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여성: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래 인용한 글은 독일의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여성, 스베냐 플라스푈러의 책 [힘 있는 여성] (도서출판 나무생각, 2018년 발간) 서문을 발췌한 내용이다.
내가 처음 페미니즘과 여성학을 접했을 때 선배(여성)들은 바로 이 서문처럼 얘기했다. 여성은 더 이상 나약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가부장제가 규정한 여성상에 머물지 말고 거침 없이 나아가라. 페미니즘은 금기와 한계, 억압에 도전하는 매력적인 이즘이었다.
여성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많은 제도가 여성들의 투쟁으로 변화한 지금은 과연 어떤가?
저자는 미투 운동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피해자로서만 존재하는 여성, 피해자성에 갇힌 운동,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여성운동을 비판한다. 저자 역시 페미니스트다.
저자의 질문은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의미 있는 물음이다.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힘 있는 여성은 심리적으로 가부장제를 넘어섰다. 법적으로도 가부장제는 끝났다. 힘 있는 여성은 수치심과 아양도 낡은 옷을 벗듯 훌훌 벗어던졌다. 쾌락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방식은 직접적이며, 그녀의 욕망은 자주적이다.
 
힘 있는 여성은 여백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남성을 위해 존재하지도, 남성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남성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영상 속 소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녀는 남성과 동등하지만 동일하지는 않은 상대다.
 
힘 있는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난 지는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절대 스스로 복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격의 칼끝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그 칼이 향할 곳이 어딘지를, 그것이 남녀 양성의 깊은 소외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힘 있는 여성의 위대함은 지배욕의 충동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에서 나온다. 어떤 형태의 물화(Verdinglichung)도 그녀는 단호히 거부한다.
 
힘 있는 여성은 시대에 뒤처진 현재를 과감하게 뛰어넘는다. 아직은 다른 서사가 불가능해 보였기에 이른바 약한 성이 자신에게 떠맡기듯 부여한 피해자의 지위에 매달렸던 변화의 몇십년은 지나갔다. 자신의 욕망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여성이 자신을 위해 자신의 성생활을 규제해줄 법을 요구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힘 있는 여성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가능성이다. 왜 우리는 이 가능성을 붙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