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러가 살펴 본 “나의 아저씨”의 모든 것 《5》

이선옥닷컴은 오픈 특집기획으로 <나의 아저씨> 리뷰大展을 마련했습니다. 다섯 번 째이자 마지막 글로 스토리텔러 양산진씨의 리뷰를 올립니다.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쓰셨다는 블로그의 글을 이선옥닷컴과 공유합니다. ‘놀라운 드라마’에 대해 놀랄만큼의 성실함으로 고품격 리뷰를 써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나저씨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팬심으로 만든 오픈 기념 기획. 많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편집자주)

 

<나의 아저씨>에 대한 아름다운 감상문은 이미 너무 많으니 조금 다른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해서 작품의 설정, 캐릭터, 스토리의 구조, 주제의식에 대한 장문의 분석을 써보았다. 드라마의 매력에 영원히 갇힌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 <나의 아저씨>

이기심과 욕망의 가치와 그 유용함을 설파하는 세상에서
의무를 수행하고 양심을 지키려는 성실한 사람들을 위로하다.

이 드라마는 극중 대사처럼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항상 양심을 선택한’, 그래서 ‘불쌍’하고 ‘억울해’ 보이는 동훈(이선균)을 관찰한다. 이 드라마를 보며 중년 남성뿐 아니라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연령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내면에는 모두 동훈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살이에서 윤리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타인을 배려했음에도,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그런 부당함에 억울함을 느끼며 점점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처세술을 익혀가지만
우리 대부분은 양심과 의무에 충실한 삶이 더욱 가치 있다는 믿음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때론 다시 올바른 삶을 위해 노력했다가 상처받고, 때론 외면했다가 가책을 느끼곤 한다.

동훈의 삶은 그런 우리의 삶을 반영하며, 한편으론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동훈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같이 억울함을 느끼게 되고,
그럼에도 동훈이 윤리와 의무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응원하게 되고,
그런 동훈의 편을 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에서 덩달아 힘을 얻고 위로를 받게 된다.

 

■ 트렌드를 역행하는 기획: 아저씨와 구조기술사, 그리고 내력

언제부턴가 장르물을 제외한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 상당수는 크리에이터나 예술가로 설정되었다. 작가, 디자이너, 개발자, 프로그래머, 음악가, 일류 요리사 등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에 저항해 새로운 미래상을 조각하는 이들 직업은 현실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욕망을 대변하고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주인공들은 설정과 조응하는 매력적인 성공을 보상으로 받게 된다.

<나의 아저씨>는 다르다.

이 드라마는 탈출할 수 없어 꾸역꾸역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며, 결말에서 주어지는 소박한 보상에 감동하게 만든다. 이 역행이 <나의 아저씨> 기획의 차별점이며 의도이다. 디자이너나 설계사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하는 구조기술사라는 직업은, 평범한 중년 남성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도에 충실한 동시에 첨단의 자리에서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묵묵히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뼈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도에 적합하다.

인류의 남성 유전자에 새겨진 남성성이 투쟁, 쟁취, 문제 해결, 그리고 수호 등의 과제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구조기술사에게 주어지는 과업이란 고작 수호 정도에 그친다. 도전보다는 응전이며, 성공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숙제인 안전지향의 직업이다.
현대문명사회에서 쇠락해가고 있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부족함 없는 이 직업을 가진 동훈은

거기에 더해 안전진단팀으로 좌천된 인물이며, 스토리의 시작과 동시에 실직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견디는 것이 과업인 사내가 견디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는 위기를 맞이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구조기술사와 안전진단이라는 신분과 직무는 그저 설정 리스트의 항목을 채우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매뉴얼대로 판단하고 원칙대로 수행해야 하는 이 직업세계를 통해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편법이 횡행되는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올바른 윤리관과 직업관을 관철하며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때문에 많은 위협과 위기 속에서도 동훈이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내력’이란 개념은 직관적으로는 수호, 부양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내심과 지구력, 맷집 등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되지만, 보다 정확히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을 지탱하는 가치와 신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위무하는 대상이 드러나는데, 그 대상은 바로, 욕망은 언감생심 ‘내력’에 간신히 의지해 힘겨운 현실을 버티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들 특정 유형을 위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진가는 그들의 단점과 한계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그들의 가치관을 시험에 들게 하여 성찰로 이끈다는 점에 있다.

