는 한 여성 변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안희정 전 지사의 판결에 대해 쓴 자신의 판례평석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112호에 실린다는 소식이다. 이 판례평석은 곧 출간될 <사법정의와 여성>에도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다. 한국의 진보적 법률가단체의 대표격인 민변은 안희정 전 지사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하며, 항소심 판결을 앞둔 2018년 11월 28일에 산하 기구인 여성인권위원회 명의로 ‘안희정 전 지사 항소심 의견서’를 발표한 바 있다.(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의견서의 문제는 [우먼스플레인] #19: 안희정 ‘아직’ 유죄 아닙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기본권 어디로 갔나요? 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 여성변호사는 자신이 쓴 해당 판례평석에 법리적 이야기는 거의 없으며, 뒤로 갈수록 자신의 글에서 “1심 재판부의 ‘빻은’ 판단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는 것이 보여 좀 민망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어 안희정 전 지사의 아내 민주원씨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가리켜 “변호인의견서를 따다 쓴 듯한 민주원씨의 ‘추하기 그지없는’ 페이스북 포스팅글”이라며 폄훼한다.(해당 변호사의 블로그)

H변호사의 블로그 글

 

’빻은‘이라는 말은 절구공이로 찍은 듯이 뭉개지고 추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일베나 워마드, 메갈리아 등에서 뇌가 빻았다, 얼굴이 빻았다 등 극단적인 여혐, 남혐 행위에 동원되는 표현이다. 앞으로 재판에서 만날 수도 있는 동종업계의 법률가들을 향한 말로는 매우 부적절하다. 평균의 교양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개적으로 쓰지 않는 표현을, 하물며 진보를 표방하는 법률가가 무작위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공개 글에 쓴다는 사실이 놀랍다.

민주원씨의 글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다. 민주원씨는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며, 사건의 관련자로서 재판의 증인으로도 나선 바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희정 전 지사 재판에 대해 자기 나름의 근거를 들어 주장을 전개했다. 페미니스트와 여성운동단체는 일제히 민주원씨의 글을 2차 가해라 비난하며 해당 글을 삭제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물리력을 동원해 타인의 의사표현을 막는 비민주적 행위다. 이 여성변호사는 정당한 근거 없이 민주원씨의 글을 ’추하기 그지없다‘고 모욕한다.

타인의 의견에 대해 동의와 비판은 자유다. 그러나 ’빻았다‘는 혐오표현이나, ’추하기 그지없다‘는 모욕적인 발언은 법률가로서,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모두 실격인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쓴다는 건, 혐오와 싸운다면서 오히려 혐오에 물든 페미니즘 운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숙명여대 페미니스트 학생들의 언어: “초라한 남근다발들의 발악”

최근 숙명여대에서는 한 비정규직 강사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로 수업에서 잘리는 일이 벌어졌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에 ’바닥을 보고 걷는 남자‘라는 문구가 써있는 사진을 올리면서 쓴 글이 문제가 됐다. 해당 강사는 자신은 노출이 있는 옷이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면 바닥을 보고 걷는다고 썼다. 치한이나 변태로 오해받지 않기 위함이며, 자신은 여대에서 수업을 하므로 마찬가지로 그런 학생들을 볼 때 바닥을 보고 걷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혹시 인사를 못받더라도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말로 끝맺는다.

숙명여대의 학생들은 이 강사의 글이 여성혐오이며, 학생들을 성적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근거라며 해당강사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 강사는 즉각 사과하고 글을 내렸지만, 학과의 정규직 교수들은 학과 교수회의를 통해 해당 강사의 수업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태는 대학의 강사라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불안정한 노동현실을 보여준다.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것도 아니며, 수업시간에 한 발언도 아니고,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문구도 없는 개인적인 SNS 글을 문제 삼아 간단히 수업을 자른 일은, 학생과 정규직 교수들이 행한 전형적인 직장갑질이다. 일방적으로 규정한 여성혐오, 성적대상화 라는 개념, 이에 호응한 정규직 교수들, 노동권 문제임에도 침묵하는 진보. 오늘날 페미니즘이 어떻게 노동권 위에 군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선옥TV] 노동권 위에 군림하는 페미니스트(feat. 숙대 비정규직 강사 사태)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숙명여대의 페미니스트 학생들은 해당 강사의 수업을 자른 후에도 자신들이 피해자라 주장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적인 혐오와 조롱, 비하, 멸시의 표현을 적나라하게 사용한다.

“기자들이 여성대학교를 물어뜯고 싶어서 안달 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 언론은 반복적으로 집합된 ’초라한 남근다발‘이 되어 여성혐오적인 시선을 토대로’…”

“하지만 숙명인의 여성주의를 향한 물결은 초라한 남근다발의 발악으로는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 표현이 혐오인 걸 모르지 않는다. 남성혐오는 혐오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문제의식 없이 사용한다. 혐오를 규탄한다면서 혐오의 언어를 쓰고, 남성 일반에 대한 성적 모욕과 비하, 혐오의 언어를 공식 문서에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운동의 현주소다. 위 여성변호사와 숙명여대 페미니스트 학생들의 사례는 일부다. 일부의 행위만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일부가 아니라, 더 많은 사례들이 있으나 일부 사례를 적었다는 의미다.

언어의 품격을 잃어버린 운동, 동료시민을 모욕하는 페미니스트가 실천하는 반혐오 운동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오늘날 이들이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혐오와 모욕의 표현들은 더 이상 전복적이거나 해방의 언어가 아니다. 그냥 동료시민에 대한 혐오와 모욕으로 기능한다.

개인이든 운동이든, 당신이 쓰는 언어가 결국 당신과 당신의 운동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