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폭로는 곧 사실도, 모두 정의도 아니다

2017.11.21 13:55  조회 수 22267

지난해 여성들의 폭로로 시작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문단 내 성폭력’ 사건. 이 때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시인 두 명에 대해 폭로 여성들이 거짓폭로였음을 시인했다. 수개월이 지난 후다. 폭로자들이 올린 사과문을 보면서 착잡하다. 3년 내내 반복되고 있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전히 막막한 심정이다.

나 역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전에 비난에 동참한 부끄러운 일이 있다. 사실을 알게된 후 사과드렸지만 당사자가 다시 그 사안이 언급되는걸 바라지 않아 따로 적지는 못했다.

폭로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노력없이 비난에 동참하지 마라. 그 행위는 정의를 수행하기보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비난의 글을 쓰려는 손가락을 멈추고 당사자의 반론이나 해명에도 귀를 기울이고, 폭로자의 주장도 다시 살펴보고 그런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그 과정을 거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다.

무엇보다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폭로행위에 대한 제동이 필요하다.

특히 진보언론들은 폭로자가 여성이나 사회적 을의 지위일때 검증 없이 기사를 쓰고, 여성단체나 운동가들은 이 방식을 지지 지원한다. 사건을 이념에 맞추고,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도구화한다.

우리는 심판관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벌할 권한같은 것은 우리에게 없다. 입헌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정신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대한 권리의식에 맞는 책임의식도 좀 함께 가져야하지 않겠나.

존재하는 제도를 이용하기보다 인터넷 폭로를 택하고, 그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실제 잘못이 있다해도 적절한 양형도 없는 대중의 바다에 던져 명예형에 처하는, 결국 사회적 살인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더 넓고 깊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피해자가 된다.

이 사슬을 어디선가, 누군가는 먼저 끊어야 하는데 오늘도 폭로는 계속되고 누군가의 삶은 약자를 위한 정의로운 세상에 제물로 바쳐진다.

그래도 쓴다. 한 사람이라도 이 폭력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