나의 아저씨는 다르다

■ 캐릭터 유형의 구분을 통한 기본적인 갈등구조: 욕망과 양심, 행복한 삶과 올바른 삶

세상에는 욕망을 좇는 사람이 있고, 의무에 얽매이는 사람이 있다. 거침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양심과 도리에 충실하느라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시대는 이제 의무와 규율에 얽매이고 희생하는 삶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으며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 말한다. 의무와 규율을 중시하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 말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가치관이 되었다. 절대빈곤이 사라지고, 삶의 질이 행복의 척도가 된 시대에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나 아직도 사회와 가족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온전히 지탱되기 힘들고,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동훈은 그 희생하는 인물을 대변한다. 욕망을 좇는 사람들은 사랑을 소유하는 것이자 받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의무에 얽매이는 사람들은 사랑은 지키는 것이자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동훈과 가장 다른 유형의 사람, 후계동 사람들과 가장 다른 유형의 사람은 윤희(이지아)다. 윤희는 도준영(김영민)과 동류다. 지키는 사랑을 천성으로 타고난 사람들에게 사랑은 부양, 건사와 같은 말이지만, 욕망하는 사랑을 천성으로 타고난 사람들에게 사랑은 욕망을 공유하고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들은 ‘할 수 있을 때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보’길 원하고, 그래서 소유하기를, 자신이 ‘일 순위’가 되기를 원한다. 욕망하는 사람들은 경쟁한다. 권력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삼안E&C의 이사진들은 모두 동류이고, 때문에 반목하고 의심한다.

지키려는 사람들은 연대할 수 있다. 함께 성을 쌓고, ‘영업종료’ 팻말을 걸어둔 술집 안에서 함께 술잔을 비우며 하루의 피곤을 풀어낼 수 있다. 여기에 문 닫힌 술집을 멀리서 바라볼 뿐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녀 지안(이지은)이 등장한다. 지안은 욕망의 아귀다툼에도, 연대의 공동체에도 편입되지 못한 절대불행의 공간에 놓인 존재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냉소와 불신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 1막(01~04화) 분석_01/ 캐릭터: 동훈과 지안, 성실한 부양의무자들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지안이 도피를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할머니에 대한 부양의 의무다. 혼자의 삶이었다면 아무런 미련도 없었을 고통스러운 삶을 꾸역꾸역 이어가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건사해야 할 혈육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부양의 의무는 굴레인 동시에 동력이며, 바로 그 점에서 동훈과 지안은 동류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의무로 가득 찬 삶을 지겨워하지만, 결코 자신의 가족을 원망하지 않으며, 그들의 무능함을 탓하지도 않으며, 책임을 전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저 의무는 의무대로 받아들이는 똑같은 천성을 가진 종족이다.

전체 이야기에서 1막에 해당하는 1화에서 4화까지의 구성을 보면 두 주인공의 모든 선택과 행동의 원인은 가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화에서 동훈은 가부장제 붕괴를 상징하는 조카의 결혼식 사건 이후, 상훈을 위해 5천만 원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엄마 요순(고두심)의 이야기를 듣고, 그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인다.

지안은 밀린 입원비 때문에 요양원에서 빼낸 할머니 봉애(손숙)를 달동네 자신의 거처로 모신다. 논란의 폭행 장면이 이때 발생한다. 불 꺼진 집안에 광일(장기용)이 들어와 있어도 눈 깜짝 안 하던 지안이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광일이 집안으로 들어감으로써 방안에 있는 할머니가 그를 맞닥뜨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광일의 침입을 막으려고 거세게 저항하고 도발한다. 이제 지안은 큰돈을 빨리 구해야만 한다.

이어 뇌물 배달사고가 일어나고, 지안이 상품권에 눈독을 들이면서 두 사람은 악연으로 엮이게 된다. (1화에서 상품권 시퀀스는 의도적으로 <레옹>의 비주얼과 권력관계를 정반대로 비튼 형태로 연출되었다.) 이후 동훈은 회사와 지안에게 휘둘리는 과정에서 가족 건사를 위해서 어떻게든 실직을 모면해보려고 전전긍긍하며 소극적인 처신으로 일관하는데, 3화에서 상훈과 기훈이 청소방을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된 후에야 처음으로 지안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4회에서는 상훈의 굴욕을 엄마 요순이 목격하는 사건이 터지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처음으로 동훈이 주인공다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식구가 보는 데서 그러면 안 돼! 식구가 보는 데서 그러면, 그땐 죽여도 이상할 게 없어!”

