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는 김희철이 고인에 대한 악플행위를 '성별간 갈등' 문제로 치환해 둘 다 잘못이라 말한 걸로 읽고 이를 반박하기 위해 긴 글을 썼다.
고인은 여성이었고 여성이 여성을 향해 악플을 쏟아냈는데 그것이 남성혐오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논리적 고리를 제시해서 얻으려는 결론은 무엇인가.
결국 여성의 혐오행위와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면책과 면죄부다.
2017년에 있었던 이른바
유아인 ‘애호박 사태’ 이후 남성 페미니스트와 유명 남성 스타 사이에 또 한 번 설전이 벌어졌다.
애호박 사태와 이번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유아인과 김희철은 성별 불문 악플러에 대해 비난하는데, 위근우를 포함한 남성 페미니스트 논객들은 이를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며 페미니즘 논리로 반박한다.
둘째, 유아인과 김희철 모두 악플, 인터넷 조리돌림, 사이버 불링과 같은 현상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위근우를 포함한 남성 페미니스트 논객들은 엉뚱하게도 글쓰기 실력, 논리적 빈약과 같은 글의 자질을 거론한다.
과거 유아인에게 남성 논객들은 이런 발언을 했다.
“유아인 씨는 글을 못 쓴다.
문장 구조가 무질서한데다가”(윤광은), “단지 글을 못 써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평소에 글 쓰는 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장황한 서론을 썼는지 모를 수도 있다.”(강명석)
이번에도 위근우는 김희철에게 논리적 근거와 세밀한 분석, 비판적 독해가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김희철씨가) '성별 간 갈등'에서도 남녀 둘 다 잘못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젠더갈등' 담론을 정당화하는 건 그리 세밀한 분석이라 보지 않는다.(...) 그의 말이 이젠 없는 고인의 진심을 대변하는 게 되어선 안 되며, 그럴수록 이런 비판적 독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연예인에게 글을 못 쓴다, 논리가 빈약하다며 논리를 요구하고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글쟁이와 연예인 가운데 글솜씨와 논리적 정합성에 엄격해야 할 의무는 글쟁이에게 있다.
심지어 유아인과 김희철이 쓴 글은 의미전달 면에서 이들의 글에 뒤지지 않거나 낫다.
셋째,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을 통해 가르치려 든다는 점이다.
위근우의 논리 비약
위근우가 김희철을 향해 쓴 장문의 글은 논점을 이탈했을 뿐 아니라 왜곡한다.
김희철은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악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절친한 동료였던 고(故) 설리와 구하라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저는 두 친구랑 친했었는데, 그 일을 겪고 가장 화가 났던 건 요즘 성별을 갈라서 싸우잖아요.
남자들은 성희롱으로 두 친구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고, 여자들은 여자 망신이라고 또 모욕적인 말들을 하다가 두 친구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탓할 거리를 찾는 거예요.
니네 탓이다, 아니다 니네 탓이다, 프로그램 탓이다.
서로 먹이를 물어뜯으러 다니다가 (태세 전환해서) 너무 슬퍼서 우리는 추모를 할 거다 하니까...
그렇게 욕하던 친구들이.
너무 화가 났어요.
그 친구가 신동엽 형님이랑 프로그램(악플의 밤)을 하고 나서 멘탈이 괜찮겠냐고 하니까 너무 행복해하는 거예요.
자기는 그동안 자신감도 잃고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풀어내니까 그 에너지가 굉장히 좋았던 거에요.
내가 필요한 사람이었어, 내가 틀린 게 아니구나 하고.
촬영날만 기다렸단 말이에요.
모든 친구들이 다 알아요."
위근우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이 발언을 두고 위근우는 논리적 비약이라 비판한다.
위 발언에서 보듯 김희철은 젠더갈등을 담론 차원에서 말하지 않았고 정당화한 일도 없다.
악플러들이 고인의 죽음을 두고 서로를 탓하며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언급했을 뿐이다.
이 말을 젠더갈등 담론 정당화라고 비약시킨 건 위근우 자신이다.
또 하나, 위근우는 “성별갈등에서 남녀 둘 다 잘못이라고 주장하려면 고인에 대한 여성 악플이 이런 '젠더갈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내적 연관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인에게 쏟아졌던 여성들의 악플은 기존의 악플에 이념형 악플이 추가됐다.
