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보수와 진보라는 기준의 재구성이 필요할 때: 하태경, 장혜영, 이준석의 예

이선옥 승인 2022.08.28 19:21 | 최종 수정 2023.12.15 01:26 의견 0

읽기에 앞서: 이 견해는 주관적인 인상비평에 기반한 것이니 가볍게 읽기를 권합니다.

보수정당 중진 남성의원은 꼰대?: 하태경 의원의 예

2021년 여름, 백분토론에 나가게 됐다.

주제는 '여가부 폐지', 패널은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 그리고 우석훈 교수였다.

나는 하태경 의원의 추천으로 섭외가 됐는데 TV방송 출연이 처음이어서 긴장이 됐다. 의원실 여성 보좌관께 녹화 전날 연락해서 방송 전에 긴장도 풀겸 대기실에서 보자고 했더니 "어? 저는 안가는데요" 하시는 거다.

그럼 다른 비서가 오시느냐 물었더니 "우리 아무도 안가는데요.

원래 의원님 방송이고 뭐고 혼자 다니셔요.

내일도 혼자 가실 건데"라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다시 물었다. "국회의원들 그런 데 나가면 당연히 비서나 보좌관이 같이 오지 않나요?" "우리는 잘 안가요.

의원님이 워낙 혼자 잘 다녀서 택시 타고 다니시고.

특별히 가야할 일 아니면 우리는 그냥 우리일 해요." "저 혼자 긴장돼서 당연히 오실 줄 알고 같이 있으려고 했더니만 안되겠네요." "그럼 작가님 땜에 내일 가야겠네ㅎㅎ 내일 보고 같이 얘기라도 하죠 뭐~" 하고는 녹화날 의원과 함께 오셨다. 녹화장에서도 의원은 의원대로 다니고 보좌관은 의원이 아닌 내 옆에서 토론내용에 대해 견해도 나누고 긴장을 풀어주셨다. 그 전에도 일 때문에 하태경 의원실에 몇 차례 들른 적이 있었는데 사무실 분위기에서 권위적이거나 의원을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보좌관, 비서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의원실이 비어있으면 거기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의원이 있으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나오곤 했다.

편안했다.

진보정당 청년 여성의원은 진보?: 장혜영 의원의 예

백분토론 녹화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모습은 하태경 의원과 대조적이었다.

당연히 보좌관이 수행으로 붙어 자료와 짐을 들고 동선을 따르며 일일이 챙겼고, 녹화장에 들어서서도 무슨 자료를 찾으면서 "보좌관 어디 계시죠? 뭐뭐좀 가져다 주세요" 하면 바로 달려오는 등, 계속 옆에 따라다니면서 어린 공주님을 모시듯 했다. 그간 봐오던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모습으로 보자면 익숙한 광경이었다.

새로울 것 없이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두 장면의 대칭이 생경했다. 으레 권위적인 꼰대의 모습을 상상했던 남성의원은 꼰대스러움이 없고, 웨스트윙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롭고 동등한 관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을 것 같은 여성의원은 오히려 '영감님'의 모습에 가까웠다. 하태경 의원이 백분토론에 나를 추천한 것은 가뜩이나 여성차별 오해를 받는 여가부 폐지라는 주제인데다, 보수정당의 중년 다선인 남성의원과 진보정당의 초선 젊은 여성의원이 대립하는 구도가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폐지 견해쪽에 여성인 나를 추천해서 성별의 문제가 아닌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자 했다. 그런데 꼰대에 권위적이라고 여겨지는 보수중년 남성의원은 수행원 수발 없이 혼자 다니면서 영감 행세 안하고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는데, 오히려 탈권위, 자율이 기본일 것 같은 젊은 진보정당 여성의원은 수행원 없는 광경이 상상이 안될만큼 극진한 수발을 받고 있는 광경을 보자니, 이미지는 이미지일뿐 상징적으로 부여된 고정관념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지는 것만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린다면 하태경 의원쪽이 오히려 탈권위, 자율, 진보에 가까웠다.

진보와 청년의 미덕은 탈권위?: 정의당 여성의원과 이준석 대표의 예

올해 1월, JTBC 가면토론회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섭외가 됐다.

안타깝게도 녹화 후 바로 폐지되는 바람에 방영은 되지 못했다.

