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방통위

목적론자들 전성시대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수의 사이트에 대해 https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해외사이트를 통해 게시되는 리벤지포르노와 몰카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고, 불법도박 피해, 저작권 침해 범죄 등을 해결하겠다는 이유다. 시민들은 당장 반발하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14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오른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링크)은 청원 3일만에 17만명을 넘어섰다. 방통위는 절대 검열과 감청을 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다.

한쪽에서는 정부가 개인의 정보를 들여다보는 방식의 규제는 나쁘지만, 성범죄 영상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절박함을 위해 할 수도 있는 조치가 아니냐고 한다. 몰카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명분으로 규제가 잘못됐고 나쁜 거라고 쳐도 그럼 어떤 대안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 대안을 만들라고 존재하는 것이 바로 국가다. 막강한 자원과 힘을 이용해서 정당한 법적 자격을 국가가 먼저 갖추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범죄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구제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몰카나 리벤지포르노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반인권, 반여성주의자이며, 포르노 애호자라는 낙인을 찍으며, 정작 감시사회, 통제사회, 검열사회를 꿈꾸는 국가의 음험함을 외면한다.

“목적이 옳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든 정당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원칙을 곧잘 잊는다.

흉악범죄로 인해 사망사건이 일어나 여론이 들끓으면, 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범죄가 일어난 상황이 아닌데도 체포를 강제하는 법안을 만든다.(링크: 김현아의원 입법발의안)
미투폭로 이후 여성들이 상대의 무고고소로 힘들어하니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무부는 입법 과정 없이 무고수사금지 지침을 만들어 시행한다.(링크: 우먼스플레인 2화: 무고수사금지? 기본권은 어디에)
성폭력범죄에 대해 사법부가 피해여성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절차없이 성인지감수성을 증거법칙으로 도입한다.(링크: 우먼스플레인 22화: 성인지감수성에 발목잡힌 안희정2심)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바로 범죄의 억지와 안전의 확보, 약자에 대한 보호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국민에 대한 처벌과 규제조치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먼저, 국가 자신이 법적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 자격의 핵심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고, 시민들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존중하는 공정성이다.

테러방지법이 인터넷 장악 수단이라며 반대했던 필리버스터(출처: 오마이TV)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던 테러방지법을 기억해보자.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를 막겠다는 목적은 중요했다. 그리고 매우 중차대하다. 그런데도 이를 반대하며 필리버스터를 했던 지금의 민주당 의원들. 밤새 같이 시청하며 동참했던 시민들은 무엇 때문에 그랬던가. 테러방지를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 먼 옛날의 일도 아니다.

헌법은 어떤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이를 잘 달성하도록 재주형될 대상이 아니라, 이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지켜야 하는 제약을 설정한다. 그래서 헌법정신으로, 기본권을 훼손하려는 정부에 맞서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 법을 막고자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입법을 통하지 않고, 행정부가 손쉬운 방법으로 바로 시행해버리는, 더 질이 나쁜 상황이다.

이번에는 피해여성들의 고통이 절박하므로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중차대한 목적이 “규제는 나쁘지만…” 이라는 권리유보 논리로 국가의 음험함을 승인한다. 한 켠에서는 ‘야동사이트 막으니 끓어오른다’는 조소로 오히려 이 반대를 폄하하기도 한다. 반대의 목소리에 야동을 즐기는 성인들이 있다 한들, 우리 헌법에 따라 국가가 지켜야 할 권리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될 이유는 없다.(성인물과 성범죄 영상물 또한 전혀 다르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도색잡지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였다. 그는 “수정헌법 1조는 나 같은 잡놈도 보호해 주므로, 결국 모든 사람이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는다”고 했다.

대의를 담보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는 목적론자들의 목소리만 가득한 시대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시민동력은 약자보호, 진영보호의 논리에 갇혀 현저히 줄었다. 암울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