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조리돌림, “이것은 사회적 정의가 아닙니다”

저널리스트 존 론슨의 테드 강연 "온라인 상의 모욕이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는 일" (/br)

“이것은 사회적 정의가 아닙니다”

 2015.09.21 23:24 조회 수 4739

아래 글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존 론슨이 “온라인 상의 모욕이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는 일”이라는 주제로 한 테드 강연을 자막만 따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존 론슨은 최근 트위터 폭력 피해자들을 인터뷰해 <그렇게 당신은 조리돌림 당했다(So, You’ve Been Publicly Shamed)>는 책을 냈다. 2014년 트위터에 인종차별로 의심되는 멘션을 올렸다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직장에서도 해고된 저스틴 사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존 론슨은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트위터 조리돌림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망쳐놨는가”라는 글을 썼고 한국에서도 이 기사가 화제가 되면서 트위터 문화에 잠시 경종을 울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뿐, 트위터는 오늘도 조리돌림과 마녀사냥으로 바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떡밥’이 파랑새의 입에서 입으로 돌려진다. 사람들은 ‘공익’, ‘정의’, ‘피해자’, ‘공론화’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폭로하고, 매도하고, 조롱한다. 비난에 ‘즉각’ 동조하는 것이 정의를 즉각 행하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지금 보태는 비난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이 비난으로 얻어지는 공익이란 무엇인지, 나는 지금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 비난과 공격이 상대방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존 론슨은 트위터의 이런 위험성을 여러 사례를 들어 경고한다. 그리고 메간 오 기블린이 보스턴 리뷰에 쓴 말을 강조한다.

“이것은 사회적 정의가 아닙니다.”

이 강연은 17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되도록 끝까지 다 보기를 권한다. 내가 지금 행하는 정의가 정말로 정의인지, 한 번 쯤은 멈추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당신이라면 지금 이 목소리에 귀기울여보라.

::테드 강연

뉴욕타임즈 매거진 칼럼 “트위터 조리돌림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망쳐놨는가”(기사 전문 번역) http://yoonjiman.net/2015/02/16/how-one-stupid-tweet-blew-up-justine-saccos-life/

트위터 마녀사냥 http://www.vogue.co.kr/2015/05/07/%ED%8A%B8%EC%9C%84%ED%84%B0-%EB%A7%88%EB%85%80%EC%82%AC%EB%83%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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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는 초창기에 사람들을 추켜세워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비밀을 인정했고, 우리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구나” 침묵하던 사람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강력하고 호소력 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어떤 신문에서 인종차별적이거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사를 게재할때 우리도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기로 그들을 공격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소셜미디어 악플입니다.
광고주들도 광고를 내릴 것입니다. 사회적 강자들이 그 권력을 남용하면 우리가 그들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치 정의의 민주주의화 같았습니다. 계급계층이 수평적으로 변했습니다. 더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나 레러라는 팝사이언스 작가가 표절을 하고 가짜 인용구를 쓰다가 걸렸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끄러움과 함께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레러는 한 재단의 식사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표자리였습니다. 어쩌면 그는 어느정도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발표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몰랐습니다. 바로 옆에 커다란 스크린을 세우고 트위터 피드를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요.
눈 앞에 있는 또 다른 모티터로 그 화면이 보였습니다.
그재단이 무시무시한 의도록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들은 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트위터의 아름다운 순진함이 소름끼치는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문을 발표하는 동안 그의 눈앞에 펼쳐진 트윗들을 몇가지 보여드리죠.

“조나 레러는 우리가 용서할 때까지 저럴 모양이군”
“조나 레러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네”

이건 최고의 정신과 의사가 쓴 게 분명합니다. 강연대 뒤에 선 사람의 뇌 속을 훤히 알고 있으니 말이죠.

“조나 레러는 완전 소시오패스야”

마지막 단어를 사용한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공격하고 그사람을 파괴하고 싶지만 최책감은 느끼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죠. 이것이 실제 법정이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피의자는 어둠속에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 애원하고 있는데 배심원들은 소리치고 있습니다.

“지루하다! 정신병자!”

