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남자 사귀는 게 뭐 어때서” 누가 들어야 할 말인가

여성아이돌의 죽음 후 한겨레에 실렸던 기사 중에 동년배 여성으로서 안타까움을 표현한 대목이 있다.

“그를 더 열심히 응원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 ‘야, 그까짓 가슴 가리개가 뭐라고. 나이 많은 남자 사귀는 게 뭐 어때서. 자기 계정에 자기 마음대로 예쁜 사진 올리는 게 뭐 어때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더 말해줄걸. 그럴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진보매체의 기사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나이 많은 남자 사귀는 게 뭐 어때서.” 그렇다. 그건 아무 일도 아니고 타인이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인들 사이에 자유로운 선택일 뿐인 관계의 형태에 대해 선택적으로 비난해온 건 누구인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두고 쏟아졌던 융단폭격을 기억해보자. 이를 주도한 건 페미니스트와 한겨레를 위시한 진보매체들이었다.

처음에는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의 러브라인을 비난하다, 러브라인이 아니라 인간적인 위무를 주고받는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왜 20대 여성이 40대 아저씨를 위무하느냐고 비난했다. <나의 아저씨>는 드라마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획의도만으로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맞았다.

러브라인이면 어때서. 위 여성의 말대로 나이 많은 남자 사귀는 게 뭐 어때서. 40대 아저씨는 20대 여성과 사랑하면 안 되나? 위로 받으면 안 되나? 왜 러브라인이 아니라고 제작진이 해명을 해야 하나. 이런 해명을 해야 하는 자체가 21세기 문화강국으로서는 너무나 후진적인 장면 아닌가.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인간관계의 한 형태를 표현하는 일조차 비난하고 여성혐오의 혐의를 덧씌우는 행위. 그런 비난을 주도적으로 쏟아낸 지면에서 나이 많은 남자 사귀는 게 어때서, 라는 문장을 보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