페미니즘 바람이 불기 이전 여성 연예인에게 쏟아진 악플은 주로 인신공격과 욕설, 악성 루머들이었다.
페미니즘의 확산과 성별갈등이 일상화되면서 온라인에는 페미니즘 이념에 입각한 ‘이념형 악플러’들이 등장했다.
특히 여성 유명인들의 작업을 롤리타 못잃는다며 비난하고, 화보를 찍으면 성상품화라 비난하고, 페미니즘 공부를 하지 않고 여성 지위를 하락시킨다고 비난하는 악플은 여전히 존재한다.
성별갈등에서 만들어진 험악한 용어들을 써가며 같은 여성들에게 폭격을 가한 이념형 악플러들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고인도 그런 피해를 겪었다.
이념형 악플이 달리면 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남성들의 글이 올라오고 온라인은 서로의 잘못을 탓하는 공방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한남에게 잘보이려 한다’는 류의 악플은 예사였다.
고인에게 쏟아진 여성악플들 가운데 이념형 악플은 젠더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내적 연관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나 같은 글쟁이의 몫이므로 제시했다.
한 탐사프로그램에서 보도했듯 고인에게 악플을 단 사람은 잡고 보니 대부분 여성이었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고인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구체적 여성에 대한 위근우의 공감력 결핍
김희철은 고인이 자신에 대한 악플을 정면으로 다뤘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굉장히 좋아했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그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 느끼게 됐고,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해서 촬영날만 기다린다고 친구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해당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던 신동엽도 그녀와 나눈 대화를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을 당사자의 마음을 전하려는 동료의 진심으로 이해하기보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진의 비윤리적 쉴드 장치라고 비난하는 건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당사자주의와도 배치된다.
위근우는 여성의 처지에 공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이면서 정작 여성인 고인이 무엇 때문에 행복해했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친한 동료들이 그 프로그램 때문에 고인이 잠시나마 행복해했던 이야기를 전하는데, 여성의 행복에 공감하기보다는 자신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의 평판이 이 증언으로 인해 희석될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고인을 대신해 <악플의 밤>에 대한 알리바이를 다름아닌 JTBC 예능에서 이야기하는 건 그리 윤리적이지 못한 편집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치 고인의 발언을 이용해 이젠 폐지되고 없는 프로그램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발언들을 한 것처럼 표현한다.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녀가 힘들어했고, 잠시나마 그런 행복을 느꼈다는 사실에 먼저 공감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논리대로 당사자주의에 입각한다면 여성이 그걸로 인해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여성이 잘못해도 남성중심 사회 때문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논리
위근우는 “설리의 노브라에 대해 비난하고 그에게 성희롱을 하던 남성들의 악플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고인에 대한 여성 악플 역시 '남성혐오'(역시 따옴표를 쓰는 건 편의적으로 쓰지만 동의하지 않는 개념이라서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걸까.
이 부분의 논리적 고리가 약하다.”고 했다.
위근우의 논리대로라면 남성들의 악플은 여성혐오에서 기인했으므로 나쁜 짓이고, 여성들의 악플은 남성혐오에서 비롯하지 않았으므로 면책이 되는가? 위근우는 “'성별간 갈등' 문제로 치환해 둘 다 잘못이라 말하는”걸 반박하기 위해 긴 글을 썼다.
고인은 여성이었고 여성이 여성을 향해 악플을 쏟아냈는데 그것이 남성혐오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논리적 고리를 제시해서 얻으려는 결론은 무엇인가.
결국 여성의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면책과 면죄부다.
여성혐오에서 문제는 피해자가 여성인 것이었지 가해자의 성별이 중요한 문제였나?
위근우가 말하고 싶어하는 결론은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거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페미니스트들의 기존 논리다.
이들은 ‘김치녀’와 ‘꽃뱀’은 여성혐오라 안 되지만, ‘한남충’, ‘틀딱’, ‘개저씨’, ‘냄저’는 차별받고 억압받던 여성들의 미러링이기 때문에 저항의 언어로 취급하며 논리적 정당성을 제공해 왔다.
그 연장 선상에서 성별갈등과 젠더갈등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갈등이란 용어가 여성차별이라는 이면의 진실을 가리는 데 사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차별과 혐오행위가 있어왔고, 이에 대해 여성들이 반발하고 저항하기 시작하자 마치 동등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왜곡하므로 부당하다는 논리다.