우리가 법정드라마를 볼 땐 말이죠. 주로 마음씨 착한 피고측 변호사에게 공감하곤 합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는 순간 우린 교수형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굴죠. 권력은 순식간에 이동합니다.
우리가 조나를 공격했던 것은 그가 권력을 남용했다고 판단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나는 이제 바닥에 엎드렸는데 우린 여전히 그를 걷어찼습니다. 그리고 공격한 것에 대해 자축을 했습니다.
이제 권력을 남용한 사람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이상하게도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악플없는 하루는 손톱이나 다듬고 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거 같습니다.

저스틴 사코라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그녀는 트위터 팔로워 170명을 지닌 뉴욕에서 일하는 여성입니다. 팔로워들에게 신랄한 농담을 하곤 했죠. 뉴욕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쓴 이 트윗처럼 말이죠.
“이상한 독일남자: 여기 1등석이야. 2014년이라고. 데오도란트좀 써.”
“암내를 들이마시며 내면의 독백, ‘데오도란트가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혼자 웃으면서 트윗을 올렸지만,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웃긴 말을 했는데 인터넷이 날 몰라줄 때 우리는 슬픕니다. (웃음) 인터넷이 안 되는 동안 정적이 흘렀고, 공항에 도착한 뒤 짬이 났습니다. 그녀는 그 사이, 다른 신랄한 농담 하나늘 떠올렸습니다.

“아프리카로 가는 중, 에이즈에 걸리지 않길, 농담, 난 백인인데”

그녀는 키득거리며 이를 올렸고, 비행기에 탔습니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그녀는 폰을 끈 뒤, 눈을 붙였습니다. 11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일어나 폰을 켰습니다. 비행기는 활주로에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이야기한 적도 없는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너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참 유감이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 나한테 전화해.” “트위터에서 온통 네 이야기뿐이야.” (웃음) 그녀의 팔로워 170명이 고커 기자에게 트윗을 보낸 것입니다. 기자는 이를 팔로워 15,000명에게 리트윗했습니다.

(기자 트위터) “IAC PR 팀장의 우스운 농담”

그리고 이것이 전광석화처럼 퍼진 것입니다. 몇 주 뒤에, 저는 고커의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 지금 기분을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좋았어요” “그녀는 분명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잠든 사이 트위터는 삶의 통제권을 가져가 조각조각 분해해 버렸습니다. 처음엔 박애주의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저스틴 사코의 유감스러운 트윗이 짜증나신다면, 아프리카의 @CARE를 돕는데 동참하세요.”
“역겨운 인종차별자의 트윗을 보니 나도 @CARE에 기부해야겠다”
“저스틴 사코처럼 끔찍하고 역겨운 인종차별주의자의 트윗에 할 말이 없다. 끔찍함을 넘어섰네.”

그날 밤 트위터를 하신 분 계신가요? 몇 명 있군요. 여러분의 트위터 피드도 저처럼 저스틴의 농담으로 도배되었나요? 저는 그랬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고 있구나.” 한 사람의 인생이 끔찍해지고 있다. 저는 침대에 걸터 앉아 베개를 머리 뒤에 대고 생각했습니다. 전적으로 인종차별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쾌하게 그녀의 특권을 과시하기보다 특권의 과시를 조롱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코미디의 전통입니다. 랜디 뉴먼의 ‘사우스파크’나 ‘콜버트’처럼 말이죠.
저스틴 사코의 행동은 랜디 뉴먼처럼 훌륭하지 않았지만 제가 몇 주 뒤 바에서 만났을때 그녀는 상처에 시달렸습니다. 농담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가 말하길

“미국에 사는 것은 우리를 작은 거품 속으로 밀어넣어요. 우리가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마주할 때 말이죠. 저는 이 거품을 비웃고 싶었어요.”

그날 밤 뉴스테이츠먼의 기자 헬렌 루이스는 공공 모욕에 대한 제 책을 평하면서 그날 밤 그녀의 트윗을 썼습니다.

“그녀의 농담이 인종차별적인 의도로 작성된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곧바로 분노의 트윗을 받았다고 합니다. “너도 그냥 기레기야.” 입을 다문 채, 저스틴의 삶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모두 @저스틴 사코를 잘 지켜봐” 이윽고 그녀를 해고하라는 요구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해에는 직장을 구할 수 있기 바래” 전 세계 수 천명의 사람들이 그녀가 직장에서 짤리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여겼습니다.

