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서 회색지대를 없애려는 페미니즘의 전략-정의당의 사례

이선옥 승인 2022.05.17 21:04 의견 0

성폭력에서 회색지대란 없다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정의당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성폭력 관련 사건들은 페미니즘적 해결방식을 도입한 조직의 혼란상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작게는 정의당의 일이지만 크게 보면 지금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의당의 현재는 모든 사안의 성폭력화, 피해자 중심주의, 2차가해 엄벌, 성인지감수성 강화와 같은 페미니즘적 해결방식을 도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미니즘이 제시하는 길은 틀렸다. 정의당의 유망 정치인인 젊은 여성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두 건의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수개월 전, 남성당원이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의 허벅지에 접촉을 했고 불쾌한 마음에 당에 신고했다고 한다.

당의 기구가 조사한 결과 술자리에서 밀치는 과정에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고 이는 성폭력이 아닌 청년당원에 대한 무례한 행위로 경고와 사과조치를 했다고 한다.

당시 폭로여성은 이를 수용했으나 5개월 후 다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시의 수용은 두려움 속에서 한 것일 뿐, 진정한 수용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당은 입장문을 통해 사건의 내용과 당시 결정이유를 공지하면서 폭로여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 하였으나, 폭로 여성은 반발하며 당의 입장문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그녀는 당이 성폭력을 '불필요한 신체접촉'으로 표현하고, 또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기에 '성폭력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분노한다. 페미니즘의 법정에서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행하는 모든 신체접촉은 모두 성폭력이다.

여기에 '불필요한', 혹은 '부적절한', 혹은 '성적 의도가 아닌'과 같은 회색지대란 존재할 수 없다.
여성의 신체는 그 자체로 성적 의미만을 지니며, 남성에게 여성의 신체와 접촉하는 것은 성적 의도가 아닌 다른 의도가 개입할 여지같은 것은 없다는 논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그런 주장을 하고 젠더 원툴 정당이 된 정의당은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성추행이라는 범주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포함될 수는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모두 성추행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 상식적인 논리가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붐비는 버스 안에서 급정거를 하면 승객들 사이에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이루어진다.

평소 친밀한 손동작이 습관인 사람이라면 반가움의 표현으로 타인의 신체를 만질 수도 있다.

둘 다 동의없이 이루어진 일이지만 보편적인 규범에서는 고의성 없는 과실에 해당하지 이를 성추행이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상식의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진보정당이며 여성운동과 늘 함께 한 정의당의 남성 당원들이 평균적인 한국사회 남성들보다 페미니즘 규범에 대한 이해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계속 성폭력 가해자로 폭로된다.

왜그럴까? 페미니스트의 주장대로 성인지감수성이 낮아서일까? 그렇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건 애초 성적인 행위라는 것이 수많은 모호성과 상황적 변수, 내밀함이라는 특성을 가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성들이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여성에게 판단의 권한을 부여한 페미니즘의 규범은 충족할 수 없다.

즉 회색지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른 해결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진영은 합리적인 길과는 정 반대를 향해 가고 있다.

이들은 이제 성 관련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조차 밝히지 않는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폭로자의 신원은 보호하되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진상규명과 합당한 처벌을 위한 기본 절차다. 그러나 페미 진영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2차 가해라는 도구로 입을 막아 판단을 중지시킨다.

2차 가해나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건의 은폐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님에도 개념을 오염시켰다. 게다가 성폭력에 해당하는 금지의 목록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모호할수록 처벌의 범위는 넓어지고 처벌의 권력을 쥔 자는 막강한 힘을 지닌다.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그물을 최대한 넓게, 가능한 촘촘하게 쳐 두고 피라미와 올챙이와 광어와 고래를 모두 한 그물 안에 걸려들게 하는 페미니즘 진영의 전략은 어떠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지하철에서 일방적으로 남성노인을 폭행하는 여성도, 택시에 올라가 차를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여성 취객도, 남성 가장에게 이유없는 폭행을 가하던 여성도 모두 나를 제압하려고 신체접촉을 시도하면 성추행으로 걸겠다는 협박을 한다.

성범죄로 걸면 남성에게 현실적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엄단하겠다면서 인간적 고려의 공간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어떠한 맥락의 고려도 없이, 피해를 주장하면 즉시 가해가 인정되고, 사실관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모두 2차 가해이며, 친고죄를 없앤 성범죄에서 사실상 친고죄를 부활시키며 '공동체적 해결'로 끝내온 정의당의 행태는 고스란히 현재의 혼란으로 돌아왔다. 많은 대중이 자업자득인 정의당의 현실을 조롱한다.

당사자에게는 무엇보다 심각하고 진지한 일이지만 바깥에서는 냉소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만든 건 정의당과 페미니즘 진영 자신이다.     과거 사법처리를 요구하던 정의당은 이제 수사요구를 하지 못한다.   과거 정의당은 안희정 지사를 즉각 제명한 민주당을 향해 "출당으로 끝내지 말고 즉각 고발 등 사법척 처리로 책임을 다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자신의 당에서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니 정의당식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출당과 제명조치로 끝냈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일관되게 처벌하는 규범이 정립된 조직이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지금도 정의당의 당대표가 저질렀다는 성추행이 무엇인지 아무도 사실관계를 모른다.

당원들은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는지, 어떠한 행위를 하면 어느 정도의 처벌이 따르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의당의 말은 이제 매우 군색해졌다.

성범죄 혐의로 박완주 의원을 제명조치한 민주당을 향해 이전처럼 사법처리를 소리높여 요구하지 못한다.

당신들의 당대표는 왜 사법처리를 못하게 했는가 하는 반론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적 해결능력이 있는 집단이기에 괜찮다고 답할 수 있을까? 성범죄 엄단을 내세우면서도 민주당에게 국회의원 제명과 사과까지만 요구하는 정의당의 군색함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하나다. 다시 한 번, 페미니즘이 제시하는 길은 틀렸다.

관련글

박지현 위원장만 정상이다? 180석 정의당이 되어가는 민주당
저작권자 ⓒ 이선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