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성범죄전담반 SVU]로 들여다보는 비동의간음죄 추세

극중에서 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꼰대처럼 나오지만 나는 저 대사들이 인상깊게 들렸다. 사법부가 독립권을 보장받은 건 정치권력 뿐 아니라 여론권력에도 휘둘리지 말고 법치를 지키라는 뜻에서다. 그래서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다. 우리 사법부는 과연 성범죄 사건에서 얼마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있을까.

 

미국 TV드라마 중 가장 장수하고 있는 시리즈가 <성범죄전담반 SVU>이다. 뉴욕주 경찰청 산하에 성범죄만 전담해서 다루는 부서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올리비아 벤슨은 시리즈 초반 경찰로 시작해 지금은 반장이 됐다. 나는 이 드라마를 시즌 초반부터 계속 봤다.

악랄한 성범죄자가 수사 끝에 처벌받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그 과정이 만만하지 않다.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가르는 미국의 법정은 변호사와 검사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하이라이트다. 유능한 변호사의 변론으로 악당이 무죄를 받아내는 장면도 많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뻔히 죄를 알지만 극중에서는 유유히 빠져나가곤 하니까 현지에서는 보고 나면 답답해져서 지는 드라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 미국사회가 성범죄를 어떻게 다루는지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초반에는 모호한 쟁점을 다루는 에피소드들의 비중이 꽤 있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사실은 법의 허점을 노리거나 돈이나 복수심 때문에 성범죄를 악용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여줬다. 범죄의 의도는 분명 없었는데 결론적으로 범죄가 된 경우의 황망함이나,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는 안타까운 상황들도 다뤘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주인공인 올리비아 벤슨은 보수적으로 변했고 현재는 대부분의 행위를 강간으로 취급한다. 최신 에피소드들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가스라이팅’과 ‘비동의 강간’이다. 여성인 벤슨 경위는 진짜 성범죄자들이 유유히 빠져나가는 상황을 계속 접해서 그런지 과한 대응을 한다. 최근엔 피해라고 느끼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경찰이 ‘당신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입시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고소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을 집요하게 설득해 고소를 종용한다.

벤슨 경위는 나도 그 순간에 동의했다고 말하는 여성에게 그것은 진정한 동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혼란스러워 하는 여성에게 가스라이팅 개념을 설명한다. 드라마를 통해 계몽하려 한다는 느낌을 시즌 초반보다 훨씬 자주 받는다. 최근 에피소드 중 한 장면을 보자.

중상류층 주부 여러 명이 한 남자에 속아 성관계를 한다. 남자는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게 목표인 여자들에게 접근해 그 대학의 입학처장이라고 거짓말을 한 후 잠자리를 한다. 실제로는 대학의 계약직 경비원이다. 여성 하나가 그 남자의 사기행각을 알게 돼 경찰에 신고를 한다. 하지만 강간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벤슨은 여성을 설득한다. ‘당신이 원했던 건 입학처장이었지 경비원이 아니었다, 당신이 원한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위협과 협박이 없었어도 이는 강간이다’.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여성은 나도 동의해서 했으므로 강간주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벤슨은 다른 피해여성을 만나 설득한다. 한 여성은 고소를 거절하며 벤슨에게 말한다. “우리는 성인이고, 서로 원하는 게 있었고, 나는 단지 게임에서 속았을 뿐입니다.”

벤슨의 집요한 설득 끝에 경찰은 강간죄로 남자를 체포하고 검사는 이를 기소한다. 사건 초반 강간기소는 무리라고 주장하는 검사를 설득하며 벤슨은 말한다. 입학처장이 아니었다면 여성들은 저 남자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를 속여서 섹스하는 것은 강간이다. 저 사람을 잡아넣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여자들을 속여 강간할 것이다. 검사는 법논리상 자신이 없지만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 결국 기소를 한다. 벤슨은 이번 사건을 기회삼아 섹스 한 번 하려고 여자를 속이는 남자들도 강간범으로 처벌하는 선례를 만들려고 한다.

법정에서 만난 판사는 검사에게 아래 장면들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를 통해 미국사회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판사는 성범죄 사건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자 하느냐며 검사를 비난한다. 극 중 바르바 검사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지만 판사는 경범죄에 해당하는 정도의 사기사건을 강간으로 기소한 검사와 경찰이 마땅치 않다. 이를 기각하면 자신에게 가해질 비난여론이 예상되기에 검사를 압박한다.

“당신이 할 일은 뉴욕주의 형사법에 의거해 사건을 가져오는 거에요.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내 법정을 이용하지 말아요. 판사와 검사는 이미 존재하는 법을 집행해야지 존재하길 바라는 법을 집행할 순 없어요.” 

극중에서 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꼰대처럼 나오지만 나는 저 대사들이 인상깊게 들렸다. 사법부가 독립권을 보장받은 건 정치권력 뿐 아니라 여론권력에도 휘둘리지 말고 법치를 지키라는 뜻에서다. 그래서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다.

우리 사법부는 과연 성범죄 사건에서 얼마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있을까. 국민청원으로 재판부를 바꾸고, 판결문에 여성단체의 눈치를 본다고밖에 할 수 없는 문구들을 구구절절 나열하고,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갑자기 증거법칙으로 도입하는 것들을 보면 회의적이다.

극 중 강간범이 된 남성은 벤슨경위에게 말한다. “여자랑 한 번 자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남자를 체포한다면 하루저녁에 천명씩은 잡아넣어야 할 거요.” 강간범이 된 남성의 변호사는 주장한다. “(거짓말로 여자들을 속여 자고 다녔을 뿐인 찌질한 남성을) 진보진영에서 개인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간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군요.”

성범죄에 관한 한 1세계와 우리사회 모두 비슷한 추세다. 가스라이팅, 그루밍 개념을 폭넓게 적용하기 시작했고 비동의는 곧 강간이라는 공식도 굳어간다. 심지어 동의했어도 이후 가스라이팅이라 주장하면 강간이 되고, 성인들 사이에 원하는 걸 교환하기 위해 자의로 섹스했어도 상대를 오인했으므로 강간이라고 주장한다. 재벌2세인줄 알고 섹스했는데 알고보니 평범한 남자였다면 강간이라는 것이다. 여성운동의 주장이 점점 법보다 우위에서 사법부를 압박하고, 모든 주장이 사회적 논의없이 법으로 도입된다. 이에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려면 반여성주의자에 인권감수성 없는 사람으로 몰릴 각오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