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간음죄가 위헌인 다섯가지 이유

 

국가형벌권의 남용, 성별특수계급 조장, 입증책임 전가와 명확성 원칙 위반, 남성의 방어권 불가능,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개입, 특정 이념의 요구를 법제화한 중립의무 위반 등 비동의간음죄가 문제인 이유는 많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서 거절하려는 마음, 직설적인 말로 상처주지 않으려는 선의는 관계라는 상호작용에서 소중한 태도다. 그러나 이제 배려, 은근함, 자연스러움, 무드와 같은 단어는 성관계의 스펙트럼에서 설 자리가 없다. 여성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함이 눈치 없음이 아닌 성범죄로 단죄되는 세상에서는, 여성은 예스 또는 노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남성은 예스와 노 외에 어떤 신호도 예단하지 않아야 하는 성관계시 행동준칙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이 준칙을 어겼을 때 맞닥뜨릴 결과는 여성과 남성이 같지 않다. 남성 앞에는 형사처벌이라는 위협이 기다린다. 

사람들은 비동의간음죄 법안이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법질서나 법의 정신과 일관된 것이라 여긴다.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왜곡을 주도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 또한 “그래, 동의 안 했는데 섹스했어? 그럼 강간이지, 그렇다면 처벌 받아야지” 쉽게 생각한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2020년 8월 12일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은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위해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 이전인 6월 8일 민주당의 백혜련 의원도 비동의간음죄인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두 의원의 법안은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이나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겠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류호정 의원은 성범죄의 형법상 개념을 강간과 추행의 죄에서 ‘성적 침해’의 죄로 바꾸자는 더 급진적인 내용이다.

한겨레 보도

2018년 ‘미투’(#me too) 운동 이후 여성운동계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주장해왔다. ‘노 민즈 노 룰(No Means No Rule)’이나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 Rule)’로 불리는 ‘비동의간음죄’는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입법 시도가 시작됐다. 여성운동계는 대법원의 유죄판결에 그치지 않고 입법으로 고착시키려 의원들을 압박 중이다. 비동의간음죄에 대해서는 여야,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두 한 목소리로 입법에 동의하는 상황이다. 20대 국회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이 주도해 정당을 초월한 여성의원들의 연대로 입법을 추진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 Rule)’라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비동의간음죄였다.

비동의간음죄의 유형에는 노민즈노와 예스민즈예스가 있다. 노민즈노는 상대방이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비동의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성관계를 시도했다면 강간죄로 처벌하는 것이고, 예스민즈예스는 상대방이 명시적인 동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모든 성관계는 강간죄가 성립되는 더 강력한 처벌 규정이다. 여성계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이나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계속 요구해왔다.

그러나 입법부의 움직임보다 빨리 사법부는 이미 비동의간음죄를 적용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이 2019년 9월에 유죄판결한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은 사실상 예스민즈예스룰에 해당한다. 해당 사건은 여성의 명확한, 혹은 묵시적인 비동의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지만 위력이 작동하였다는 이유로 강간죄를 적용했다. 이는 명시적 동의 의사가 없는 성관계는 강간으로 규정하는 예스민즈예스룰에 해당한다.

명확하게 예스가 아니면 모두 강간이라는 예스민즈예스, 비동의 의사를 어디까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모호한 노민즈노 모두 형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기본권을 위협하는 법안이지만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성운동계와 강간범죄의 피해사례만을 부각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연민과 공감의 여론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 운동세력, 여와 야, 보수 진보, 좌우 모두 이 법안의 위헌성에 대해 보려 하지 않는다. 입법, 사법, 행정 세 헌법기관 모두 여론의 눈치만 볼 뿐 근본적인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어떤 범죄든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함은 당연하다. 페미니스트를 포함해서 비동의간음죄를 추진하는 세력은, 강간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여성권익의 신장을 위해 비동의간음죄 도입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 역시 강간 피해를 입었을 경우 동등하게 적용되므로 공정하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비동의간음죄는 특히 남성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향을 끼친다. 가장 큰 위협은 성범죄에서 남성은 법률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사안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간의 이해득실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본질적으로 국가 대 개인이라는 구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특히 형사법은 국가라는 막강한 권력이 가진 형벌권을 개인에게 행사하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비동의간음죄는 검사(국가)의 입증책임 의무, 증거재판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와 같은 형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위헌적인 법안이다. 반성폭력 운동에서 강간이라는 요소만이 아니라 형사법, 형사소송법, 헌법까지 종합적으로 봐야 본질적으로 이 법안이 지닌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국가형벌권의 남용

