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친고죄 폐지 논란에서 페미니스트의 왜곡 짚어보기 1)

정의당 당대표의 성비위 사건으로 성범죄에서 폐지된 친고죄 문제가 논란이 되고있다. 

피해자 의사 존중과 친고죄 폐지는 대립된 게 아니며 친고죄를 폐지한 입법취지와도 부합한다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왜 틀렸는지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첫번째 글은 논점을 섞어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페미니스트의 모순된 행동을 비판하고,
두번째 글에서는 입법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현직 판사의 글을 본래의 법해석으로 논박하려 한다.
세번째 글에서는 친고죄 논란에서 보듯 여성의 진정한 이익을 그때 그때 다르게 적용하는 페미니스트의 모순된 행동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본질적 문제를 짚어본다.  

 

성범죄에서 친고죄를 폐지한 것은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입법취지와 사실관계 면에서 모두 틀렸다. 이 사안을 다루려면 먼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의 주장과 친고죄 폐지의 역사라는 사실적 차원의 논의를 구분해야 한다. 이를 섞어 논점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또한 페미니스트의 전략이다.

성폭력에서 친고죄를 폐지한 것은 당사자 간 합의, 피해여성 본인의 의사 존중, 집단 내 해결(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교회 등에서 신앙공동체 내 해결을 내걸고 은폐하니까) 등을 이유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일괄 없앴을 때의 이익이,

일부 진정한 자의로 신고하지 않는 여성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의했기 때문이고 그 주장을 편 게 바로 여성운동계다.

성폭력 범죄를 처벌해서 보호하려는 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다. 친고죄 폐지는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왜곡할 소지가 있는 모든 현실적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가해자에게 적절한 사과와 보상을 받는 갈등해결 또한 피해여성에게 해결이며 치유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제로 배제시키면서까지 친고죄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여성운동계다.

성폭력 신고율이 낮은 것은 위와 같은 이유로 은폐되고 억압된 성폭력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이를 수면 위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친고죄를 폐지해야 하고, 성범죄는 인지하는 순간 반드시 국가가 나서서 예외없이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여성계가 이런 주장을 편 순간 형사처벌 과정에서 당사자가 가졌던 자기결정 권한은 국가에게 넘어간 것이다.

만일 여성은 원치 않는데 수사나 재판이 이루어졌을 경우 피해여성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폐지 당시에도 당연히 있었다. 여성운동계의 대답은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최대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국가가 피해여성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이를 조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이때는 이렇게 작동했다.

그런데 친고죄 폐지를 여성운동의 성과로 자축하다가 페미니스트인 여성이 피해자가 원치 않는 형사처벌은 피해자 존중이 아니라며 친고죄 논리를 펴는 상황이 생겼다. 반성하고 사과하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겠다는 여성들의 의사는 진정한 자의일 수 없다는 게 페미니스트의 논리였는데, 어떤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판단은 진정한 자의이며 이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은 친고죄를 폐지해야 한다던 기존 논리가 아닌 자신들의 모순을 엄호하고 나섰다. 방어의 도구는 2차가해금지와 피해자 중심주의다. 이번에는 입법취지를 왜곡해서 언급하며 자신들의 모순을 엄호한다.

공동체적 해결이 가능하다면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적 해결은 왜 반대했는가? 주변인들과 논의해 적절한 보상을 받고 합의하는 것은 공동체적 해결이 아닌가? 다른 국민들은 불가능하지만 자신들은 가능한가? 이번 정의당의 조치처럼 집단 안에서 추방하고 사과하고 넘어간다면 공동체적 해결은 다른 집단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교적 박탈하고 쫓아내는 것으로 해결하면 다른 교회를 만들어 신도들을 모으고 또 성폭행 하는 목사들을 비난할 논리가 사라진다.

여성자신의 ‘진정한 자의’를 규정하는 페미니스트의 기존 논리를 대입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장혜영 의원은 당이라는 공동체적 해결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정치활동 경험이 적은 어린 여성으로서 정당활동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체득한 조직보위 논리와, 당내 인간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게 훌륭한 정당인이다라는 억압적 문화에 동화된 상태의 의견으로서 그녀의 진정한 의사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제3자가 고발하여 법적 절차를 진행해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

이것이 친고죄를 폐지한 페미니스트의 논리였다. 이제 와 내 의사는 진실되므로 존중하라는 주장을 편다면, 다른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진실된 의사라 말하는 건 믿을 수 없지만 본인들(페미니스트)은 진실된 의사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행동을 하다가 모순을 지적받으면 기존 논리를 자의적으로 왜곡해 정당성을 꿰어맞춘다. 페미니스트에게 일관된 것 하나는 이러한 논리적 모순과 비일관성이다.

도덕적 차원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달라는 말을 할 수는 있다. 충분히 경청할 수 있는 의견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정의당과 장의원의 주장이 친고죄를 폐지한 입법취지와 부합하다는 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자기분열적 주장을 현직 판사, 형사정책연구원, 변호사 등 법을 다루는 사람들마저 나서서 하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심각하다. 페미니즘의 영역에서 지적 공론장이 파탄난 후 계속되는 현상이다. 적어도 법률가라면 주관적인 바람과 법해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들은 행위와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논점을 비틀어 비판자들을 몰아세워왔다. 논리적 모순과 비일관성에 대해 지적하면 이를 곤경에 처한 약자를 비난한다는 프레임으로 전환해 본질적 논쟁을 피한다. 2차 가해금지와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워 사안에 대한 논쟁의 장을 비판자 개인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공세로 바꾸는 것이다. 고약한 대응방식이다.

비판자들은 페미니스트와 여성계의 논리적 모순과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고 피해자의 행위가 이 모순 안에 포함된다면 같이 언급될 수 있다. 피해자의 이러이러한 주장은 기존에 펴왔던 논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와, 왜 형사처벌을 못하도록 막느냐는 비난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모두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불행감을 느끼게 하므로 금지해야 한다면, 모든 비판을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민주적 토론을 금지하고 처벌하던 공안논리와 다를바가 무엇인가. 페미파시즘이라는 말이 왜 등장했는지 성찰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