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교묘한 모욕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고 쓴 여자 아나운서의 개인적인 감상에 악플이 수천개가 달렸다.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30명 정도를 고소했다고 한다. 대부분 심한 욕설을 적은 사람들이다.

모욕죄는 실제 모욕을 느낀 말은 대부분 범죄로서 성립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있다. 나도 욕을 먹어봤지만 이X 저X 무슨X 하는건 그냥 일회성의 단순 욕설로 넘기고 만다. 내게 특별한 악감정이 있다기보다 그냥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려니 하고 넘기니까 특별히 모욕으로까지 느껴지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욕설이 낫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비아냥, 빈정거림, 욕설비스무리, 깐족대기, 이론에 기반한 듯 견해를 가장해 조리돌리는 사람들이 더 악질적이다. 이런 유형은 모욕죄에 해당이 안되는 방식으로 딱 그만큼만 하기 때문에 더 교활하다. 인간적으로는 더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괴롭히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욕죄에 걸리지 않을, 이른바 ‘배운여자’들이 해당 아나운서의 감상에 대해 악질적인 반여성행위라며 고상한 언어로 쏟아내는 조리돌림이 더 모욕적이었다. 상대의 인격을 짓밟고, 견해를 가진 동등한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교묘한 악플들. 차라리 욕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고 집단적이었다.

욕설 배설자들은 모욕죄로 걸리면 싹싹 빌고 사정한다. ‘그때 제가 미쳤나봐요, 죄송합니다, 충동적으로 그랬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등등, 자기의 욕설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잘못된 행위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는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계속 괴롭힌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논의를 폭력적으로 가져가는 반지성주의는 오히려 배웠다는 쪽의 그럴듯해보이는 언설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