녹화날 방송국에 갔는데 출연자들끼리도 서로 모르도록 하는 컨셉이어서 도착후 연락을 하면 제작진이 가면을 들고 내려와 뒤집어 씌운후 데리고 올라갔다. 주차장에 먼저 도착한 나는 우연히 다른 출연자들을 보게 됐는데 이준석 대표는 당시 '마라탕'으로 알려진 터라 출연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차할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데 차가 한 대 들어왔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니 이준석 대표였다.

듣던대로 혼자였다.

나도 자리를 잡고 제작진에게 도착을 알렸다. 가면을 기다리는데 제작진 한무리가 내려와 움직였다.

승합차가 한 대 세워져 있고 문이 열리니 여러 사람이 보였다.

한 여성에게 가면을 씌웠고 그녀는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려 이동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이 여럿 같이 온걸 보고 국회의원이 왔나보다 생각했다.

예상대로 정의당의 의원이었다. 스스로 출연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니 이름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정의당의 몰락을 감지했다.

녹화날인 1월 중반은 3월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선거운동에 돌입한 시기였다.

의원도 몇명 없는 정의당 같은 작은 정당은 모든 인력이 최대한 대선캠프에 합류해 전국을 뛰어다녀도 모자랄 시기였다. 그런데 방송출연 녹화에 스텝이 여럿 따라온 걸 보고 저 당은 망했구나 싶었다.

제대로 굴러가는 정당이라면 이 시기에 저 인력을 의원 녹화장 수발에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당후사나 선공후사까지 안가더라도 생각이 있는 의원이라면 개인 일정은 최소한 인력으로 소화하고 당선거에 복무하는 게 다른 의원이나 당원들 보기에도 상식적일 것이다.

더구나 가면토론은 신분을 숨겨야해서 의원임이 티나게 수행인력이 붙어다니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혼자 단출하게 운전해서 다니는, 더구나 같은 청년인 제1야당의 대표(수행인력이 없는 게 옳은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진보정당의 청년 여성의원에게서 나는 탈권위나 새로움, 참신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자기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나 헌신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왕관을 욕망하면서 그 무게는 견딜 준비도 능력도 안 된 좌파 힙스터들의 놀이터가 된 진보정당의 오늘을 보면서, 한 때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던 사람으로서 민망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이들에게 표를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내가 겪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특히 진보라는 진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두 차례 토론회에서 만난 정의당 청년 여성의원의 토론내용과 태도는 진보라 일컬어질 수 있는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빈정대고 이죽거리면서 그럴듯해 보이는 공허한 말을 그저 길게 늘어놓은 후 우쭐대곤 했다.

무례함으로 상대의 토론의지가 꺾인 순간을 승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담론도, 존중이 담긴 패기도, 진지한 열정도 보이지 않았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자신에 집착할 뿐, 바로 곁에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견해를 나누는 이들에게 진보를 대리하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젊은 나이라는 것 외에는 진보의 미덕으로 건질만한 내용은 아무리 후하게 찾으려 해도 없었다. 진보라는 진영은 지금 어떠한 덕목을 강조하고 어떠한 정치인 상을 권장하는가? 현재 진보를 대표한다는 청년의원들이 그 답일텐데, 이런 모습이 진보의 미래라면 진보는 망한 것이다. 진보는 탈권위적이고 보수는 권위적일 것이라는 편견, 여성은 신선하고 남성은 고루할 것이라는 편견, 청년은 진취적이고 장년은 구태스러울 것이라는 편견, 보수 중년남성은 꼰대스럽고 진보 청년여성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은 그야말로 편견에 불과했다.

기존의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은 현재 양 진영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시대에 맞는 재구성이 필요한 때이다. 매 순간 대중에게 보이는 단면이 합을 이뤄 해당 정치인에 대한 평가로 귀결되는 것이지, 진보 혹은 보수 진영의 주자라는 것 하나로 평가될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진영의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해도 결국 개별 인간의 가치관, 기질, 철학이 행동을 결정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분류기준 자체가 무너진 시대, 진보를 표방하는 것만으로 새로움, 변화, 정의와 같은 개념을 자신들이 독점적으로 보유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렸는데 그들만 그 사실을 모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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