비동의간음죄는 폭행ㆍ협박뿐만 아니라 위계ㆍ위력,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성관계에 대한 처벌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면서 모호한 상태에서의 성관계를 경험하며 이는 사람들 사이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성관계에서 ‘동의’란 매우 모호하다. ‘우리 섹스합시다’, ‘당신과 성관계를 하겠어요’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관계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절차는 남녀가 호감을 느끼고, 욕망의 신호를 감지하고, 은근한 접촉을 시도하다 ‘자연스럽게’ 성관계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모든 단계에서 신호란 명시적인 언어뿐 아니라 눈빛, 몸짓, 분위기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곤 한다. 그러나 비동의간음죄는 비언어적 의사표현이 지배하는 성관계의 드넓은 ‘회색지대’를 범죄화한다.

비동의간음죄에 따르면 회색지대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이 불쾌해진 여성은 이를 강간으로 고소할 수 있다. 소극적으로 거부의 의사 표시를 했거나, 명백한 동의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해도 비동의간음죄에 따르면 고소가 가능하다. 이는 여성(피해자)의 주관적인 느낌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정한 비동의간음죄의 가장 큰 위험이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할 때는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형사사법절차가 정한 법칙에 따라야 한다. 비동의간음죄는 고소인인 여성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진술만으로 피고소인 남성을 처벌하는 것을 형사법이 보장해주는 것이다. 개인들이 국가의 형벌권을 악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법적 지위의 불평등을 초래하며, 어떠한 형태의 특수한 계급도 만들 수 없다는 헌법조항을 위반하는 행위다.

 

사각지대 해소법안이 아니다

비동의간음죄 입법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그간 명시적 폭행과 협박이라는 구성요건 때문에 물리력을 동반하지 않은 강간에 대해 처벌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물리적 위협은 없으나 특수한 관계에서 위력 행사에 따른 성관계를 당했을 때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바로 형법 303조 위력에 의한 간음죄이다. 안희정 전 지사와 비서 김지은씨 사이에 일어난 성관계는 비동의 의사표현이 없는 상태에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음에도 위력간음죄가 적용돼 강간으로 처벌받았다. 미성년자의 경우 의제강간 연령이 정해져 있어 자발적 성관계라 해도 이 연령에 해당하면 강간죄가 적용된다.

성범죄 처벌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여성계의 주장과 달리 현실에서 성범죄는 더욱 촘촘하고 강력하게 처벌받고 있다. 강간죄, 강제추행죄 뿐 아니라 위력과 위계에 의한 간음죄도 별도로 존재하며, 준강간죄, 특수강간죄, 유사강간죄 조항도 있다. 성범죄로 인정되는 행위는 점차 넓어지고 처벌 수위는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성범죄에서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하는 강제추행죄는 이미 비동의추행죄로 실무상 적용되고 있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이지만, 대법원이 기습추행의 ‘기습성’ 자체를 폭행으로 인정하면서 사실상 동의하지 않은 모든 신체적 침해행위를 성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이전에는 성기, 가슴 등 성적 신체 부위를 추행했을 때 강제추행죄를 적용했지만, 지금은 손, 어깨, 머리 등 사실상 여성의 모든 신체 부위에 강제추행죄가 인정된다. 성적 의도가 아닌 여하한 접촉도 단순 폭행이 아닌 강제추행으로 처벌이 가능하므로, 여성들은 신체접촉이 있는 분쟁이면 무거운 범죄인 강제추행으로 고소한다.

여성계의 주장과 달리 비동의간음죄와 비동의추행죄 모두 입법 절차 없이도 사법부에 의해 이미 실무상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처벌하지 못하는 성범죄의 사각지대란 어떤 경우일까? 성인남녀 사이에 폭행과 협박이 없고, 신분상의 권력 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비동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항거불능이란 어떤 경우를 말하는가?

여성계는 미성년자나 지배적 신분 관계가 아닌 보통의 성인남녀 사이에까지 폭행, 협박이 없는 상태에서의 성관계도 강간죄로 처벌하라고 요구한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성은 비동의 의사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가스라이팅, 그루밍 등)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결국 남는 요소는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조건의 차이다. 성별 자체가 위력이라는 성별 신분 논리를 펴는 것이다.