동훈의 이 말을 도청하던 지안은 처음으로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지안은 동훈을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살아간다고 조롱하듯 말하지만 동훈은 그런 자신을 알아본 지안 역시 자신과 동류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사실 지안 역시 ‘성실한 채무자’로 살고 있으니 그 느낌은 틀리지 않다.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거 같고.” 
“좋아?”
“슬퍼.”
“왜?”
“나를 아는 게… 슬퍼.”

1막의 끝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동훈과 지안이 서로를 연민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 1막(01~04화) 분석_02/ 플롯의 유형, 장르, 톤 앤 매너

전체 스토리의 근간을 이루는 플롯은 버디러브 스토리 플롯이며, 따라서 지안과 동훈의 성장(통과의례)플롯을 포함한다. 지안은 그저 관점을 제공하는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항상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이토록 여자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또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한 다양하고 풍성한 상황을 통해 지안이 겪게 되는 진폭이 크면서도 섬세한 감정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의 가장 탁월한 성취다. 근래 사랑의 감정을 통해 성장하는 여성 서사 중 이토록 뛰어난 캐릭터 아크를 본 적이 없다.

지안의 플롯이 우리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작품 전체의 정서적인 부분을 담당한다면,

딜레마, 아이러니, 거듭되는 시험으로 이루어진 동훈의 플롯은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며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을 담당한다. 남녀 두 주인공의 관계의 플롯은 ‘변치 않는 영웅과 변화하는 관찰자’ 형태다. 유사한 형태의 고전이라면 <디즈씨, 도시에 가다 (aka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가 있다.

음모를 숨긴 채 상대방과 지속적으로 깊은 유대를 쌓아간다는 점에서 <도니 브레스코>와 유사하고, 도청을 하던 인물이 변화하게 된다는 면에서는 <타인의 삶>을 떠올릴 수 있겠다.
기업의 음모, 비밀스러운 불륜과 뒷조사 등 첩보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자주 보이는데,
감독은 이러한 장면에서 <본 시리즈> 풍으로 화면과 편집, 음악을 연출해낸다.

또한 삼형제와 후계동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코미디는 채플린을, 정희네와 후계동 공동체를 판타지적으로 묘사할 때는 쿠스트리차를 떠올리게도 한다.

또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서부영화의 구조를 닮아있다. 위기에 빠진 마을에 우연히 방문한 외부인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홀연히 떠나는 이야기. <나의 아저씨>에서 외부인 히어로는 지안이다.

기업 내의 권력 암투와 음해, 공석이 된 이사의 자리에 각자 자신의 사람을 앉히려는 2개 패거리의 경쟁, 그 피해자로서 음모를 밝히려는 박상무의 노력 등이 스토리 전반의 외적 사건 플롯을 형성한다. 드라마 초반부를 보면 아저씨 미화 운운하던 일부의 예상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다. 미화는커녕 조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질하고 한심한 아재들의 모습과 언행이 나열된다.

 

이토록 여자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또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니시리즈의 성패는 4회 이내에 결정된다는데, 이 드라마의 경우,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앞서 열거한, 너무나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4화 중반에 이를 때까지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두 주인공의 관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뚱딴지같은 아재들 이야기의 빈번한 등장 등 그러한 하소연이 나올 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4화의 가족 이야기 시퀀스에서 강력한 한 방이 터진 후, 정희네가 영업을 재개하고 후계동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을 마시는 장면에 이르면 드디어 드라마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영상문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작품 전체를 감상하고 나면, 왜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를 싣고, 소박한 결말에서도 큰 감동을 주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결국 성공한다.)

 

 

■ 2막(5화~8화)/ 연민과 위로

편의상 네 개의 화수씩을 하나의 막으로 묶어본다면, 1막을 관통하는 테마는 가족이고, 2막의 테마는 연민과 위로다. 이제 본격적으로 동훈과 지안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는 것도 역시 가족 때문이다.

동훈이 봉애(손숙)를 집까지 업어다 주자 지안은 처음으로 위악적인 눈빛을 푼 채 고분해지고, 동훈은 조모를 부양하는 지안을 ‘착하다’고 치하한다. 8화에는 동훈이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다가, 아들의 여자친구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만 골라. 걔 예뻐, 착해?” 아들이 ‘착하다’고 대답하자,
동훈은 “이 자식 이거, 진짜 좋아하네?”하며 웃는다.

