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사태를 돌아보다

여성운동의 반성적 성찰/ 여성가족부의 직무유기/ 그리고 '민주시민바우처' 정책제언: 하태경 의원실주관 토론회 <정의기억연대 사태의 시사점과 위안부 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 발제문

2020년 6월19일(금) 국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약간 수정하여 올립니다. 

 

 

정의연 사태를 돌아보다: 여성운동의 반성적 성찰과 여성가족부가 할 일 & 민주시민바우처 정책제언

이선옥(작가/이선옥닷컴 대표)

들어가며
위안부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폭로의 파장이 컸던 이유는 폭로자가 단순한 내부고발자를 넘어 운동의 상징인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관심은 적었으나 운동사회 안에서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던 위안부운동은 삽시간에 전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정의연 사태는 회계부정 문제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으나 여러 면에서 시사점을 던지는 사건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본래 시민운동의 기본이어야 하지만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어용화’되고 있다. 보수세력은 시민운동단체의 외피를 두른 관변단체로 보수정권 하에서 연명해왔고, 진보진영은 민관거버넌스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내려주는 사업비에 의존하는 구조가 되었다. 정부의 성격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과 가까운 시민운동단체는 인재를 파견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정치적 위상을 높여왔다.

한편, 이렇게 진영으로 나뉜 시민운동 안에서도 정대협과 정의연은 독특한 위상을 지녔다. 위안부 피해자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 차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므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그 대의를 부정하지 못한다. 박근혜 정권 하의 외교부도 정대협 대표를 만나 주요정책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만큼, 정대협과 정의연은 단일 쟁점 사안 시민운동으로는 준정부기관 수준의 지위를 가진 단체였다. 이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고, 비판받지 않는 성역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피해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조직한 단체였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피해자는 힘이 없지만 조직화된 피해자는 운동의 동력이요 자산이 된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피해자라는 상징을 독점해 안티세력 없고, 감시세력 없고, 국민적 지지와 동정을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오늘날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역으로 그 원동력인 할머니 당사자의 폭로가 아니었다면 이런 견고함은 쉽게 드러나지도,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1.여성운동 스스로 파탄낸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논리

위안부 운동이 최초의 미투운동이라는 여성단체들

한국사회의 여성운동단체를 망라했다고 할 수 있는 34개 여성단체 운동가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가 있고 난 후 신속하게 정의연의 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 성명에서도 위안부 운동은 최초의 미투운동이라 규정하고 있다.

 

[성명]

최초의 미투운동이었던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우리의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과 전시성폭력 근절을 위하여 1990년 수많은 여성단체가 모여 결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는 1991년 김학순님의 용기 있는 증언 이후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전 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이자 여성평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활동해왔다.

그동안 피해생존자들은 여성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운동가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참담함을 고발했고, 그로인해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에 대항하는 대표적인 운동이자 여성평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여성들과 민주적 시민들이 함께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군 성노예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제도화되고 악랄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이러한 범죄의 책임을 피해생존자에게 지움으로, 피해생존자의 증언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은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시작될 수 있었다. 피해생존자들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지나 온 30여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에 평화비가 세워졌고, 한국 정부는 8월 14일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하는 등 많은 변화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 성노예제를 부정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는 조직화된 제도였고 수 십 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역사의 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정의기억연대와 몇몇 특정인이 만들어 온 운동이 아니다. 그들의 헌신과 노고를 기억해야겠지만 한국의 여성운동과 평화운동, 학계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의 학계와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어 왔으며 전 세계가 이 ‘정의’와 ‘진실’에 조응했기에 가능했다.

우리들은 국내 최초의 미투운동이었던 일본군‘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정부와 시민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연결되어 있으며 일본군 성노예제를 가능하게 했던 부정의가 지금도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우리 여성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단단하게 연대해 갈 것이다.

