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존재, 남성

서울시가 코로나19 관련한 계도영상을 만들었다가 항의를 받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상은 본래 50대 여성의 사례였으나 주인공을 남성으로 바꿔 제작하면서 문제가 됐다. 실화가 바탕이라 해도 계몽을 위해 제작한 영상에서는 여러 요소를 바꿀 수 있으므로 예전같으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이다. 그동안 남성이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는 일은 흔했고 남성들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일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성별갈등이 일상화되면서 사회가 치르는 갈등비용은 커져만 간다.

그러면 안 되는 존재, 여성

서울시는 왜 주인공의 성별을 굳이 바꿔서 제작했을까? 보통 실화를 재구성할 때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직업이나 주변 환경을 각색하는 일은 있어도 성별을 바꾸지는 않는다. 추측컨대 지금처럼 ‘방역죄인’을 향한 사회적 비난이 높은 시기에 여성을 주범으로 묘사한 영상이 나왔을 경우 맞이할 비난을 비껴가려 한 게 아닐까 한다.

메르스 사태 때 여자를 바이러스 전파자로 묘사했다며 분노한 여성들이 메갈리아를 탄생시켰듯 나쁜일의 행위자로 여성을 묘사하는 것에 대해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매우 예민하다. 즉각 반발하고 이를 바꾸려 행동에 돌입한다.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서울시가 만든 유튜브영상에 대한 기사. 실제 여성 확진자를 남성 모델로 바꿔 논란이 됐다.

2019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제작한 데이트폭력 예방 공익광고도 페미니스트 진영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은 SNS와 칼럼, 기사들을 통해 폭력의 성별화된 구조를 보지 않고 여성을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로 묘사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해당 광고는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를 남녀 동수로 구성해 문제가 됐다. 성폭력범죄의 맥락을 보지 않은 기계적인 배치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규정한 데이트폭력을 보면 여성과 남성 모두 가해행위를 할 수 있다. 나는 데이트폭력이라는 새로운 폭력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녀들이 정의한 개념 안에서도 여성가해자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을 가해행위자로 묘사한 것을 비난한다. 존재할 수 있고, 실제 존재하는 가능성일지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여성의 나쁜짓은 맥락이 있는 구조의 문제이며, 여성을 나쁜짓의 행위자로 묘사하는 일은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성평등에 위배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결국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모든 사회적 표현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귀결된다.

 

데이트 폭력 예방광고에 여성 가해 사례를 넣었다고 비판하는 기사

 

그래도 되는 존재, 남성

반면 남성이 나쁜짓의 행위자로 상징되는 것에 남성들은 큰 거부감이나 관심이 없다. 이를 조직적으로 반대할 세력이 없으며, 남성 자신들조차 남성에 대한 차별이나 비하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당연하게 그’놈’이지만 이런 일에 항의하는 남성은 없다.

남성을 어떻게 묘사하든 관심이 없는 남성들은 당연히 나쁜짓의 행위자로 묘사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실제 존재하는 여성을 남성으로 바꾸게 된 기저에는 남성들이 이를 부당한 차별행위로 인식할 가능성이 낮고, 언론매체들 또한 남성에 대한 모욕에는 관심이 없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남성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고 그것이 일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묘사에 성별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며, 동물이나 무성의 존재로 묘사하는 우회로를 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안전하지는 않다. 여성 혹은 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동물이나 무성적 존재 또한 성차별 감별의 심판대에 놓이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은 ‘비가시적인 차별’을 예민하게 짚어내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예방광고에 쓰이는 공식 문구. ‘그놈 목소리’

 

경찰청은 얼마전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를 새로 제작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경을 상징하는 포순이가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한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비단 포순이 뿐 아니라 많은 상징들이 바뀌는 중이다. 경찰청이 새로 제작한 포순이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속눈썹을 없애고,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언뜻 보면 포돌이와 포순이가 구분되지 않는다.

포순이가 치마를 입어서 여경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일 뿐 입증된 바 없다. 여경에 대한 편견은 대림동 여경사건과 같은 현실의 사건을 통해 정립된다. 그러나 앞으로도 공공기관들은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러한 압력을 수용하고, 국가의 재정으로 효과를 확인할 수 없는 작업들을 할 것이다.

 

경찰청의 마스코트 포순이가 성인지감수성에 따라 바뀐 모습

 

스타부부와 연인이 등장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남자는 사고를 치고, 어린아이처럼 한심한 짓을 반복하는 교정대상으로 묘사된다. 아내는 남편이 아끼는 취미용품을 동의없이 내다 팔고, 남편의 사생활과 행동을 통제하지만 현명하고 사리분별력 있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스튜디오의 게스트들은 대부분 남자의 생활태도를 지적하고 현명한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는 어느 아내가 남편이 그토록 아끼는 게임기와 모니터를 동의 없이 팔아치우는 장면에서 분노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 안에서 이 행동은 철없는 남편의 행동을 교정하는 현명한 대책으로 칭찬받았다.

만일 어떤 남성연예인이 아내의 생활태도를 고치겠다며 취미활동용품, 그것도 고가의 물건을 동의없이 헐값에 내다파는 장면이 방영됐다면 페미니스트들은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매체를 위시한 언론들은 시대착오적이며 심각한 성차별을 예능으로 넘긴다며 성인지감수성 없는 남성과 해당 방송을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수년동안 반복되면서 이제는 어떤 성별도 자신의 성별에 대한 모욕을 참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모욕 아닌 것마저 모욕으로 느끼며 분노하기도 한다. 물론 그 조직적 힘에서 남성은 아직 여성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번 서울시의 코로나 영상 사건처럼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성별을 바꿔 갈등을 유발하는 대응이 계속되는 한 해결은 요원하다. 힘 있는 목소리에는 굴복하고, 문제가 없을만한 존재에게는 모욕을 행해도 된다는 인식에 기반해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그래도 되는 존재는 남성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바로 잡기 위해 남성에게도 폭력을 가한다면 결국 폭력의 피해자를 늘리는 일일 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온 사회가 미러링을 지지하며 남성혐오를 양산한 끝에 마주한 현실은, 결국 혐오의 총량이 늘어난 오늘의 한국사회라는 것에서 교훈을 얻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