이 드라마는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남자들이 예쁘냐고 묻는 장면을 반복해서 배치한 바 있는데, 동훈은 예쁜 것보다 착한 것이 가치 우위라고 여기며,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착한 것이라고 여기는 인물이다. 7화 막판의 ‘춥게 입고 다니는 애. 예쁘게 생겨가지고.’라는 대사는 때문에 ‘착해서 예쁜-기특하고 사랑스럽다’는 의미를 가진다.

“착하다.” “아저씨 욕해서요.” “행복하자.” “파이팅”으로 이어지는 각 화수의 핵심 대사는, 두 주인공 사이의 이해, 연민, 위로가 조금씩 더 깊어지는 것을 잘 표현해준다.

 

 

이와 동시에 동훈은 윤희의 외도를 알게 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고, 지안은 그런 동훈을 보고 들으며 죄책감을 느끼고, 준영과 윤희에게 혐오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또한, 기훈과 유라, 정희와 겸덕의 관계가 더해지면서 인간과 사랑에 대한 보다 풍성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 중간 전환점: 남성성 회복의 필요성과 여성성의 자각. 그리고 중심 테마의 시작

8화의 끝은 16부작 드라마의 중간 전환점이다. 구조가 대단히 탄탄한 <나의 아저씨>는 이 중간점도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전환점을 이루는 핵심 중 하나는 섹슈얼리티다.
이때까지 이 드라마는 두 남녀 주인공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동훈을 남성성이 소멸된 인물로, 지안을 여성성이 발현되기 이전의 소녀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 전환점은 이 문제를 드디어 부각시킨다. 두 남녀 주인공은 봉인되었던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지안의 경우, 8화의 종반부, 준영에게 불려나간 자리에서 동훈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라는 지령을 받게 된다. 이 장면은 준영과 지안의 대면씬에서 유일하게 지안이 수세에 몰리는 씬인데, 지안이 ‘동훈과 연애하라’는 말에 평정심을 잃기 때문이다.

 

 

앞뒤 씬과는 달리 다크서클을 지우고 입술에 윤기를 넣은-작은 메이크업의 변화와 미묘하게 수줍음을 표현하는 이지은의 연기로 만들어진 이 장면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지안의 여성성이 드러나는 유일한 장면이다. 이제 지안은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고맙고, 걱정되고, 미안하고, 편들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의 전환점을 이루는 핵심 중 하나는 섹슈얼리티다.

감독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에 왜소한 체구의 지안이 풀샷으로 잡히는 지하철 플랫폼 씬을 바로 다음에 이어 붙여 첫사랑을 자각하는 소녀의 초라한 현실과 복잡한 심리를 연출해낸다.

“어떤 남자가 미쳤다고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할까?”
“그냥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그것만 해.”
“밥 먹고, 술 먹고… 그럼 좋아하는 건가?”
“좋아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랑 밥 먹고 술 먹고 해?”
“많이들 그러지 않나? 뭐 바라는 거 있을 때?”
“박동훈은 안 그래. 밥 먹고 술 먹으면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 절대 발뺌 못해.”

준영과 지안의 이 대사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제껏 동훈은 정말 ‘뭐 바라는 거 없이’ 지안에게 밥과 술을 사주었기에 지안의 마음은 요동치게 된다. 또한 준영이 이 말에 담은 속뜻은 동훈의 인품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옷 벗고 달려들면 기겁할 인간’ 박동훈의 연애와 남성성은 고작 그 정도라는 조롱이다. 이 지령은 준영의 악행 중 가장 사악한 것이며, 때문에 그는 이 지령으로 인해 파멸한다.

동훈의 경우, 8화의 종반부에서 상무 예비후보 명단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박동운 상무는 동훈에게 전화해 후보 사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도준영은 네 손에 아작나야 해. 그게 정의야!”라고 말한다. 의무를 위해 욕망을 절제하고 인내하는 것에 익숙해진 채 40대의 중반에 이른 그는 남성성이 소멸된 상태다. 1년 전부터 이어진 아내의 외도가 그 반증이다.

이제는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게다가 그것이 정의라는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 모험에의 소명을 받게 된 그는 이제 남성성을 복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8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동훈과, 그런 동훈을 바라보는 지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8화를 기점으로 이 이야기의 주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동훈은 ‘나를 안전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붕괴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자신이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지키느라 정작 지켜야 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또한 가족을 지켜야 하고, 가정의 붕괴를 막아야 하는 동훈에게 이사 후보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딜레마다.