2020년 5월 12일

한국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기독여민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부산성폭력상담소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천안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미투운동은 본래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범죄를 고발함으로써 권력구조를 드러내고 다른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는 운동이었다.(그 방식의 위험성과 위헌성에 대해서는 논외로 한다) 미투운동이 파급력을 가진 이유도 가상이 아닌, 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피해자’에 있다.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든 종류의 성폭력 폭로사건에도 미투를 붙일 정도로 의미가 확장되고 퇴색되었지만,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고 나선 점에서 여성운동가들은 위안부 운동을 미투운동이라 규정한다.

미투운동에서 폭로 당사자는 곧 미투운동가가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직화되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들은 운동가의 지위에는 속하지 못한 파편화된 피해자가 된다. 본래 미투운동의 정의와 위안부 운동은 여러 면에서 다르고, 여성운동가들이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미투운동이라는 규정에 동의를 구했는지도 알 수 없다. 여성단체가 개념의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제기는 논의할 장이 없다.

미투운동을 지탱하는 핵심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논리다. 미투는 사실상 피해자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피해자가 있어야 지원과 지지운동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지위를 방어하고 보존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이를 지탱하는 게 2차가해 논리였다.
그러나 위안부 운동을 미투운동이라 칭하고 이를 강력하게 지지해오던 여성단체들은 최초 성명서에서 피해당사자이며 운동가인 할머니가 제기한 문제에는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중단을 요구한 수요시위를 오히려 강행하며, “국내 최초의 미투운동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문제가 될 때마다 원래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해왔다. 그러나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려는 태도’ 정도로 이를 해석한다 해도 이들의 대응에 피해자 중심주의는 없었다.

여성운동가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수요시위 중단 요구에 대해 수요시위 강행으로 답했고, 사과도 해명도 없이 운동의 정당성만을 강조했다. 한두 차례 수요시위를 중단하더라도 할머니의 문제제기가 왜 나왔는지 대화와 점검을 통해 자신들 운동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을 해야 했다.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피해자보다 정의연으로 상징되는 자신들의 운동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시민은 없고 대의만 남은 시민운동

시민운동 진영도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신속하게 정의연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의연 운동이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큰 자산이며, 시민들의 선한 의지를 대변하고 결집해왔는데 이번 문제제기가 악의에 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결국 악의에 봉사한 일로 귀결되었다. 사건의 부정적 결과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평소 자신들의 주장과 위배된다. 이런 지적을 하면 이들은 피해자(할머니) 탓을 한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 탓이 아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려 할 때마다, 그게 결국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2차 가해 논리라며 비난해왔던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 과연 피해당사자인 할머니가 여성단체와 시민운동 진영의 성명서와 집회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지, 늘상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과 지지를 요구했던 이들은 할머니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았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랬다면 아래의 고압적인 성명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피해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온전한 해결과 더 나은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건설적인 비판을 침소봉대하여 이 운동의 목표와 성과를 폄훼하고 공격하는 빌미로 삼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외부를 향해서는 늘상 변화와 성찰을 요구하던 시민운동은 정작 자신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용납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다. 정대협과 정의연이야말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단체였다. 그러나 정의연 사태에서 피해자는 어떤 존재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논리는 여성운동가들과 시민운동가들에 의해 파탄났다.

적어도 위안부 운동을 미투운동이라 규정하려면 미투운동을 지탱해 온 자신들의 논리가 얼마나 허약했는지, 그간의 미투운동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폭력적으로 억압해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2.여성가족부는 왜 존재하는가?

여성가족부의 직무유기와 오만함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정의연을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위상 덕에 여성가족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이자, 정대협과 정의연에 상당액의 국고를 지원하고 있음에도 정의연의 비위 의혹에 개입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숫자는 많지 않다. 이들에게 지원된 국고가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할머니들 전수를 상담해 그간 지원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운동단체가 매개자 역할을 정확하게 했는지 조사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정의연이 인정한 회계부실처리 사안만으로도 당장 국고 집행을 중단하고 감사를 통해 부당지원한 국고는 환수하고, 적절한 책임을 지도록 했어야 한다. 지금까지 여성가족부가 이런 조치를 하고 있다는 말은 없다.