 

입증책임 전가와 명확성 원칙 위반

우리 형사법상 입증책임은 검사(국가)에게 있다. 여성계는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말고 남성 가해자에게 동의 받았는지 물으라고 주장한다. 안희정 전 지사의 재판에서 여성단체와 진보매체는 여성에게 입증책임을 지운다며 사법부를 비난했다.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남성 중심의 재판부가 피해 여성에게 2차 가해를 한다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여성의 저항 여부와 양태를 묻는 것은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판단하기 위해 범죄의 구성요건을 확인하는 절차다. 검사측은 증인(피해자)의 진술과, 증거, 정황, 증언들을 동원해 피해 사실과 함께 상대방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고, 재판부는 이를 판단하기 위해 양쪽 모두에게 묻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질문이나 힐난이 동반된다면 재판부의 행위를 문제 삼을 수 있겠으나, 여성에게 불편한 질문은 하지 말고 남성에게 동의를 받았는지 물으라는 것은 국가의 입증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형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이다.

비동의간음죄는 동의받았음을 입증하라고 한다. 성관계는 특히 내밀한 영역이고 쌍방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가 많다. 그간은 진술과 함께 정황증거들을 살펴 판단을 내려왔는데, 대법원이 성인지감수성을 사실상 증거법칙으로 도입하면서 여성(피해자)의 진술이 유력한 증거로 채택되는 상황이 됐다. 만일 여성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면 동의받았다는 입증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비동의간음죄는 결국 ‘동의 여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쟁점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비동의 의사를 표현했다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엇갈릴 때 이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다소 불쾌한 성관계, 찜찜함이 있는 상태에서의 관계, 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시작한 관계 등 성관계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러므로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 비동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여성이 어떻게 행동할 경우 동의이고 어떤 경우 비동의로 간주할 것인지,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법조항에 명시해야 피해를 입는 국민이 없게 된다.

국가는 어떤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고, 이를 위반할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 명확하게 확정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법률에 명확하게 확정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어떤 행위가 금지되거나 처벌되는지 예측할 수 없고, 법관은 자의적으로 처벌권을 행사하게 된다. 형법이 명확성의 원칙에 기반한 것은 기본권을 지키는 데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성계가 도입하려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법조문은 과연 동의와 거절 사이의 넓은 회색지대에서 흑과 백을 가려낼 수 있을까? 무엇이 동의이고 비동의인지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규정할 수 있을까? 설사 규정한다 해도 남성은 성관계 중 매 순간 동의 의사를 확인하고, 여성은 매 순간 동의 여부를 표현해야 하는 문제가 또 남는다. 한 차례의 성관계 안에서도 여성의 의사는 동의에서 비동의로 변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방어권 문제

비동의간음죄가 가져올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묵시적 동의하에 관계한 후 여성이 변심해 고소했을 경우 상대는 방어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입법 전인 지금도 SNS 등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남성들은 합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지만, 여성들은 ‘관계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나는 하고 싶지 않았고 진심으로 원했던 게 아니다, 그러므로 성폭력이다’라는 논리를 편다.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고의로 폭로하는 여성도 있고, 진심으로 강간 당했다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 비동의간음죄는 고의와 진심 모두를 추동해서 성폭력과 강간의 범주를 넓힌다. 범죄인 강간과 모호한 성관계의 명확했던 경계를 무너뜨려 모두 강간으로 흡수하려 한다.

헐리우드의 배우이자 진보적 코미디언인 남성 페미니스트 아지즈 안사리(Aziz Ansari)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2018년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때 그레이스(가명)라는 여성의 인터뷰 폭로로 성추행범이 되었다. 그레이스는 서로 호감을 느껴 그의 집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안사리가 자신의 언어적, 비언어적 거부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한 채 강압적인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했다. 성관계 후 둘은 다음과 같은 문자를 주고 받는다.

○ 안사리: 어젯밤 즐거웠다.
○ 그레이스: 어젯밤은 당신에겐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당신은 명백한 비언어적 신호를 무시했다. 당신은 계속 밀어붙였다.
○ 안사리: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슬프다. 당시 내가 오해했던(혹은 신호를 잘못 읽은)게 분명하고 진심으로 미안하다.

미국 내에서도 안사리의 사례는 논쟁적이었다. 미투도, 강간도 아니며 심지어 ‘3천 단어로 이루어진 복수 포르노’라며 맹비난한 여성앵커도 있다. 반면 그레이스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적극적 동의를 얻지 못한 성관계는 성폭행이라며 맞섰다.

그레이스는 ‘비언어적 거부 신호’를 보냈다. 안사리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다음날 즐거웠다는 문자를 보내며 지속적인 관계를 타진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를 자기 중심적이며 폭력적이라 비난할 수는 있겠으나, 눈치 없음이 형사처벌을 받을 죄는 아니지 않은가.