그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준영에게 ‘조용히 헤어지기만 하면,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장례식장 화환 걱정 없는’ 위치가 되려면, 이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3막(9화~12화)/ 첫사랑(=삶), 내력 붕괴(=죽음) 그리고 자기애

3막에서 펼쳐지는 지안의 사랑의 플롯은 이 작품의 백미다. 9화의 첫 부분에서 지안은 도준영이 싫은 이유에 대해 ‘아저씨가 싫어하니까’라고 답한다. 지안의 마음을 드러내는 고백이나 다를 바 없는 이 말에 동훈은 걸음을 재촉해 앞서 걷기 시작한다.

당돌한 지안과 수줍어하며 외면하고 거리를 두려는 동훈의 모습이 담긴 이 장면은 이들의 관계와 행동을 집약해 보여준다. 지안의 가슴 앓이는 점점 강렬해진다. 그날 밤 동훈이 정희네를 나설 때, 지안은 정신없이 달려가 그의 뒤를 밟으며 숨소리를 듣다가 그가 바람피운 아내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한숨짓는다. ‘진짜 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지안의 달리기는 이제 항상 동훈을 향한다.

광일은 지안을 해코지하기 위해 동훈에게 지안의 절도를 고자질하지만, 오히려 동훈은 춘대를 통해 지안의 과거를 듣고 난 후 광일을 찾아가 주먹다짐을 벌인다.

“나라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는 다 죽여!”

이 대사는 동훈이 지안을 부하 직원(식구)으로 여기려는 복잡한 심정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훈은 이 격투를 통해 남성성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동훈이 자신의 모든 과거를 듣고도 개의치 않는 것은 물론 공감해주고, 온몸으로 편들어주는 것을 듣고 지안은 목놓아 운다. 감사와 안도와 치유됨의 울음이다. 동훈은 지안이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를, 알고 나면 모두가 자신을 기피하던 그 과거까지도 품어준다.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름대로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 

동훈에게 더 큰 애정을 느끼게 된 지안은 동훈의 이사 승진에 자신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그를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 “뒤통수 한 대만 때려줄래요?”

하지만 다음 날 동훈은 지안에게 자르지 않겠다고 호통 친다.

“이 나이 먹어서 나 좋아한다고 짜르는 것도 유치하고, 학교 때 아무 사이 아니었던 애도, 어쩌다 걔네 부모님 만나서 인사하고 몇 마디 나누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이 아니게 돼. 나는 그래. 나, 니네 할머니 장례식에 갈 거고, 너, 우리 엄마 장례식에 와.”

자신의 승진에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치사하게 굴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남녀 사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그러니 제발 불편한 사이로 끝맺음하지 말자는 부탁이다.

이제 지안은 변하기 시작한다. 동훈에게는 ‘어디 가서 티 내지 않겠’다고 하지만, 자신이 기혐하는 준영과 윤희 앞에서는 그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겠다고 당당히 밝힌다.

“그만두라면 그만 둘 건가?”
“그만두죠. 대외적으론.”

그리곤 부하직원 인터뷰를 훌륭히 해냄으로써 동훈을 ‘상무로 만든다.’

동훈이 지안에게 선사한 것 중 가장 멋진 것은 동료와 이웃일 것이다. 늦은 밤에 직장 상사인 동훈이 후계동 사람들에게 부하 직원 지안을 소개시켜줄 수 있는 건, 그리고 데려다주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의 동훈의 삶이 투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그들의 관계가 부적절한 선에 미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 덕분이다. 덕분에 지안은 이웃들, 어른들의 보호와 관심 속에 귀가할 수 있게 된다.

투명함과 은밀함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투명함은 연대 공동체의 큰 특징이며, 구성원을 위험과 타락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훈의 가정과 신념은 붕괴된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숨기고 묻어두고 싶었던 것을 서로가 알게 되면서 파탄에 이른다.그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사망선고를 받은 채 주검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상훈(박호산), 기훈(송새벽), 유라(나라)의 이야기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기훈은 유라가 출연 중인 영화의 감독을 찾아가 드잡이를 벌이고, 유라에게 자신의 과거 잘못을 고백하고는 정희네를 찾아와 뜬금없이 말한다.