여와 야가 대립하고, 시민운동과 여당의 지지기반이 비슷한 상황, 특히 여성운동진영과 여성가족부의 친밀한 인적 연계 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의 진영논리를 감안할 수는 있다. 현 야권도 만일 자신들과 친밀한 단체에 문제가 생겼다면 좀 더 관용적인 태도로 방어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내 편이기에 강도를 달리해 살살 때리는 것과 아예 때리지 않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행정부로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여가부는 사태 초반 주무부처로서 자신들의 관리감독 소홀 문제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후속 조치에 나서는 대신, 야당 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는 거부하고, 적극적인 대응도 하지 않았다. 여가부의 예산이 집행된 정의연 사업보고서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 관련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뒤늦게 할머니들의 개인정보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기술적인 문제였다면 당시에도 얼마든 가능한 해결책이 있었다.

여성가족부는 정의연에 책정된 하반기 예산집행도 계획대로 하게 될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만일 현재의 야당이 집권 세력일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과연 가능했을 대응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의연과 정대협은 지금 스스로가 인정한 회계 누락만 해도 수억원이 넘으며, 검찰의 수사대상이다. 나눔의집 비리 의혹이 터지고 경기도의 이재명 지사는 즉각 조사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헌신은 존중하되 책임은 분명하게 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검찰 수사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 또한 분명치 않다. 검찰 수사결과 기소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재판 결과를 또 기다리겠다는 것인지, 재판은 사실상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럼 여성가족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인지, 최근의 기자회견에서도 뚜렷한 입장이 없다.

행정권력의 힘은 막강하다. 주무부처의 의지만 있다면 수사기관과는 별도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책임을 방기하며 사실상 정의연을 비호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해야 할 행정부가 왜 굳이 이런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인가?

정의연 뿐 아니라 여성단체들에 지원된 사업비 관리감독 전수조사 필요

여가부의 관리부실과 후속대책의 소극성은 정대협과 정의연이 많은 여성운동 대표들을 배출한 기관이란 점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이번 정의연 사태에 수십 개 단체가 신속하고 일사분란한 대응한 것에서 보듯 끈끈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운동과 달리 여성운동의 대표들은 정치권과 관료사회에 진출해서도 여성운동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향이 크다. 전임 진선미 장관은 재임시절 국감에서 야당의원이 여성편향적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자 “여성가족위원회에 그런 우려를 전달하시다니 굉장히 용감하시다”며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여성운동의 요구로 반영되고 있는 여성정책들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전하는 일이 용감한 행위가 될만큼 여성운동은 비판의 성역이 되었다.

전국의 여성단체들에 지원된 국고에 대해 사업비 사용내역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구조는 여성운동이 확산될수록 성폭력, 성평등, 성차별, 인권과 같은 정책의제에 여성운동가들만의 배타적 참여와 전국적인 독점으로 이어졌다. 여성운동단체들은 중앙은 물론 전국의 지자체에 걸쳐 현재 산업이라 불릴만큼 커진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성교육, 성평등, 성차별 강의, 관련 행사, 개방형 공무원, 젠더거버넌스 등의 이름으로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고, 여성가족부와 산하기관은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보장하고, 사업비를 지원하며, 인력을 양성하는 배경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요즘처럼 페미니즘과 젠더라는 이름의 정책들이 속속 제도로 수용되는 상황에서 여성단체는 많은 국고를 지원받아 위탁사업을 수행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나,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여성가족부는 정의연 사태에서 보듯 제대로 관리감독의 의무를 하고 있지 않다. 여성가족부는 지금이라도 여성단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의혹을 털어내고 행정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조국 전 장관 사태 때도 양 진영 모두에서 논문저자 부정 등재에 대한 전수조사 요구가 나왔고 실제 가능했다. 유치원 비리사태가 터졌을 때도 시도교육청이 관할 유치원들에 대한 일제감사를 벌여 결국 입법까지 가능했다. 여성단체들의 비위 의혹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만일 상대진영의 단체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면 지금 정의연을 비호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이 나서서 즉각 전수조사를 통해 또 다른 회계부실과 유용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보수정당 쪽에서도 어찌된 일인지 전수조사의 필요성은 제기하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이 회계처리 문제에 소홀했다는 것은 정의연 사태가 터진 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의연과 정대협은 여러 사업을 통해 다른 여성운동단체와 연계해 사업비를 운용했다. 지역의 위안부운동단체는 정대협이 교부금의 배분권을 가지고 부당한 궈력을 휘둘렀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여성가족부가 먼저 전수조사를 천명하고 대대적인 지도감독에 나서야 할 일이다. 행정권력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썪기 마련이며,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여성운동단체들은 이미 막대한 정부예산의 지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력집단이다. 여성에게 취약한 면이 있다고 해서 여성운동가들과 여성운동단체가 약자는 아니다. 특히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운동가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사업을 집행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의식은 부족하다. 정의로운 운동을 하는 과정의 사소한 실수쯤으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여성가족부가 지금처럼 정의연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검찰과 다른부처의 조사결과를 지켜본 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국가기관이 아닌 여성운동의 집행기관으로서 존재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처럼 지원은 하면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견제받지 않고, 감시받지 않는 타락한 권력기관을 계속 배양하는 결과가 된다. 늘상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때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운동 단체가 아니다.

