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단상- 잘 지는 싸움을 생각한다

 

필리버스터 단상- 잘 지는 싸움을 생각한다

2016.02.26 04:15   조회 수 7447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몸)무게 있는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의 강의는 재미있다. 워낙 박학하고 순간순간 재치있는 드립을 많이 치기 때문에 무겁고 아픈 현대사 얘기를 시종일관 웃으면서 듣는다. 여러 차례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웃었지만 딱 한 번 눈물이 펑펑 쏟아진 적이 있다.

계엄군이 발포를 준비하던 80년 5월 27일의 광주. 도청의 시민군은 계엄군의 진압을 예상하고 그 전날 저녁부터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여성과 학생들을 보냈고, 두려운 사람도, 사정이 있는 사람도 모두 떠날 수 있도록 했다. 울면서 돌아간 사람들, 울면서 남은 사람들, 죽음을 예감했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눈물과 슬픔이 교차했다.
계엄군이 광주를 완전히 장악한 27일 새벽, 광주 시내 곳곳에는 한 여성의 간절하고 애달픈 호소가 울려퍼졌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함께 광주를 지켜달라고…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은 속속 도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한홍구 선생의 말이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도청에 남은 사람도 계엄군에 맞서 이길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 여성의 호소를 들으면 숨죽이고 있었던 광주의 시민들, 도청 안에서 총을 들고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맞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민군들 중 누구도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수만 명이 모였지만 결국 몇 백명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그 날 새벽의 도청.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엄군의 총소리를 들었던 광주의 시민들, 그들이 밤새 잠들 수 있었을까요? 아무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마 광주의 사람들에게 그 날은 가장 긴 새벽이었을 겁니다. 도청은 불과 20분도 안되어 함락됐지만, 질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차마 총을 놓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패배했지만 결국 우리 현대사의 돌연변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광주의 자식들이라는 한 세대를 만들어냈지요. 그 때 그들이 총을 내려놨더라면 우리 현대사에 광주는 없었습니다. 광주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질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펑펑 울었다. 질 줄 알면서도 차마 떠날 수 없어 남은 사람들, 집에 돌아갔다가 도저히 잠들 수 없어 다시 도청으로 돌아간 사람들.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콩볶는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삼켰을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긴 새벽을 보낸 그 날의 광주 시민들 얘기는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눈물이 났다. 그 날의 광주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그날 광주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산다.

우리는 늘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어한다. 누구라도 그렇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끝내 승리를 쟁취할 것인가가 투쟁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때로는 어떻게 질 것인가, 를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끝내 이기는 싸움만큼, 잘 지는 싸움도 중요하다.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두고 어떻게 해도 결국 표결로 질 게 뻔하다고 한다. 무용지물이라고도 하고 정치쇼라고도 한다. 지는 싸움에 매달리지 말고 다른 걸 해야 한다는 충고도 넘쳐난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여당은 시기가 도래하면 밀어부칠 것이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법안으로 통과시킬 것이다. 그들은 그럴 힘을 가졌고 힘을 과시할 의지도 넘친다. 그걸 예상하지 못해 야당 의원들이 몇 시간씩 날밤을 새고 몸을 축내가며 무제한 발언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그들은 지금 잘 지는 싸움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결국 진다 해도, 사력을 다했지만 막아내지 못한다 해도, 이번 필리버스터는 천박한 말로 오염된 정치에서 품위 있는 언어를 건져냈고, 법의 논리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입법자들의 기본 의무를 보여줬다.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읽어 주는 걸 들으며 헌법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법안의 문제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걸 들으면서는 그래 저게 정상이지, 모름지기 한 명 한 명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저 정도의 식견은 가지고 있어야지,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정상성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원내에 들어가지 못한 노동당과 녹색당의 정치인들은 장외에서 몸소 그 법안의 위법성을 이끌어내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도 함께 원내에서 저 야무진 말들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웠고, 이들의 원내 진입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질 거 이따위 정치쇼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냉소하는 사람들 몫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잘 지는 싸움이 왜 필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기록하고 싶다. 총을 들고 남을 위인은 절대 못되지만 이불 속에서 오늘 새벽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는 나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사흘밤을 넘긴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잘 지는 싸움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