“@저스틴사코, 네 커리어의 마지막 트윗” 기업들도 제품 홍보를 목적으로 저스틴이 말살되는 과정에 끼어들었습니다.

“이륙하기전, 멍청한 소리를 트윗할 생각이라면 @Gogo 항공에 탑승할 것을 잊지마세요.” (웃음)

그날 밤 수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저스틴의 이름은 보통 한 달에 40번 검색되었는데 그 달, 12월 20일과 말일 사이에 122만번 검색되었습니다. 한 인터넷 경제학자는 제게 말하길 이를 통해 구글이 12만 달러에서 최대 46만 8천달러까지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로 그녀를 모욕한 우리는 어떤가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습니다.(웃음) 우리는 구글의 무급 악플인턴과 같았습니다.(웃음) 그리고 어그로꾼들이 나타났죠.

“난 사실 저스틴 사코가 에이즈에 걸리길 바래ㅋㅋㅋㅋ”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에이즈 걸린 누군가가 이 개년을 따먹으면 피부색깔이 에이즈를 막아주는지 알 수 있을텐데.”

이걸로 이사람은 프리패스를 얻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스틴을 파괴하는데 신이 났습니다. 우리는 너무 단순해져버린 나머지 부적절하게 저스틴을 공격하는 다른 사람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저스틴은 수많은 이질적인 그룹을 박애주의자부터 “저 년을 강간해”까지 분류했습니다.

“@저스틴사코 니가 짤리길 바래! 미친년아…” “그냥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헤프게 굴리고 다닐 모양인가보지”

여성은 항상 남자보다 상황이 나쁘죠. 남자가 모욕당할 때는 “니가 짤리도록 할 거야” 정도지만 여자가 모욕당할 때는 “니가 짤리면 난 널 따먹고 니 자궁을 도려내 버릴 거다.”

이제 저스틴의 고용주도 연관되었죠.

“저스틴 사코의 트윗에 대한 IAC의 반응” “이것은 너무 충격적이고 공격적이다. 문제의 직원은 현재 비행기에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 분노는 흥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크리스마스에 바라는 건 비행기에서 내려 메일함을 확인하는 @저스틴 사코의 얼굴을 보는 거야.”
“비행기가 도착하고 @저스틴 사코가 폰을 켜는 건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 될 거야.”
“우리는 @저스틴 사코 그년이 짤리는 걸 실시간으로 보게 될 거야.”
“그년이 자기가 짤리는 걸 알기도 전에”

우리가 했던 행동은 기분좋은 기승전결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저스틴이 반응하지 않을 걸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보다 비사법적인 것을 생각해낼 수 있나요? 저스틴은 비행기에서 잠들었었고 그녀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이런 상황은 아주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총을 집으로 기어가는 갓난아기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그녀가 탄 비행기가 무엇인지 알아내 비행기 추적사이트의 링크를 걸었습니다.
“브리티쉬 항공 43. 1시간 34분 후 도착”

해시태그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죠. #저스틴은아직도착안함?
“누군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자폭하는걸 지켜보는 야생상황같아 #저스틴아직도착안함?”
“진짜 나 집에가서 자고 싶은데, 바에 있는 사람 전부가 #저스틴아직도착안함에집중하고 있어서 못떠나겠어.”
“#저스틴아직도착안함 아마 이게 금요일밤에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상황 아닐까”
“케이프타운에 사는 사람 중에 공항가서 도착하는거 트윗할 사람없어?”
“난 보고 싶다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스틴 사코가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당신이 농담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이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당신을 갈기갈기 찢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건 이와 같습니다.

