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옥의 눈] 사라진 ‘피해자’

이번 정의연 사태에서 여성 운동가들은 미투 운동을 떠받쳐 온 두 기둥인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논리가 그간 얼마나 선택적으로 작동해 왔으며, 허약한 논리인지 역설적으로 입증했다.

 

주간경향 연재-15(원본 링크)

오랜 시간 여성운동에 동참한 친구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로 침울해졌다.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정리해보니, 문제가 있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욕을 해도 내가 하고 싶지 검찰의 손에 넘어가는 건 싫은 마음이라고 했다. 호의를 가진 처지에서는 납득 가능한 일들이 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처벌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울함의 근본 원인은 과연 우리가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정의연 사태는 침묵하고 있는 우군들에게 아픈 질문을 던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성운동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한국 최초의 미투 운동가라 칭했다. 그간 미투 운동을 지탱해 온 두 가지 기둥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론’이었다. 성범죄 사건에서 여성 운동가들은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는 시도와 무분별한 피해자 비난을 구분하지 않았다. 사실관계에 대한 의문과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반론은 두 개념에 의해 모두 기각당했다. 폭로자를 존중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양립할 수 없었다. 때론 일관되지 못한 피해자의 주장, 평소 피해자의 행동 양태, 증언과 일치하지 않는 정황들에 대한 반론이 나올 때면 전형적인 피해자의 틀에 맞추지 말라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도 2차 가해라 억압해왔다.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의 회계 관리와 운동방식을 비판하며 수요시위 불참을 선언하는 첫 기자회견을 하자, 할머니와 함께했던 여성 운동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 “원래 그런 분이었다.”, “배후에 정의연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미투 운동에서 그간 자신들이 비난해 왔던 피해자에 대한 공격 유형을 집대성한 말들이다. 최초의 미투 활동가라 명명한 할머니를 향한 것이기에 더 잔인하고, 피해자의 기억이 곧 진실이자 증거였던 여성운동의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발언들이다.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 후 34개 여성단체는 신속하게 정의연을 지지한다는 연대성명을 발표했다. 언제나 피해자의 곁을 지키겠다던 여성 운동가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동료 여성 운동가의 편에 섰다. 이들은 이 성명서에서조차 위안부 운동이 최초의 미투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폭로자가 없는 미투 운동이란 성립이 불가능한데, 운동가와 운동의 대의만 남고 피해자인 할머니의 존재는 사라졌다.

할머니야말로 피해자다움의 틀을 깨트리는 용기를 냈지만 어떤 여성 운동가도 할머니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말들에서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이번 정의연 사태에서 여성 운동가들은 미투 운동을 떠받쳐 온 두 기둥인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논리가 그간 얼마나 선택적으로 작동해 왔으며, 허약한 논리인지 역설적으로 입증했다.

내 편인 피해자, 내 운동에 필요한 피해자가 아닐 때 순식간에 위협받는 피해자라는 지위. 피해자를 위해 운동이 존재하는지, 운동을 위해 피해자가 필요한 것인지, 34개 단체의 여성 운동가들에게 묻고 싶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주간경향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