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미디어비평: 정작 ‘낡디 낡은’건 누구인가?

‘해로운’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을 보면서 제작진에게 보이는 분노나, 이 때문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거라는 우려는 넣어두어도 좋다.

시청자들이 수십년 동안 반복된 ‘가장 오래된 떡밥’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동화됐다면 오늘날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높은 이혼율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재결합 못 시켜 안달 난 ‘우리 이혼했어요’의 낡디 낡은 시선에 대하여”

2021년 1월 23일자 허프포스트에 실린 미디어비평 기사의 제목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은 오늘 날 진보적 미디어비평이라는 영역이 오히려 진보적이기보다 고루하고 낡은 ‘납작한’ 비평이 된 현상을 잘 보여준다.

허프포스트의 기사

글쓴이는 <우리 이혼했어요>가 이혼 커플의 재결합을 유도하는 듯한 설정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고 비판한다. 이혼한 커플이 동의해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의 관계라면 원수가 돼서 헤어진 다른 커플들보다야 재결합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아이를 명분으로 부모의 재결합을 부추기는 것은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불행하고 소위 ‘정상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하다는 폭력적인 이분법이라는 비난 또한 적절치 않다. 원 부모의 결합을 바라는 시청자들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이지 정상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의 영향 때문이 아니다. 부모의 관계가 개선여지가 있다면 아이는 자신의 부모와 함께 사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이는 나쁜 짓도, 그릇된 편견도 아니다.

이혼가정의 아이에게 원래 부모의 결합이 더 나은 상태가 될지는 결합 후의 일이므로 알 수 없다. 또 한부모 가정이나 재혼 가정 아이의 삶이 원부모와의 삶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각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뿐 어떠한 삶의 형태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안다. 삶은 어차피 다 개별적이므로 정상,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글쓴이에게 있다.

진보판의 문화비평은 점점 고루하고 납작해졌다. 화제가 된 프로그램에 따라붙는 비평이란 게 늘상 예측 가능하다. 여성혐오나 PC주의 기준으로 불편해하는 글이 나오리라 예상하면 여지없이 그런 글이 등장한다. 자신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오히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는 류의 비평이 뻔한 클리셰가 돼버렸다.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대입하면 이런 비평도 가능하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이혼 커플을 최초로 미디어에 등장시켜 이혼을 터부시하던 우리사회의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전복적 코드의 예능이라 할 수 있다.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비난받는 연예인 관찰예능 프로그램도 알고보면 부부의 싸움, 불륜이나 도박 등의 일탈행위, 가정마다 가진 내밀한 불행을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선망하는 정상가족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한 이데올로기인지 고발하는 프로그램이라 적을 수도 있다.

대중이 예능을 소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요즘 대세인 연예인 관찰예능 프로그램을 보자. 사생활 팔아서 돈 번다는 비난이 따라붙지만 유명인의 삶에 대한 관음 욕망은 욕하면서도 이를 보게 만든다. 상류층의 삶과 화려한 인맥을 보며 대리만족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서 이혼해도 저렇게 만날 수 있다는 걸, 타인과 싸울 때 저런 식으로 대처하면 좋겠다는 인간관계의 팁을 얻기도 한다. 각자 자기 삶을 기준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관찰형 예능을 소비한다.

‘해로운’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을 보면서 제작진에게 보이는 분노나, 이 때문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거라는 우려는 넣어두어도 좋다. 시청자들이 수십년 동안 반복된 ‘가장 오래된 떡밥’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동화됐다면 오늘날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높은 이혼율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글은 이데올로기의 과잉 뿐 아니라 감정적 수사를 남발한다. 아래 발췌한 대목을 보면 필자의 분노가 잘 드러난다. ‘안달 난’, ‘낡디낡은’, ‘폭력적인’, ‘죽지도 않고 꾸역꾸역’, ‘수치심도 모르고’와 같은 격한 단어들을 동원해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전문적인 비평문으로서는 부적절하다.

  • “오해도 풀리고 감정도 해소가 되고 나면, 문제가 없으니 다시 재혼해서 소위 ‘정상가정’을 복원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낡디낡은 시선으로(…) 21세기도 벌써 5분의 1이나 지났는데,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불행하고, 소위 ‘정상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행복하다는 이 폭력적인 이분법은 죽지도 않고 꾸역꾸역 살아 돌아온다. 손자를 봐서라도, 며느리를 봐서라도, 어린 딸을 봐서라도. ‘새로운 관계’를 생각한다는 프로그램은,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의 발목을 잡는 가장 오래된 떡밥을 수치심도 모르고 꺼낸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동원된 정상, 비정상, 이데올로기 개념이야 말로 ‘오래된 떡밥’이다. 이혼커플이 예능프로를 찍을만큼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해체된 마당에, 여전히 ‘낡디낡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정작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