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수의 ‘은근슬쩍’ 복귀?- 페미니즘 법정의 충실한 검찰이자 판관인 한겨레

여성과 남성에 대한 한겨레의 이중잣대

혹여 무혐의 처리가 됐다면 페미니스트들은 무혐의는 무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을 것이고, 만에 하나 재판까지 가서 무죄가 나오면 ‘성인지감수성 없는 남성권력 사법부’를 맹비난했을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논리 안에서 성범죄자로 지목된 남성은 어떤 사법적 판단을 받아도 가해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오달수의 복귀를 문제삼는 한겨레

 

또, 한겨레다. 여지 없다.

한겨레는 2년 전 개봉을 준비하다 미투 사건으로 뜻밖의 폭탄을 맞은 영화가 개봉을 결정하자 오달수의 복귀에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명백하게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복귀가 맞느냐는 것이다.

오달수 미투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내사종결 처리됐다. 한겨레는 오달수가 무혐의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사종결은 무혐의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내사종결은 무혐의가 아니다.

혹여 무혐의 처리가 됐다면 페미니스트들은 무혐의는 무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을 것이고, 만에 하나 재판까지 가서 무죄가 나오면 ‘성인지감수성 없는 남성권력 사법부’를 맹비난했을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논리 안에서 성범죄자로 지목된 남성은 어떤 사법적 판단을 받아도 가해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면 한겨레가 내사종결도, 무혐의도, 무죄도 아닌, 명백한 가해사실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여성 페미니스트에게 어떻게 면죄부를 주는지 살펴보자.

2018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운동을 벌이던 여성 미투활동가가 한 남성 시인에 대한 성폭행 사실 허위 폭로로 사법적 처벌을 받았다.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하며 별도의 섹션까지 마련한 한겨레는 그녀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녀는 여러 온라인 공간에서 허위미투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 무고죄로 유죄판결 받았다는 말들도 함께 유통됐다.
이들이 무고 가해자라고 칭한 것은 그녀가 한 시인을 성폭행범이라 온라인에 유포한 행위가 허위로 밝혀져 사법처리를 받은 사실을 일컬었던 말이다. 그녀 자신도 모를리 없고, 한겨레 또한 모를 수 없었던 사실이다. 그런데 한겨레21의 제목을 보자.

 

한겨레21의 기사. 모든 문제제기는 이들에게 백래시이다.

 

한겨레는 그녀의 행위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를 백래시라 칭한다. 그러면서 이를 ‘무고 낙인’이라 명하고 다음과 같은 그녀의 항변을 적극 실어준다.

“누구도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

매체도 인터뷰이도 참으로 남사스러운 제목이다. 그렇다. 누구도 그녀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소를 통한 사법적 처리가 아닌 온라인 폭로행위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상대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를 했어야 피소된 남성이 무고죄로 고소를 할 수 있는데, 폭로만 했으니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이를 두고 “누구도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무고 가해자가 아닌 거짓 비난의 피해자”라는 논리, 남사스럽지 않은가.

그녀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겨레는 그러한 위법행위를 저지른 페미니스트와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해명을 친절하게 실어준다. 무고와 명예훼손이라는 법률용어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가 타인에게 무고한 피해를 입힌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겨레는 그녀가 비난받고 있는 일련의 행위들이 미투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시행착오라는 변명을 충실하게 실어주었다.

범죄성립이 안 됐고, 증거도 없는 남성에 대해서는 이토록 엄격한 가혹함을, 유죄판결로 사법처리까지 받은 여성에 대해서는 이토록 관대함을, 이것이 한겨레가 여성과 남성에게 적용하는 일관된 이중잣대다.

오달수의 복귀뉴스를 전하며 한겨레는 말한다.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영화인은 “수십억원이 들어간 영화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해하지만, 의혹이 명백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다시 나온다면 피해자가 고통받을 것이 자명하다. 지금 영화를 개봉하고 복귀하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성범죄 논란을 일으킨 이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복귀하는 일이 잦은데,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너무 관대한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오달수가 활동을 중단할 당시 우리가 가진 의구심이 해소된 게 아닌데도 다시 나와서 활동하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 공소시효 만료로 법적 처벌이 힘들다는 거지, 죄가 없다고 밝혀진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이렇게 은근슬쩍 복귀하면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의 다른 배우와 스태프에게도 공동책임을 지우는 꼴이다. 그들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가 규정하는 ‘의혹이 명백하게 해소된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이 사건은 당사자의 주장이 엇갈리고, 증거가 없으며, 사법적 판단이 불가능하다. 이들에게 명백한 의혹의 해소란 결국 오달수가 가해자라는 사실이 확정되는 상황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 법적 처벌이 힘들다는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죄가 있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그냥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을 인정하고 가해자의 낙인에서 해방시켜줄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한겨레는 그럴 마음이 없다. “은근슬쩍 복귀”라 비난한다. 2년동안 개봉이 유예됐던 영화가 이제야 개봉하게 됐고, 주연배우가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심스러운 발언을 했을 뿐이다. 만일 복귀를 알리는 기자회견이라도 진행했다면 당당한 복귀라 환영해주었을 것인가?

페미니즘 이슈에서 한겨레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모든 행위에 대해 최대한 악의적으로 말하고, 악의적으로 해석한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건 저널리즘의 기본인 사실의 전달이 아니다. 의구심의 해소나 명백한 의혹 해소라는 말을 앞세워 자신들이 원하는 진실을 사실로 확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이 있는 한 오달수는 가해자가 되어야 하며, 가해의 의심을 받는 자는 의심만으로도 영원히 복귀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의 법정에서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모든 남성은 결국 유죄다.
한겨레로 대표되는 진보언론들은 페미니즘 법정의 검찰이자, 판관이자, 공보 담당관 노릇을 하고 있다.

내사 종결은 무혐의가 아니라는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