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토토가, 공감녀 슈의 발견

<무한도전> 토토가, 공감녀 슈의 발견

2014.12.28 19:47 조회 수 4137

일하러 나가야는데 토토가를 보고 그냥 주저앉아서 결국 작업실도 못가고 하루를 보냈다.
어쩌다 티비를 켜면 케이블채널 어딘가에서 늘 무도를 한다.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그냥 틀어놓고 히죽거리다 딴 짓도 하고 그런다. 공기같다. 같이 나이들어가는 예능 프로그램.
장수하는 코미디쇼가 부러웠는데 지금 한국의 티비프로그램 중에 같이 나이들어가는 걸 느끼는 프로그램은 무도밖에 없다. 슬럼프라고 욕먹고, 이제 한계라는 논평도 나오지만 그 모든 것과 함께 같이 늙어가면 좋겠다. 제발 그만두지 말아줘.

토토가가 끝나니 트위터고 페이스북이고 온통 토토가 얘기로 꽃을 피웠다. 누군가 ‘검은 머리 가요무대’라고 이름을 붙였다. 참..센스 쩐다ㅎㅎ

그들은 아직 젊고 무대에서도 멀쩡했다. 내가 가요무대를 보면서 느끼는 마음으로 지금 젊은이들이 그들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슬플까.. 아직 무대에서 한창일 수 있는 사람들이 벌써 유물처럼 소비되는 빠른 방송가의 시간. 한국 사회는 연예인으로 살다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너무 적다.
절정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내리막을 인정하는게 힘들 것이다. 세월은 누구한테나 똑같지만 평범한 사람과 다 이뤄본 사람이 느끼는 세월의 무게가 같지는 않을 테니.

나도 토토가를 보면서 흥겹게 노래 부르고 웃다가 울다가 그랬다. 어떤 마음으로 관객과 스타 모두 울었는지 알 것 같다. 반가움, 추억, 아쉬움, 그리움, 벅참, 회한, 아련함, 슬픔.. 많은 감정들이 한 번에 섞여 올랐겠지. 한 가지만으로도 눈물 나는 마음들인데 오죽했을까.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로 온 터보의 김정남과 김종국이 너스레를 떨었다.
몸이 둔중해진 김정남은 오늘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는데 7분짜리 무대를 소화하기에도 체력이 달린다고 한탄했다.
결별 후 각자 활동을 해 온 둘은 호흡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혼자 부를 때는 상대방이 맡았던 부분도 다 해왔기 때문에 김종국 파트에서 김정남이 자꾸 튀어나온다며 웃었다.

SES 슈가 김정남의 얘기에 울었다. 웃자고 한 얘기였고 사람들 모두 웃는데 슈는 눈물을 흘렸다.

“혼자서 공연다니며 그 부분을 연습하셨다잖아요…”

슈의 눈물은 빛났던 과거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더이상 빛나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살아내야 하는 삶에 대한 연민에 닿고 있었다.

김종국은 터보 이후 솔로로 성공했다. 여전히 노래와 예능에서 빛나고 있는 스타다.
김정남은 터보 이후 사실상 잊혀졌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도 아니었고, 터보의 조연이었던 그가 결별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중은 아무도 모른다.
그가 “혼자 무대에 서려면 김종국이 담당했던 부분도 다 불러야 했다”고 말할 때,
“형이 자꾸 내 파트에서 나와서 나를 가린다”고 김종국이 말할 때,
다른 이들이 웃고 넘어가는 얘기에 혼자 우는 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이의 삶을 연민할 줄 아는 사람. 이번 토토가에서 나는 공감녀 슈를 발견했다. 그걸 흘려보내지 않고 드러내 주는 무도의 마음 씀씀이가 빛난다.

나는 이런 무도가 좋다.

누구나 가장 빛나는 한 때가 있어. 빛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존재하지만 빛을 내는 존재는 늘 바뀌기 마련이지. 정상이라는 자리는 너무 좁아서 누군가 끝없이 올라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내 주고 내려가야해. 내리막길 앞에서는 누구나 슬퍼지지. 하지만 그게 인생이야,
좀 덜 웃겨도, 덜 빛나도 우린 한 시절을 함께 살았고 어쨌든 살아가야해.
니가 있어 행복해, 너는 언제나 최고야!

그렇게 말해주는 프로그램. 나도 그 말을 무도한테 해주고 싶다.
언젠가 무도가 끝나고 케이블 채널에서 철지난 무도를 만난다면 슈처럼 울어버릴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