“난 있잖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고, 내가 제일… 좋아.”
“난 그냥 내가 좋은데?”

상훈의 대꾸다.

“내가 그래서 형을 좋아해.”

다소 성긴 느낌을 주는 이 장면은 모두가 망가졌음에도 불행해 보이지 않아 유라를 안심시켜주었던 후계동 사람들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그것은 ‘자기애’다. 때론 뻔뻔해 보이고, 때론 성숙해 보이지 않을지언정 결국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다.

유라는 자기애를 가지고 있지만 자존감이 낮고, 의존적인 인물이다. 상훈은 자기애가 충만할 뿐, 나이에 걸맞은 성숙함을 가지지 못한 인물이다. 기훈은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동시에 자기 통제력이 부족한 탓에 자기 파괴에 이르기 십상인 성격이지만 충분한 자기애를 가지고 있어 균형을 이루는 인물이다.

동훈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는 더욱 망가진 인생을 살고 있는 상훈과 기훈보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 동훈을 더 걱정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동훈이 불평 없이 의무에만 충실할 뿐 자기애를 가지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동훈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힘든 사람이다. 후계동 사람들 틈에서도 혼자 유리되어 보이는 이유다.

동훈의 형제를 포함한 후계동 사람들이 때론 한심하고 지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우리가 그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게 되는 데에는,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을 자기합리화를 통해 변명하거나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내력 붕괴의 위험에 빠져드는 동훈은 산사를 찾았을 때, 자기합리화의 위험한 면모를 보여준다.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동훈은 겸덕의 위로에 조금의 위안을 얻지만 끝내 깨달음은 얻지 못한 채 돌아온다. 그리곤 회사 대표이사실에서 준영에게 주먹을 날린다. 이 장면은 불의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기보다는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한, 절제력을 잃어가는 동훈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후 윤희가 무릎을 꿇으며 사죄할 때, 동훈은 폭발한다. 가정을 망가뜨린 것이 가족이므로 갈 곳 없는 그의 분노와 원망은 문짝에 주먹을 날리는 자해로 이어진다. 그의 내력은 붕괴된 것이다. 그러나 동훈은 아직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의 신념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를 지안이 위로한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엄청. 좋은 사람이에요, 엄청.”

 

 

■ 4막(대단원): 13화~16화/ 어른과 아이. 반성과 용서. 성장

동훈은 결국 이사로 승진한다. 뉴트럴한 색감으로 통일된 화면에 원색의 선명함이 도드라지는 흰색 셔츠와 감색 타이의 대비는 그를 돋보이게 한다. 남성성의 회복, 권력의 획득을 상징한다. 이것은 음모에 맞선 진심이, 치사함에 맞선 당당함이 일궈낸 승리다.

하지만 음모와 범죄, 은폐와 희생 위에 세워진 가짜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를 잃는다.’ (보다 엄밀히 분석하자면, 3막은 지안이 떠났음을 동훈이 알게 되는 13화까지다.)

동훈은 지안에게 어른으로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험담을 당사자에게 전하지 마라. 누구를 응징해봐야 그 오물을 자신도 뒤집어쓴다. 지난 일 아무것도 아니다. 등등
사소한 것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었던 아이는 그렇게 어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길들여진다.

작가는 동훈이 지안에게 건네는 말 사이에 어리석은 동훈의 신념 하나를 끼워 넣는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약속해 줘. 모른 척해주겠다고.”

지안은 동훈에게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때문에 동훈의 저 가르침과 약속을 위해, 동훈의 붕괴된 가정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시 후계동을 떠난다.

 

지안의 모든 불행은 잘못된 어른과의 만남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부모로부터 부채를 떠안고,폭력적인 사채업자에게 폭행을 당하며 악행을 배우게 되고, 무력한 조모는 보호는커녕 부양해야 할 의무만을 떠안긴다.

동훈을 만나 처음으로 위로받고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그가 가르쳐준 비밀 엄수의 의무는 다시금 살기 품은 눈빛으로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어긋난 신념을 품게 하고, 더러운 컨테이너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곪아가는 상처를 안고 신음하게 만든다. 아저씨가 정말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만을 가진 채.
결국 동훈은 자식에게는 강요하지 않을, 미숙한 신념에 따른 무조건적 희생의 삶을, 그런 사랑을 지안에게 강요한 셈이다.

