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

2017.03.16 23:30   조회 수 2833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들은 여전히 피해자의 말을 무시하고, 사건을 은폐하며, 가해자는 어떤 타격도 받지 않고 끝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노동운동은 자기 사업장의 임금 인상 외에 공공성과 노동연대를 이루는 쪽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두 주장에서 “어떤 타격도 받지 않고”와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완전히 동의하지 않더라도 토론과 합의의 길로 한 발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타격도 받지 않는다고? 내가 아는 아무개는 아닌데?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고? 민주노총이 집행한 비정규직 기금만 수십억인데?

이런 식의 주장은 반대자들에게 목에 턱 걸리는 불쾌감을 주고, 생각이 정해지지 않은 중간지대의 사람에게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효과를 가져온다. 선명할지언정 원하는 해결책을 도모하는데 효과적이지 않다.

극단적인 수사는 ‘여지’가 들어설 자리를 없앤다. 생각할 여지, 행동할 여지, 타협할 여지. 그리하여 때론 설득 당하고, 결국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유의 자리를 빼앗는다. 함께 할 여지보다 밀어내는 반동의 힘이 크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내 주장에 동의하도록 만들려면 책임있는 말하기가 필요하다. 분노의 총량을 키우고 선명성을 강조하는 일은 이미 동의하고 있는 대상에게만 소구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분노의 발산에서 끝날 게 아니라면, 한 발이라도 해결을 위해 나가고자 한다면, 먼저 극단의 수사를 걷어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