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과 비래디컬 구분이 무의미한 이유: 비동의강간죄 도입의 사례

뿌리는 결국 페미니즘

이선옥 승인 2024.03.27 20:20 | 최종 수정 2024.03.28 14:59 의견 0

'비동의강간죄' 또는 '비동의간음죄'가 총선 공약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약집에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발표했다가 실수였다며 철회했고, 개혁신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혔다. 군소정당인 소나무당의 비례대표 후보 또한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반대논리 한켠에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문제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페미니스트 진영의 주장이 비판을 받을 때마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일부 래디컬의 문제라는 견해는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만의 요구가 아니다.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 보수정당이라는 국민의힘, 민주진보정당이라는 민주당 의원들 모두가 입법을 시도했던 제도이자 페미니스트 진영 모두의 요구이고 주장이다. 이를 래디컬 페미니즘의 폐해로 이해하는 것은 단편적인 해석이다.

약자 감수성 또는 인권 감수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제대로된 페미니즘과 잘못된 페미니즘,

▶극단적 페미니즘과 합리적 페미니즘,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이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은 최대한의 선의를 발휘해 굳이 래디컬과 비래디컬을 구분하려 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좋은 가치인데 단지 극단적 인사 소수가 과대표 되는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성평등이라는 가치와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구분을 애써 유지하려는 이유가 현실과 부합하는지를 한번 들여다보자.

비동의강간죄는 이미 현역 의원들이 입법을 시도해왔다. 2018년 미투가 한창이던 시절 노민즈노법을 발의한 의원들 명단을 보자.

2018년 여야를 망라한 의원들이 모여 비동의간음죄에 해당하는 '노민즈노' 법안을 발의했다. 나경원 의원이 주도했다.(사진출처: 서울경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이은재·김승희·김정재·김현아·송희경·신보라·윤종필 의원이 참여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남인순,

▶당시 바른미래당은 김삼화·김수민·신용현 의원이,

▶당시 민주평화당은 조배숙 의원이 동참했다.

위 의원들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아니다. 이처럼 페미니스트 진영 안에서 레디컬과 비래디컬 사이의 권력싸움이 있을 수는 있으나 페미니즘 정책을 요구하고 추진하는데서 이들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다.

더 많은 여성할당을 요구하고, 성폭력의 범주를 넓히라 요구하고, 성범죄에 대한 엄단을 요구하고, 여성폭력, 여성보호, 여성안전, 여성노동, 여성노동, 여성주거, 여성질병, 여성빈곤 등등 여성에 대한 특혜를 끝없이 요구하는 것도 동일하다.

대표적인 여성단체들의 거친 주장들을 보자.

여자라서 죽었다는 선동을 하는 여성민우회
'우리는 메갈이다' 선언 운동을 한 여성민우회

모든 남성 출마자는 '노콘노출마'를 선언하라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가해자 영구거세를 공약으로 요구한 여성의당

'여자라서 죽었다', '우리가 메갈이다' 하는 여성민우회,

'노콘 노출마'를 요구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들은 위와 같은 극단적 주장을 하지만 단체 자체를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부의 사업비 지원을 받고 정책연대를 하기도 하는 양지의 여성단체들이며, 이들 단체의 대표들은 정치권에 꾸준히 진출해 세력을 이룬다. 김상희, 남인순, 정춘숙 등 모두 여성단체 출신들이다.

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여성민우회 등이 주축이 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미투사건, 성폭력사건들이 있을때마다 공대위를 꾸려 정치권을 압박하고, 처벌여론을 만들어 명예형에 앞장서는 대표적 여성단체들이다.

'성범죄 가해자 영구거세'라는 극단적 요구를 대선 공약으로 주장하는 여성의당은 젊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주축을 이뤄 의회진출을 노리고 만든 정당이다. 이들은 극단적이고 반사회적인 요구를 제어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여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페미니스트 집단은 대부분 래디컬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비래디컬들의 래디컬화, 래디컬로 동질화되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래디컬과 비래디컬의 구분이 과연 유용한 것인지, 페미니스트들의 요구가 구분 없이 착착 제도화되는 현실에서 굳이 래디컬만을 비난하는 것이 현실과 부합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의 본질이 그러한 요구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그 자체이지 래디컬 페미니즘이 아니다. 단지 행동이나 말에서의 과격함과 극단성이 래디컬을 도드라져 보이도록 할 뿐, 이들의 뿌리는 결국 페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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