작품을 통해 가장 큰 진폭으로 변화하는 인물은 윤희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종교와 사상과 이론을 상징하는 인물과 상황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아직도 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교적 가치관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유교를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는 낡은 규율이자 제도로 기억할 뿐,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은 잊고 있다.
유교는 오히려 삶의 의미가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가족은 그 자체로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상호 간의 사랑과 의무 이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가장 고통스럽게 우리를 속박하는 제도이자 규율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동훈과 윤희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을 통해 가정의 의미를 살펴보기 보다는 가정의 붕괴라는 위기를 통해 동훈이 가진 신념의 실체를 보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 가족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인내했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윤희와의 부부싸움에서 드러나듯, 동훈은 가정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 문제를 마주하며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회피하고 침묵했다. 그리곤 다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정을 위해 희생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서서히 가정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헌신하고 있다고 여겼다.

이미 붕괴된 신념-망가진 가정을 아닌 척 외면하고, 타인에게 은폐하는 것이 과연 의무에 충실하고 신념을 지켜내는 삶의 방향일까.
동훈은 성찰의 결과로서의 신념이 아니라 제도와 규범에 대한 기계적 순응 자체를 신념으로 삼고 있다. 그런 신념의 결말은 평판과 체면이 지배하는 세속적 질서라는 집단적 환상에 굴복하는 삶일 뿐이다. 자기 철학의 지향 없는, 실체 없는 신념으로 이루어진 내력이라면 언젠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 비뚤어진 신념과 잘못된 교육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동훈은 깨닫는다. 이때, 윤희가 먼저 동훈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 말하자”

작품을 통해 가장 큰 진폭으로 변화하는 인물은 윤희다. 밀월여행을 가느라 조카의 결혼식에 불참하고, 시어머니의 생신잔치에서는 불륜남과 문자를 주고받던, 용서받기엔 너무나 큰 과오를 저지른 인물이지만, 진심을 담아 반성하고 달게 죗값을 치른다. 어른다운 모습으로. 어쩌면 윤희 역시 욕망에 휘둘리기 전에는 밥 먹고 술 마시는 게 전부인 동훈의 연애에도 충분한 행복을 느끼는 순수함을 가진 인물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욕망하는 인물에게 희생의 미덕을 설파한다면 이 이야기는 희생하는 인물에게 자기애의 필요를 일러준다.

 

지안 역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제 동훈은 지안을 찾기 위해, 지안에게 잘못된 신념을 심어준 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것은 자신의 잘못임을 알리기 위해 뛴다. 컨테이너에서 지안과 재회한 동훈이 ‘개망신? 그거 아무것도 아냐’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릇된 금기로부터 지안을 해방시켜주는 동시에 자신도 해방되는 순간이다.
스스로 ‘행복해지겠다’는 말은 결핍되었던 자기애를 가지겠다는 다짐이며, 이로써 동훈의 신념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진다.

감동적인 장례식이 끝날 무렵 지안이 다시 달린다. 달릴 때 비로소 자신이 된다던 지안이 모든 것을 털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미래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사건이 모두 정리되고, 지안은 다시 떠난다.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할 거라면서요. 나 없이도 행복한 사람 무슨 매력 있다고.”

그러나 동훈은 지안 덕분에 ‘다 죽어가다가 살아났’고, 지안은 동훈 덕분에 ‘처음으로 살아봤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삶과 같은 의미가 된다.

동훈과 지안은 단 한 번도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은 채 오로지 주려고만 했지만, 자기가 불쌍하고 상대가 불쌍해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는 사랑 역시 행복하지만은 않을 테니 그들의 이별은 오히려 현명하다.
이제 혼자 남겨진 동훈이 ‘한 번도 안아본 적 없는 나’를 부둥켜안고 운다. 그렇게 그는 자기애를 처음으로 배운다. 아마도 그 자기애는 그의 새로운 신념을 경직되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욕망하는 인물에게 희생의 미덕을 설파한다면 이 이야기는 희생하는 인물에게 자기애의 필요를 일러준다. 의무에 충실하고 성실한 인물에게 신념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의무에 충실한 인간 유형과 욕망에 충실한 인간 유형. 어느 쪽이 더욱 현명하다거나 옳은 가치관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편향되고 결핍된 부분을 잘 보살피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동훈은 이사직을 사임하고 삼안E&C를 퇴사한다. 부당한 승리의 반납은 당연하다. 그리고 스스로 회사를 세운다. 자신의 회사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넣은 ‘(주)동훈구조기술’로 지었다는 것은 그가 이제 자기애를 가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1년 후 우연히 만난 동훈과 지안은 모두 편안함에 이른 모습이다. 성장한 모습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고, 욕망하는 법도 배우지 않았을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가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 <나의 아저씨>의 진한 여운

동훈은 지안을 사랑했을까. 작품의 팬들 사이에서도 이 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건 흥미로운 일이다. 12화 이후 결방으로 인해 13화가 방영되기까지 2주 동안을 기다리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결말부에 동훈, 지안, 윤희, 준영, 이 네 사람의 대면 장면이 등장할 것인가’였다.

