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가와 사육사

2017.05.15 15:32  조회 수 2623

마초나 보스기질, 권력욕을 가진 사람이 상대적인 약자나 하부조직원에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수장이 그런 기질일 경우 일단 자기조직이 존재감이 없거나 쩌리 취급받는 걸 못참기 때문에 더 큰 구조 안에서 자기 조직의 위상을 높이려 한다. 자신이 가진 자산을 총동원해 본인과 조직의 권력상승을 위해 노력한다.
조직의 위상이 높아지는 걸 싫어하는 구성원은 잘 없다. 그의 권력지향성은 하부 조직원들에게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다. 노동조합과 평화롭게 지내기도 한다.

남자의 마초성은 ‘어디 여자가!’로도 나타나지만 ‘내 여자 고생 안 시키고 책임진다’는 태도로도 발휘된다. 가사노동을 반반 부담하자며 노동영역을 따지는 진보남자의 합리성보다 실제 삶에서는 여자한테 더 편하기도 하다.

겉으로 볼 때는 친정부 인사에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내부 구성원들은 만족스럽고, 마초에다 보수적인 남자인데 여자한테 잘해서 불만 없고.
세상사 이렇게 다양해서 왜 너네 노조는 그런 상황에서 싸우지 않니? 왜 너는 그런 남자를 만나니? 해도 안 먹힌다.

노예근성이라 비판 받는다 해도, 나의 일터에 소속감이나 비합리적인 애정을 가진 사람은 많다. 코르셋 입은 덕에 옷빨 잘 받아서 기쁜 여자들도 많다. 애국심 없어도 에이매치 하면 한국 이기는 게 좋듯, 인간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 존재다.

계몽은 인간의 세상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계몽의 목적이 변화라면 설득하고, 토론하고 변화의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 태도를 잃은 ‘이즘’의 주창자들은 채찍을 든 사육사와 같다.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기보다 생각과 행동의 교정을 강제하는 건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논리에 인간을 가둬놓은 채 설득하려는 노력과 태도를 포기하는 한 그렇다.

들기만 했을 뿐 휘두르지 않는다 해도 인간은 지성으로 진화하는 지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채찍의 공포를 안다. 그런데 그 주창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육사와 같다는 걸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