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없앤다면서

이선옥 승인 2019.07.24 15:34 의견 0

흑인은 인어공주를 할 수 없다는 주장만큼, 흑인 캐스팅 비난은 곧 인종차별이라는 규정 또한 편견에 기대어있다.

주간경향 연재-8(원본링크)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판 영화에 흑인 여배우가 캐스팅 된 후 논란이 일었다.

원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배우를 접한 팬들은 당혹스러워하고, 나의 인어공주가 아니야(#NotMyAriel)라는 해시태그로 불만을 표하는 움직임도 있다.

원작이 있는 애니메이션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때 팬덤과 고증세력이 원작 일치 여부를 논하는 일은 흔하다.

다만 이번 논란은 덕후들 사이의 논쟁이 아니라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운동이 가세한 특징이 있다. PC운동은 편견에 기댄 표현을 조심해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려는 행동이다.

대중문화는 표현의 영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므로 늘상 이 운동의 타깃이 된다.

인종, 성별, 종교 등의 표현에서 편견을 적발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의 제작을 압박한다.

디즈니는 ‘다양성은 우리의 핵심전략’이라며 PC주의를 적극 수용 중이다.

이번 캐스팅 비판여론에 대한 대응도 이 운동의 관점에 기반해 있다. 디즈니가 SNS에 올린 입장문은 “불쌍하고 불행한 영혼들을 위한 공개편지”라는 문구로 시작해, 캐스팅 이유를 언급하며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캐스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들 문제"라고 끝맺는다.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사가 작품의 팬이 포함된 대중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조롱하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인어공주 역에 캐스팅된 할리 베일리와 원작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인어공주 캐스팅 논란에서 보듯 대중이 반발하는 이유는 단일하지 않다.

고증 차원의 비판도 있고, 원작에 대한 오랜 애정에서 나온 불만도 있다.

나의 동심을 파괴하지 말라는 말처럼 사람마다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의 특성도 작용한다.

또 굳이 원작과 다른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디즈니의 PC주의 행보에 대한 불만도 누적되어 있다.

문제는 다양한 의견들을 오직 ‘흑인 인어공주를 거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와 혐오자들의 준동’으로 규정하는 태도다. ‘불쌍하고 불행한 영혼, 궤변, 헛소리, 차별주의자, 외모지상주의자, 먼저 사람이 돼라’. 한국의 매체를 포함해서 이번 사태를 비판하는데 동원된 공적 표현들이다.

어떠한 사회운동이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많은 대중을 선한 의도 안으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필수다.

대중의 비난 여론에는 부적절하고 극단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대중의 언어와 공적 언어의 무게는 다르다.

자신의 기준에 동의하지 않으면 곧 차별주의자이며 혐오주의자라 낙인찍는 일, 설득의 노력 대신 동료 시민을 간단히 적으로 돌리는 일은 극단적 표현만큼이나 위험하다.

흑인은 인어공주를 할 수 없다는 주장만큼, 흑인 캐스팅 비난은 곧 인종차별이라는 규정 또한 편견에 기대어있다. 한국의 진보가 사랑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소수자의 목소리에는 모든 비판을 금하고, 발언의 규칙을 강제하려고만 하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한계를 지적한다.

PC운동의 목적이 혐오와 차별의 감소, 다양성의 관철이라고 할 때, 흑백논리 안에 동료 시민을 가둬 더 많은 혐오주의자를 만드는 태도로 이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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