8화 종반부에 등장하는 준영의 대사 ‘절대로 발뺌 못해’라든가, 지안의 인터뷰 때, 윤상무가 ‘그래서 좋아했나?’라고 묻는 장면 등을 생각해보면 이들 네 명이 대면한 자리에서 준영이 동훈에게 지안에 대한 감정을 묻는 장면은 당연히 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4자 대면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형시에서 운율 하나가 법칙을 벗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4자 대면 장면은 결국 등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동훈이 지안에게 ‘뭐 바라는 거 없이’ 오직 선량한 의도에서 친절을 베풀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올바르게 처신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지안에 대한 감정이 가장 격렬한 상태였던 컨테이너 장면에서의 동훈의 말을 떠올려 보자.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해야겠다. 너, 나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는 꼴 못 보겠고, 난 그런 너, 불쌍해서 못 살겠다. 너처럼 어린애가 어떻게… 나 같은 어른이 불쌍해서… 나 그거 마음 아파서 못 살겠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 거고.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쑤근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 할게.”

이 대사에는 동훈의 복잡한 심정과 진심이 모두 담겨있다. 동훈은 어른인 자신이 어린 지안을 사랑하면 안 된다고 여긴다. 동시에 어린 지안의 순수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때문에 지안이 그래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그러니 서로를 향한 마음은 연민이라고 한정한다.

그러나 어떤 연민이 극에 달한다고 해서 ‘마음 아파 못 살’ 지경에 이를 수 있을까. 이 대사는 연민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답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거절이지만, 절절한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동훈은 지안과의 관계에 있어 끝까지 떳떳하게 행동했지만 ‘그래서 사랑했나?’ ‘좋아했잖아?’처럼 유치한 세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 여러 겹의 복잡한 감정 속에 사람들이 말하는 그 사랑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그 장면이 등장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는 비극적인 결말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작가는 작품의 색깔이 정해진 후에는 꽤 빠르게 4자 대면 장면을 넣지 않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의 모든 것이 지금의 결말과 잘 어울리게 구성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작품은 품격을 얻었고, 따뜻한 결말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으니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의 아저씨>는 ‘이야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 작품은 의무감과 집단의 규범에 짓눌려 스스로를 속박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다독인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사랑에 보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 할게. 행복 할게.” 

좋은 어른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미안해야 할 때와 감사해야 할 때를 알고,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안해.” “고마워.”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나 기발한 당시 상황을 떠오르게 하는 대사들이 명대사라 회자되곤 하지만,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과 이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이 짧은 대사들이야말로 명대사라 부를만하다.
주인공들은 결말에 이르러 고작 ‘편안함에 이르는’ 보상을 받지만 시청자들은 모두 완벽한 결말이라며 만족해한다. 또한 선량하고 올바른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놀라운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마약 같다고 표현하며 다른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호소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것은 다른 드라마보다 복합적인 감성적 체험과 깊게 감정이입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다시 정리해보는 것으로 하겠다.

<나의 아저씨>는 이야기 만들기가 힘들어지고, 회의를 느끼던 참에 만난 작품이다. 내가 쓰고 싶어 했던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어 화가 날 법도 했는데, 너무 고마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준 이 작품의 제작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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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옥닷컴 오픈특집기획 <나의 아저씨> 리뷰大展

그 사람에게 마음 쓰지 않을 수 있을까《1》 by 혜수
K-드라마의 독보적 성취: 김원석감독 作 <나의 아저씨>《2》 by 박박사
<나의 아저씨>가 데려다 준 이들《3》 by 이선옥
부제(인 척 하지만 사실은 원제) : <나의 아저씨>와 작품을 둘러싼 주변에 대해 《4》 by 홍대선 
스토리텔러가 본 <나의 아저씨>의 모든 것 《5》 by 양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