이 논리체계 안에서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이거나 저항자이므로 그녀들의 혐오행위는 면책된다.
위근우의 논리를 지지하며 한스경제의 정진영 기자는
여성 악플러의 행위도 결국 남성주의적 담론의 문제라고 한다.
“어떤 여성 악플러가 김희철의 말처럼 설리를 보고 "여자 망신"이라고 욕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손가락질이었다면, 그것은 여성 악플러가 쓴 글이었을지언정 남성주의적인 담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한 악플에는 남성에 대한 어떤 혐오나 비난이 들어 있지 않다.
때문에 고 설리와 구하라를 '젠더 갈등의 희생양'이라고 치부하는 건 오류가 있다.”(정진영)
김희철은 고인이 젠더갈등의 희생양이라고 한 적이 없다.
고인이 된 후 서로 상대 성별 탓을 하는 이들을 보고 분노했을 뿐이다.
그런데 위근우와 정진영은 모든 원인은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구조에 있기 때문에 여성 악플러가 악플을 달았어도 이는 남성에 대한 혐오나 비난이 아니므로 남성주의적 담론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위근우가 예전에 유아인에게 썼던 말을 빌어 묻고 싶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여성들조차 여성혐오적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 여성 악플러들을 어떻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인가? 남성중심 사회의 피해자로 구명운동을 벌일 것인가? 그녀들이 고인에게 쏟아낸 악플들을 한 번 읽어보았는가?
김희철이 위근우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단 댓글
위근우의 말대로 “고 설리 씨에게 남성 악플러뿐 아니라 여성 악플러도 있었고, 그 중 태세 전환이 있던 이들이 있던 게 어느 정도 사실”임을 인정한다면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고인에게 쏟아진 악플을 여성혐오적 악플과 남성혐오적 악플로 굳이 분류해야만 이 현상이 해석되는 건 아니다.
악플에서 중요한 건 혐오나 성별이 아니라 강도와 빈도다.
페미니즘보다 먼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위근우는 글 안에서 계속 “사적으로 친했던 두 동료를 잃은 김희철 씨의 분노를 내가 감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친했던 동료를 잃었던 그의 울분을 감히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편으로는 “고인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고", “이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고인”임을 전제하며 김희철이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 해도 “그의 말이 이젠 없는 고인의 진심을 대변하는 게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작 본인은 “고인이 본인의 삶 안에서 지키려 한 태도 자체가 다분히 여성의 자기결정권(노브라)과 자매애(생리대 지원)였다”며, 고인을 "‘젠더갈등’에서 여성 진영의 중요한 플레이어이자 파이터였다"고 규정한다.
그런 이유로 고인이 과연 ‘성별 간 갈등’이라는 프레임에 동의했겠느냐고 묻는다.
이런 태도야말로 김희철이 비판하는 점이다.
위근우는 생전에 심경을 나눈 동료일지라도 고인의 진심을 대변하는 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고인과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자신은 유추에 해당하는 해석으로 고인이 성별갈등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김희철은 이런 지점에 분노한 것이다.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페미니즘은 악플을 도구로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
위근우는 페미니즘의 당위를 부차적으로 느끼는 사람을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당연하다.
어째서 자신이 지지할 뿐인 이념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로 느껴야 하는가.
인간을 위해 이념이 복무해야 하는 것이지 인간의 삶이 이념의 신조를 추구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악플러는 성별 불문 악플러이고 범죄일 뿐’이라는 단순명료한 사실에서 여성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 페미니즘을 동원하는 것은, 악플의 피해를 입은 구체적 개인이었고, 더구나 여성이었던 고인들을 애도하는 태도가 아니다.
방송에서 아직도 동료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슬픔을 가진 사람을 향해, ‘성별을 갈라서 싸운다’는 한 마디에 발끈해 그토록 긴 글로 페미니즘의 당위를 지적하고야 마는 조급함과 무감함이야말로, 인간보다 이념이 우선인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근우가 자신의 글 첫 문장에 쓴 대로, “사적으로 친했던 두 동료를 잃은 김희철씨의 분노를 감히 이해할 수 없다”면 쓰지 말았어야 할 글이다.
언제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한 이유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정확하다.
그녀들이 삶을 이어간 동력도, 죽음을 선택한 이유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애도할 뿐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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