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태 의원은 의회 내 대표적인 청년남성 페미니스트 의원이다. 그는 미투, 위드유에 동참하고 성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선언해왔다. 그런 장경태 의원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고소를 당했다.

페미니스트 진영이 주력하는 성평등 운동의 대표적인 분야가 반성폭력 운동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장경태 의원이 처한 상황은 매우 궁색하다. 성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모든 노력을 지지해온 입장이라면 지금 장경태 의원에게 놓인 선택지는 하나다.

페미니스트 진영인 여성 단체의 성폭력 기준은 사법부보다 훨씬 넓다. 남성이 고의에서 한 행위가 아니더라도 여성이 느낀 성적 수치심이 곧 성폭력 피해의 기준이고,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민주당의 여성남성 페미니스트 의원들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의무화하고 계속 강화하는 입법활동을 해왔다.

장경태 의원이 지지하고 활동해온 집단의 기준에 따르자면 장경태 의원은 성폭력 가해자이고, 이를 부인하는 것은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임을 인정하거나, 인정할 수 없다면 그동안 자신이 지지해왔던 기준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장경태 의원은 내가 그동안 지지하고 사회에 강제했던 원칙이 겪어보니 잘못됐더라는 이야기 대신, 나는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고 무고의 공격을 받은 억울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장경태 의원의 잘못은 성폭력 가해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현재 사법부의 기준으로 보자면 성폭력범죄(준강제추행 포함)의 판단 기준은 신체 접촉이 있음이 입증되고, 상대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진술이 있으면 유죄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폭력이나 강제가 없는 경우라도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위력간음죄라는 별도의 강간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장경태 의원의 경우 보도된 동영상으로 신체접촉 사실이 인정이 되고, 상대 여성은 고소를 한 상태이며, 준강제추행죄로 고소를 당하였지만 국회의원과 비서관이라는, 위력행사가 인정되는 사회적 관계까지 해당된다. 대부분 유죄인정이 가능한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남자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성범죄자라는 혐의는 남자 페미니스트를 예외로 두지 않는다. 남자 페미니스트들이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챌린지를 하고, '미투' '위드 유' '미퍼스트' 운동을 하고, '나는 나쁜 남자가 아님을 성실하게 입증'해도 페미니즘이 만들어놓은 촘촘한 성폭력 가해자의 기준에 걸리지 않기란 어렵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논리 아닌 논리를 받아들여, 미투운동을 검증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만들어놓은 순간 정해진 운명이다.

이러한 상황을 겪은 남자 페미니스트들의 올바른 대처법은 무엇일까? 나라면 어떤 입장문을 쓰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생각해봤다. 내가 듣고싶은 말을 적은 셈이지만, 언젠가 이런 사람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적어본 입장문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을 반성합니다. 우리모두를 지켜주던 원칙을 다시 회복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미투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같은 남자 페미니스트와 제가 속한 정치집단이 그동안 미투를 일방적으로 지지한 결과 성범죄는 검증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 돼버렸습니다.

당사자가 되어 겪어보니 왜 많은 가해지목인들이 지금의 저와 같이 억울함을 호소했는지 알겠습니다. 사과드립니다.

반성에 그치지 않고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입법부의 일원이자 헌법 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우선 성폭력과 성범죄의 범위를 계속 확장하고 처벌을 강화하기만 해온 입법부의 책임이 큽니다. 또한 사법부가 증거가 아닌 성인지 감수성으로 판결하는 문제도 계속 지적받아 왔습니다.

약자인 여성을 지키려는 선의에서 한 일이지만, 우리 모두를 지켜왔던 원칙을 무너뜨린 결과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반성하고 바로잡겠습니다.

성범죄는 다른 모든 범죄보다 특별하게 취급받습니다.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직장에 통보가 되고, 무죄로 인정된다 해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법 앞에 모두를 평등하게 대한다는 원칙, 어떠한 구성원도 법적으로 이등국민을 만들 수 없는 원칙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헌법기관으로서 이 원칙을 회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폐지하겠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국가적 이념으로 전파하는 여성 단체들에게 국가예산이 지원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이 더이상 독점적으로 성폭력의 기준을 만들고, 피해자를 규정하고, 사법부를 압박하고, 피해자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의 논리가 우리의 원칙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해자로 지목되어 보니 진실이 규명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중요한데, 2차가해 금지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페미니즘의 논리가 사실과 진실에 접근하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하는 절대적인 '교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어라도 할 수 있지만, 절대적 교리가 되어버린 2차가해 금지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막혀 자기방어를 위한 어떠한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쓰러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억울함이 쌓인 결과 제가 이정도라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 생각합니다.