 

  1. 정책제언: 보조금 대신 민주시민 바우처제도로

국고를 지원하는 단체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의 강화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얘기해보자. 시민운동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독립성에서 온다. 그러나 지금의 시민운동은 보조금 운영단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의존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재야나 시민운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에서도 자본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민운동이 시민의 후원이 아닌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자체가 양립할 수 없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국가권력과 시민운동은 결탁해서는 안 되며, 시민운동단체는 자립하지 않고 국가의 돈을 받는 이상 국가와 결탁하는 것이 된다. 필요한 운동은 자신들이 후원금을 모아서 해야하는 게 당연하다.

또한 국가는 중립의 의무가 있다. 공직자의 구미에 맞는다는 이유로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예를 들어 위안부 운동에서 정대협에 대한 배타적 지원은 정대협이라는 단체의 운동 방식과, 소녀상으로 상징되는 위안부 운동의 한 갈래를 정부가 배타적으로 지원한 것이 된다–가 더 많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중립의무 위반일 뿐 아니라, 시민사회 공론장을 돈으로 왜곡하는 일이다. 국민들의 돈을 국가공직자 개인이나 관료들의 성향에 맞는 시민단체에 몰아주는 건 결국은 국가권력의 강탈에 해당한다. 여성운동단체들에 대한 독점적 지원도 같은 경우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의식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펼 수 있는 정책은 중립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의 보조금 예산을 국민 각자에게 민주시민금의 형태로 지원할 수 있다. 이는 현금이 아닌 바우처 형태로도 가능하다.

한 사람당 매달 5만원의 바우처를 지급해 이를 국민 각자가 원하는 시민단체를 후원하도록 한다면 국민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국가는 중립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다. 시민사회 공론장도 왜곡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국민 각자가 자기가 쓸 돈을 받아서 자발적으로 기부하게 하더라도 회계투명성은 강화해야 한다. 이런 제도 자체가 민주시민 의식을 주체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정책이다.

시민운동 단체들은 지금 국민의 세금을 먹으면서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정의연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아젠다를 발굴해야 하는 보수정당에서 이 영역에서 발상의 전환과 함께 과감한 정책 실행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한다. 물론 정치권 모두를 향한 제안이긴 하나, 보수정치권에서 먼저 관변단체와 결탁했던 관습을 과감하게 끊고 미래를 향한 정책 제안으로 다듬어보시길 제안한다. 각 부처와 지자체들이 지원하는 막대한 보조금이면 충분히 가능하며, 오히려 보조금들은 복지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단체를 위한 돈잔치가 아니라 진짜 국민을 위한 ‘돈잔치’를 벌일 수 있다. 정당은 국민 전체의 이득이 되는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 국가와 시민운동의 결탁으로 시민들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다수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정치세력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끝]


토론회 당일 발제 영상은 이선옥TV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