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지성의 무덤이 되다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급진적인 여성주의 그룹 워마드의 반사회적 행동이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이들의 운동을 페미니즘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질문을 바꿔보자. 왜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하는가?

페미니즘 단체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이 5월 17일 서울 신논현역 앞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편의상 ‘넷페미니스트’라고 하자. 나는 최근 3~4년 사이에 빠르게 확산된 이들의 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 왔다. 나의 비판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념 자체보다는 사회 보편의 규범을 넘어서는 행위와 이를 약자의 정당한 행동이라 엄호하는 진보진영(진보언론·진보정당·진보지식인)을 향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왜 그렇게 비판적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세 가지로 답했다. 첫째, 기본권을 후퇴시키고, 둘째,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타격을 주며, 셋째, 반지성주의를 강화하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현재 페미니스트들의 행위에 대한 비판으로 선을 그었다.

페미니즘이 보편의 권리와 관련된 인권운동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은 권리 침해사안들을 발굴하고 바로잡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참정권 보장, 성적 자율성 침해에 대한 제도적 규제가 대표 사례다. 페미니즘은 근대의 보편적인 인권 원리를 더 잘 구현하도록 기능했기에 지지받았고 제도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을 강화하기보다 이를 후퇴시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성범죄에 한해 여성에게는 무고죄의 적용을 예외로 둔다거나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법리에 근거하지 않은 가중처벌을 요구한다거나 ▲무차별적인 폭로로 사적인 린치를 가하는 행위를 옹호하는 일들이다. 형사사건에서 특정 성별에만 특권을 부여하는 일은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 동등한 법률적 지위를 보장받을 권리라는 기본권을 위협한다.


무너진 삶,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이미 우리 사회의 명제다. 최근 한 진보매체는 이 명제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도발적 제기를 했다. 성범죄자에 한해 신상 공개나 화학적 거세 등 문제에서 엄벌주의를 외치는 것은 보수였다. 진보진영은 그들을 설득시키는 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특히 넷페미니스트들은 인터넷을 활용해 폭로운동을 주도해 왔다. 가이드라인과 검증장치가 없는 폭로는 부작용이 따랐다. 유명인부터 일반인까지 온갖 개인들이 폭로의 대상이 되어 삶에 타격을 입었다. 법치를 기반으로 한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죄형법정주의와 무죄 추정의 원칙은 부정당하고, 즉결심판과 명예형이 정의롭고 정당한 처벌의 지위에 올라섰다. 한 번 무너진 삶은 회복될 수 없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런 세상이 된 데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론을 허용하지 않은 반지성주의의 역할이 컸다. 합리적인 토론과 치열한 논쟁으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할 개념들이 일방적으로 규정됐다.

여성혐오가 대표 사례다. 낯선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모르면 공부하라” “이해가 안 되면 외워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페미니스트들 자신도 ‘Q&A’식 대응을 모범답안으로 권장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런 말에는 이렇게 대꾸하라며 쏘아붙이는 매뉴얼이 페미니즘 입문서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한 여성단체는 여혐논란을 겪은 정치인의 사과문을 빨간펜으로 첨삭해 다시 발표했다. 공개적인 면박이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여혐이 되었고, 진보매체들은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글을 거절했다. 여성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만이 개념을 독점하고 평가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함, 반론과 비판의 차단을 당연하게 여기는 반지성적인 풍토가 지난 3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처음 목격하는 광경들이었다.

급진적인 여성주의 그룹 워마드의 반사회적 행동이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이들의 운동을 페미니즘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질문을 바꿔보자. 왜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하는가?

‘워마드가 페미니즘인가’ 무의미한 질문

워마드류의 ‘나쁜 짓’을 페미니즘과 분리하려는 마음에는 페미니즘을 지키고 싶은 전제가 있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위한 운동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보편인권의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 운동에 선의를 갖는다. 한편으로 진보진영은 페미니즘을 기본권의 지위에 두는 착각을 해 왔다. 성평등, 인권 같은 개념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남녀평등·성평등·인권은 같지 않다. 이들이 같다는 주장은 예를 들어 마오이즘과 인간해방은 똑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마오이즘은 인간해방이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즘도 남녀평등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다.(물론 페미니즘만이 남녀평등에 대해 유일하게 타당한 이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은 “1000명의 페미니스트가 있으면 1000개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개념에 대한 평가와 의문을 일축해 왔다. 선의의 의문에 대해서도 좋고 나쁜 페미니즘이란 없다며 페미니즘 ‘감별’을 비난했다. “우리는 모두 메갈이다”라는 선언은 낙인에 대한 저항뿐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이념 자체에 대한 이론적 차원의 대응이기도 했다.

즉, 페미니즘은 원래 그런 것이다. 테러를 일삼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도 이슬람이듯, 무장투쟁을 선택한 민족주의자가 존재하듯 극단적인 여성 우월주의도 페미니즘의 계보에 해당한다. 이들의 급진적(때론 반사회적인) 투쟁방식은 세계적으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워마드가 페미니즘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지금 한국은 극단적 노선의 페미니즘이 주류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된다. 이념의 바깥에 있는 대중은 애초 페미니즘에 우호적이었던 이유, 남녀평등, 성평등, 인권과 같은 개념을 계속 소중하게 여기면 되는 일이다. 지켜야 할 것은 가치이지 ‘이즘’이 아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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