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영역에서 관용과 프라이버시의 중요성

비동의 녹음죄 반대 공청회에서 성관계 녹음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의 사례가 실제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여성들의 공포를 일단 논의의 도마에 올리고자 “여성들이 공포를 느끼는 건 누가 내 성관계 음성을 녹음해서 음란 사이트에 뿌리거나 성적 만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라고 말을 꺼내던 중 남성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들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제히 성토했다.

“누가 음성에 흥분합니까?! 그런 사이트에 가도 음성을 보고 흥분하는 남자는 없어요!”

“영상은 블러 처리된 채 ‘000 신음소리’ 이런 제목을 달고 유통되기도 하지 않은가요?” 라고 되물으니

그런 경우가 소수 있다해도 그건 실제 피해가 아니라 제목을 자극적으로 단 페이크 영상일 확률이 높고,
영상 없이 소리만 있는 콘텐츠는 보지 않기 때문에 영리 목적으로도 쓸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개인적인 취향이라면 어딘가에 올리지 않고 혼자 들을 것이고,(그런 경우 권리침해 사안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 성관계 후 고소될 두려움에서 증거자료로 쓰기 위한 녹음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비동의 녹음죄 도입에 찬성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조차 성관계 녹음은 피해사례가 부족함을 시인한다. 그러면서도 법안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발에 대해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녹음을 막으면 나중에 강간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남성들에게 여자의 공포를 이해 못한다고 비난하지만 여성 또한 이처럼 남성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 문제는 둘 다 똑같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공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오직 여성들의 공포 뿐이라는 점이다.

남성은 남성의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을 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은 공적으로 취급되지 못한다. 남자는 영상을 원하지 음성을 원하지 않는다는 항변은, 영상이나 소리나 똑같이 처벌되어야 할 욕망이고 소리를 원하는 더러운 욕망을 가진 남자가 소수라도 존재하는 한 싸잡아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과 여성보호진영)은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남성의 욕망 자체가 죄악시되는 상황에서 디테일한 취향과 경향성은 더러움과 덜 더러움의 문제일 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남성은 공적으로 다뤄질 가치가 없는 총체적인 더러움의 덩어리가 되어가는 반면, 여성의 욕망은 아주 세밀하게 탐구되고 재평가된다.

욕망과 권력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문제적 현상이다.

나는 성 관련한 사안에서 페미니스트 여성 기자들의 단선적인 기사를 보면 남자의 욕망,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곧 받는다. 이들에게 남성 파트너가 없거나, 있다 해도 자유롭고 깊은 성적 대화를 나누는 관계에 이르지 못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혹은 성적 행위는 욕망이 아닌 권력의 문제라는 그녀들의 인식 때문에 파트너가 성적 대화를 기피하거나 억압적인 상태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고 짐작한다.

파트너에게나 고백해야 할 자신의 내밀한 성적취향을 만인에게 공개하면서 페미니즘 논리를 설파하는 현직 남성판사의 기이한 글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다.

페미니즘이 지지를 얻을수록 성에 대해 여성들이 보수화되고 청교도적인 성적 엄숙주의가 강화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마주한다. 게다가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유교적 성윤리와 남성혐오가 만나 남성의 성적 행동을 모두 혐오하며 통제와 처벌로 연결시키려 드는 세상이 되었다. 불행한 일이다.

성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탐구 뿐 아니라 지배권력과 개인, 프라이버시와 자유라는 근대적 가치와 밀접한 영역이다.

토마스 네이글은 <은폐와 노출>에서 성적 영역에서의 관용과 프라이버시가 왜 중요한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특이한 성적 행위부터 포르노그래피의 소비, 작업장에서 누드 사진을 전시하는 일에서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성적 표현이 불쾌하거나 해악을 가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에 관한 나의 견해는 성적 느낌과 성적 공상 그리고 그런 느낌과 공상의 표현이 개인에게 갖는 중요성과 아주 큰 다양성에 대한 강력한 확신에 의해 정해진다.

섹스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쾌락의 원천이며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황홀경 중 하나이다.
섹스는 또한 문명화의 규정적 구조이자 억제적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허용되고, 다른 곳에서는 취할 수 없는 형태의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완성을 제공하는 우리의 가장 심층적인 전사회적, 동물적, 그리고 유아적 본성이 온전히 배출되고 표현될 수 있는 성인의 삶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관용과 보호되는 프라이버시 영역은 특출나게 강력하다.
성별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공적 공간의 중요한 한 측면을 형성하지만, 개인적 성애의 뿌리는 너무나 깊어서, 공적인 성적 공간 내의 개인의 자유 보호는 개인의 권리 체계 고안에 압도적으로 중요한 측면이다.”

성을 개인의 자유 보호와 권리체계의 고안으로 연결지어 고민하는 탐구는 이제 어떤 학문에 기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