비동의간음죄가 도입된다면 그레이스가 안사리를 고소할 경우 일단 그 의사를 진실로 받아들여 기소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내면의 의사를 탄핵할 수 없다. 명시적이지 않은 비동의 의사를 형사법상 증거로 채택하면 상대방은 그 추정만으로도 이미 유죄가 된다. 형사법의 근간을 흔들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와 증거재판주의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법안이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서 거절하려는 마음, 직설적인 말로 상처주지 않으려는 선의는 관계라는 상호작용에서 소중한 태도다. 그러나 이제 배려, 은근함, 자연스러움, 무드와 같은 단어는 성관계의 스펙트럼에서 설 자리가 없다. 여성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함이 눈치 없음이 아닌 성범죄로 단죄되는 세상에서는, 여성은 예스 또는 노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남성은 예스와 노 외에 어떤 신호도 예단하지 않아야 하는 성관계시 행동준칙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이 준칙을 어겼을 때 맞닥뜨릴 결과는 여성과 남성이 같지 않다. 남성 앞에는 형사처벌이라는 위협이 기다린다.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개입

사람들은 비동의간음죄 법안이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법질서나 법의 정신과 일관된 것이라 여긴다.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왜곡을 주도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 또한 “그래, 동의 안 했는데 섹스했어? 그럼 강간이지, 그렇다면 처벌 받아야지” 쉽게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실명폭로와 단죄를 이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사안마저 사법적 처벌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운동으로서 성폭력을 규정하고 타파하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성은 개인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다. 감정, 욕망, 정념과 인간의 신체가 연동된 문제이므로 사법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사적 영역을 국가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는 근대사회의 기본이다. 이를 명확하고 단순한 문제라 주장하는 것은 책임성 없는 태도이며 기만적인 행위다.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성행위와 같은 사생활의 내밀한 영역에 대해서는 그 권리와 자유의 성질상 국가는 간섭과 규제를 가능하면 최대한 자제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하고, 이러한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중대한 법익에 대한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최후 수단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9. 11. 26. 2008헌바58, 2009헌바191(병합)결정)

비동의간음죄 도입은 여성권리 보호라는 이름 아래 엄벌주의, 후견주의, 보호주의를 요구한다. 여성계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했음에도 침해했을 경우의 처벌이 아니라, 내면의 의사를 오인했거나 파악하지 못함에 대해 처벌하려는 것은 다르다.

페미니즘 논리에 따르자면 성범죄는 줄어들 수 없다. 스웨덴은 명백한 동의 없는 성행위는 강간으로 처벌하는 법을 시행해 성범죄 영역을 확대했다. 어떤 결과가 되었을까? 강간의 범위를 넓혔으므로 성범죄자는 늘고 강간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써야했다. 법과 사회적, 관습적, 문화적 갭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개인들은 사적 영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마저 사법의 영역으로 가져간다. 기본권 수호의 원칙에 따라 국가의 형벌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제 논리는 성범죄 영역에서 사라졌다.

 

솔직할 필요가 있는 페미니스트

여성의 해방을 주장했던 페미니즘은 이제 여성에 대한 보호와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한다. 여성운동은 자기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주체성을 권장했고,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이런 여성들이 당당함의 상징으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성적 억압을 타파하고 해방과 자유를 추구했던 여성운동은 오늘날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폄하하거나 오히려 훼손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욕망과 성적 결정을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말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남성들에게 동의받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강간범이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은 흔하지만, 여성들을 향해 명시적이고 정확한 동의 의사를 표현하라는 장면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여성은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내재적 억압, 학습된 무기력, 분위기, 관계, 상황 때문에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동의하고 실행했는데 돌아보면 후회와 수치로 남는 섹스란 삶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우리는 이를 흑역사라 자조하며 빨리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흔쾌하지 않은 섹스에 대한 성인들의 대처방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흔쾌하지 않은 성관계로 불편한 감정을 가진 여성들을 향해 그것이 바로 강간이고, 당신은 강간을 당한 것이라며 강간 피해자가 되기를 권한다. 가장 극단적인 언어로 여성의 피해를 규정하기에 급급하다.

페미니스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사실들은 많다. 성적인 영역에서 특히 그렇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주관적이며 고유한 감정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성적 문제는 상대방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는 사실, 즉 반드시 ‘관계’라는 전제가 있음을 무시하고, 여성 당사자가 성적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폭력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할 때면 ‘관계’를 호출한다. 여성이 거부의사를 밝힐 수 없는 이유는 상대방과 다양한 양상으로 불가항력의 ‘관계’에 처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들이 고려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바로 관계와 맥락이다. 일방적 오해라 하기엔 억울한 이유들, 둘이 친밀함에 이르게 된 과정, 당시 분위기, 사회적 지위를 떠나 성인 대 성인으로 만나 섹스했다 여긴 판단의 맥락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성인남녀가 놓인 관계의 다양한 맥락 가운데 ‘책임 있는 성인 대 성인으로서 주체성’만 무시된다. 관계와 맥락은 여성의 감정을 정당화할 때만 고려되고 채택된다.