무고는, 특히 성범죄 무고는 한 사람의 인생과 삶과 명예를 무너뜨리는 매우 중대한 범죄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미투 운동 과정에서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되어 인생과 삶과 명예가 무너졌습니다. 제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어떻게 날지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억울함과 별개로 저는 성범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낙인 속에 산다는 게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 아직 모릅니다.

우리모두를 지켜주던 원칙을 무너뜨린 결과, 제가 그 화살을 맞게 됐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이제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데올로기가 만든 교리가 아닌 우리모두를 지켜주던 원칙이 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판자에게도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나는 장경태 의원이 "무고는 한 사람의 인생과 삶과 명예를 무너뜨리는 매우 중대한 범죄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걸 이제야 아셨습니까? 당신이 만든 세상입니다, 라고 하고 싶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남성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감과, 민주당과 좌파진영의 스윗한 남성들에 대한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 장경태 의원처럼 적극적인 남성 페미니스트의 경우 억울함을 호소해도 지지받기 힘들다. 당파적인 입장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건 장경태 의원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장경태 의원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그를 향한 비난이 과연 무엇을 위함인지 간과한다는 점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당파적 이익에 빠져 어리석은 대처를 하고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금지론을 페미니스트보다 더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장경태 의원과 지지세력을 비난하는 일은 자신에게 덫을 놓는 행위이다. 장경태 의원이 복무했던 그 교리가 결국 장경태 의원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온 결과를 보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간 국민의힘은 민주당에서 성과 관련한 비위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우선 여성의원들을 앞세워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공식을 강화한다. 폭로나 고소 단계부터 피해자를 즉각 단정하고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가 가장 우선이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사용을 2차가해라 비난하며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다시 받으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국민의힘과 같은 대처는 결국 페미니스트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페미니즘의 언어와 페미니스트가 만든 원칙으로 이러한 사안을 대하면 일시적으로 당파적 이익이 있다해도 마지막에 웃는 건 페미니스트 진영일 뿐이다. 증거가 아닌 감수성이 사법적 판단의 기준이 되고, 당사자의 모든 항변과 사실관계를 위한 노력은 2차가해로 금지되어 기본권마저 위협받는 세상은 보수진영이 지켜야하는 법치주의 국가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교리인 2차가해 금지와 피해자 중심주의가 더 강력하고 확고한 교리로 강화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피해호소인의 주장을 진지하게 취급하면서도 사실관계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는 성폭력 사건에서 공정한 판단에 이르기 위해 페미니스트 진영이 만든 개념이다. 양쪽의 주장이 충돌할 때 피해자 가해자를 즉각 단정하지 않고 판단 전까지는 피해호소인과 가해지목인이라는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가 2차가해로 공격받는다. 피해호소인이 허락하지 않을만한 모든 견해를 금지하는 원칙이 되었다. 본래의 개념을 벗어나 오남용되지만 페미니스트 진영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니 이를 교정하지 않는다.

호소하는 피해의 내용을 존중하고 그를 보호하려는 노력과,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주장도 존중하면서 객관적 사실을 파악하는 일은 양립 가능하다. 누구든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는 명료하게 나를 지지하는 견해가 아닌 모든 말들은 불안과 불쾌감을 준다. 국민의힘 주장대로라면 피해호소인에게 두려움과 불쾌감을 주는 시도는 2차가해가 된다. 그러나 공론의 장에 사안이 던져진 이상 그러한 원칙은 가능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국민의힘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장경태 의원에게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는 2차가해이니 피해자라고 불러서 성인지감수성을 증명하라 비난한다. 페미니즘에 충성과 헌신을 맹세하라는 요구와 같다.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상대방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공세를 편다. 그러나 이는 결국 페미니스트 세력에게 이익이 되는 주장이다.

모든 정치집단이 당파적 이익을 우선해 반복적으로 잘못된 대응을 해왔다. 그결과 페미니스트 집단이 모든 성관련 사건의 심판이 되고, 페미니즘의 논리가 법보다 강력한 룰이 되었다. 장경태 의원과 민주당을 비판하더라도 그 행위가 페미니스트 진영의 권력으로 쌓이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위선과 이중성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되, 페미니즘의 교리가 원칙이 되어버린 상황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덫을 놓지 않으면서도 우리 모두를 지켜줄 원칙을 회복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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