“….변장할라고 선그라스 끼네”

우리는 왜 그랬을까요? 저는 몇명 사람들은 정말로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은 트위터가 기본적으로 상호 동의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인정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과정에 끼어든다면 우리는 그들을 걸러냅니다. 이것이 무엇의 반대인지 아나요? 이것은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염려한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이런 욕구는 우리가 전적으로 무자비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메간 오 기블린이 보스턴 리뷰에서 “이것은 사회적 정의가 아닙니다.” 지난 3년간 “저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저는 저스틴 사코와 같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매일매일 나타납니다. 그들이 괜찮다고 생각하길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심하게 상처받았습니다. 저에게 말하길 우울증은 물론 불안감,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한 여성은 부적절한 농담을 한 뒤, 1년 반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 그녀는 학습장애를 지닌 성인들과 일했고, 누가 봐도 그녀의 일에 열중했습니다.
저스틴은 해고당했습니다. 물론 소셜미디어가 원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그녀는 자신을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한 밤중에 일어나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스스로의 권리를 오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예전에 혼전 임신한 사람을 공격하던 것에 비하면 더 낫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오용’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습니다.
권력의 오용은 다른 의미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습니다.
또 심각한 범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스틴은 팔로워 170명이 있었고,
그녀에 대한 허위사실이 퍼졌습니다. 그녀가 광산재벌 데스몬드 사코의 딸이라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우리 속지말자, 걔 아빠가 남아프리카 광산 재벌이야”
“딸이나 아빠나 미안해하지 않아 #저스틴사코”
저는 저스틴을 만나기전까지 이것이 사실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이 소문에 대해 물어보자
그녀가 말하길 “우리 아버지는 카펫을 팔아요”

제가 트위터의 초창기를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비밀을 인정했고,
“와, 다른 사람들도 나랑 같구나.” 이렇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다른 사람의 과거에 대한 사냥이 한창입니다. 여러분은 윤리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위터 상의 사소한 말실수로 그것을 모두 뒤덮어버립니다. 사소한 실수는 당신 내명의 사악함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어버립니다.
아마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겁니다. 사람을 이념 위에 두는 사람들과 이념을 사람보다 우선하는 사람들. 저는 사람이 이념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념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막장드라마를 씁니다. 모두가 위대한 영웅이거나 역겨운 악당인 드라마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도 말입니다.
우리는 영리한 동시에 멍청합니다. 우리는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좋은 점은 소리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리 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감시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침묵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러지 맙시다. 감사합니다.

<존과 진행자 브루노의 대화>

브루노: 저스틴의 이야기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그녀의 이름을 검색할 경우 이 이야기가 검색결과 100페이지에 걸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관련된 다른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존 당신이 책에서 다른 평판관리 회사에 의뢰한 다른 피해자의 이야기를 언급했어요. 블로그를 만들어 그녀가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과 일상생활을 올렸죠. 구글 검색결과에 다른 내용이 나오도록 말이에요.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어요.
몇 주가 지나자 다시 그 이야기가 검색결과 상단에 위치하기 시작했죠. 다 소용없는 걸까요?

존: 제 생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이 이렇게 불공정하거나 모호한 모욕을 목격할 경우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저스틴에게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 것은 아무도 그녀 편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반대편이었죠. 수 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나가라고 외치는 것은 그녀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모욕을 하더라도 갑론을박이 활발하게 일어나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면 상처를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길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의 편을 든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브루노: 당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당신은 이 책을 쓰면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 책에서 모욕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조명했어요. 제가 알기로 트위터에서 당신 책에 우호적인 반응만 보이진 않았어요.

존:(웃음) 몇몇 사람들은 그랬죠. 수많은 사람들은 책을 이해하고 좋은 반응을 보이지만.. 전 30년간 권력남용에 대한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제가 군의 권력자들에 대해 이야기할때마다 제약산업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두 저에게 박수를 쳤어요. 제가 “우리는 우리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하자마자 사람들은 저에게 인종차별주의자가 틀림없다고 하더군요.

브루노: 지난 밤 우리는 저녁식사를 같이 했는데 테이블의 사람들과 건설적인 토론이었죠. 그런데 한 편으로는 당신 폰을 들여다볼 때마다 거기에는 모욕 투성이었죠.

존: 네, 저는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주 좋았습니다. 전 트위터를 확인했는데 누군가 저에게 “넌 백인우월주의자야” 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식사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죠. 그리고 전 다시 트위터를 확인했죠. 저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을 더 나쁜 곳으로 만들거라고 하더군요. 제 친구 아담 커티스가 말하길 인터넷은 1980년대 존 카펜터의 영화같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서로에게 소리치고 총을 쏘기 시작해 결국 모두가 안전한 곳을 찾아 달아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요.
저는 그것이 아주 좋은 대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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