인권운동가 출신의 관료는 개인의 고유한 내면의 영역인 성적수치심을 대리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거짓 진술로 성추행 누명을 쓰고 목숨을 끊은 전북 부안의 故송경진 교사 사례를 보자. 송교사를 조사한 전북학생인권센터의 조사관은 피해자(거짓 진술임을 인정하고 번복한 여학생들)가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해도, 송교사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한데 성적자존감이 없는 경우 수치심을 인지할 능력이 없으므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사실은 느낀 것이라는 논리다.

전북인권센터는 수사기관의 무혐의 판단과, 학생 당사자들의 진술을 무시한 채 송교사를 끝내 성추행범으로 규정했다. 당사자의 성적수치심과 불쾌감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성범죄에서 당사자의 의사마저 무시하고 왜곡한 사례다.

미투운동을 촉발한 헐리우드의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는 2018년, 한 남성에게 미투를 당했다. 그녀는 수억 원을 건네며 무마하려 했으나 결국 폭로는 이루어졌다. 미투운동에 앞장섰던 아르젠토는 정작 자신이 미성년자 강간범으로 미투의 대상이 되자 그간 비난해왔던 가해자들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서로 합의한 관계였으며 내가 준 돈은 강간의 대가가 아니라 그냥 사건화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나는 강간하지 않았다”.

 

스포츠서울 보도

 

미투운동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한국의 진보매체들은 이 사안을 다루지 않았다. 내로남불을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든 사회적 폭로를 두려워하고, 상대와 합의가 가능하다면 개인적 흑역사로 남기는 해결방식을 원하며, 자신은 진실로 강간범이 아니라 믿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불리한 사안은 없는 일처럼 묻고, 유리한 사안에만 목소리를 높일 게 아니라 솔직하게 이 모든 상황을 꺼내두고 ‘말’해보자는 것이다.

성인지감수성, 성적자기결정권, 성적수치심 모두 주관적인 개념이다. 페미니즘에서 규정하고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해 문제가 되는 개념을 사법기관, 수사기관, 교육 현장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비동의간음죄를 입법하겠다는 페미니스트 누구도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통제되어야 할 부당한 통제욕망

비동의간음죄는 입증책임, 증거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등 형사법의 근본을 훼손한다. 페미니스트는 형사법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헌법에 규정된 무죄추정, 입증책임 모두 성범죄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개정한 후 도입하는 게 순서에 맞고 논리적으로도 일관된 행위다. 비동의간음죄는 이러한 원칙들이 잘못 되었다고 전제해야 실행할 수 있는 법률이므로 헌법과 양립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항이 어려운 상태의 여성(미성년, 장애인, 위력과 위계에 의한 간음과 추행)에 대한 보호는 이미 형법에 적시되어 있다. 그 외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어떤 신호를 주고 있는가? 여성은 말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며, 성인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면책될 수 없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에 온전하게 기여하고 싶다면 책임 또한 말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이야말로 여성권익을 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범죄에 대한 엄벌주의, 엄단주의, 여론재판, 회생불가의 처단, 미세범죄화, 주관적 감정의 절대기준화를 멈추고, 사회 전체를 보는 통합적 사고, 보편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책임, 공정함,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형사재판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 힘없는 개인 간의 문제다. 처벌이 아니라 약한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자의적으로 법을 변형하고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특히 성범죄 영역에서 자주 일어난다. 거역할 수 없는 사례들 앞에서 자유의 견해는 위축된다. 페미니스트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선의에 기대 초법적이며 위헌적인 요구들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권리에 더불어,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지배권까지 가지려 한다. 비동의간음죄가 실행되면 다른 구성원들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이 타인에 의해 지배당하는 권리의 훼손을 경험한다. 이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권리행사의 불평등을 일으키는 문제다. 보편적 인권원리와 기본권을 무시하는 주장은 결국 피해 여성에 대한 보호가 아닌 성적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이념가들의 불순한 욕망의 발현이다.

모든 국민은 자유를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 평등하다. 근대 문명국가를 지탱하는 단순한 원리를 우리는 온갖 말과 주장의 현혹 속에 자주 잊는다.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국가와 개인이라는 권력 관계를 고찰하면서,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정치인이 간절하다.

비동의간음죄를 입법하려는 정치인 누구라도 이 문제에 대해 토론 자리를 마련해 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