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보론-시와 때와 태도에 관하여

 

시와 때와 태도에 관하여_송곳 단상 글 보론

2015.09.05 01:44  조회 수 2816

 

카톨릭의 낙태사면에 대해 쓴 <송곳> 단상 글에 어떤 분이 편 반론을 보았다. 요지는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여성의 낙태는 선택이고 권리여야 한다는, 그래서 낙태를 죄로 벌하는 카톨릭의 행위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위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 반론은 아니고 보론 정도라 생각하고 말하자면 두 가지다.

첫째, 시와 때에 관하여,

어떤 말을 하기에 적절한 때가 있다. 교황이 제왕적인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종교집단에서 교리에 반하는 결정을(한시적이라는 전제가 있다 해도) 내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거다. 어떤 조직이든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일은 어렵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지금 그 안에서 변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응원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내부의 보수(혹은 근본)주의자들한테 비난받고, 외부의 진보(혹은 급진) 주의자들한테 비난받아, 결국 조직 안에서 고립되어 싸울 동력을 잃게 된다.
안에서 수세에 몰리더라도 밖에서 지지하고 함께 싸워준다면 내부는 자극을 받고, 다음 단계로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싸움에서 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행동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때, 나는 비난보다는 응원을 바란다.

“당신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지지합니다. 낙태를 죄로 여기고 고통받았을 카톨릭 안의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낙태가 죄가 아니며, 여성의 책임도 아님을 확인하며, 앞으로 카톨릭이 여성의 권리와 함께 하는 종교로 변화하기를 희망합니다.”

이렇게 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이 때에는.

말은 그 때여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늘 있으므로 전략으로라도 그런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도 높은 비난은 카톨릭에서 여성의 낙태를 벌하는 행위를 하거나,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경우에 엄청 많이, 세게 하면 된다.

노동조합의 활동에서도 많이 겪는 일이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로운 무언가를 하나 따냈을때, 그래봐야 너네는 착취의 한 축일 뿐 쇼하지 마라! 이렇게 비난하기보다, 잘했다, 앞으로 더 잘해라, 고 말해줄 때 안에서도 개혁 세력이 힘을 받는다. 그런 의미의 비판이었다.

둘째, 태도에 관하여,

<송곳>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요. 좋은 사람 말을 듣지”

어떤 말을 할 때 태도란 많이 중요하다. 비판과 비난, 조롱과 혐오 모두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 사례에서 카톨릭 신도인 여성이 교황의 발표가 있고 나서 종교 밖의 사람들이 하는 비난을 들었을 때,(대부분 여성운동 진영이거나 진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일)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이 내 편이라고 생각할까.
우리는 카톨릭 신도인 여성이 아니라 모든 여성의 권리를 위해 낙태권을 말한다. 옳은 주장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지키려는 여성들은 옳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비난의 말을 던지는 태도에서 상대는 존중을 느끼지 못한다.

한시적 사면을 말하는 교황은 옳지 않다 해도 좋은 사람이지만,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은 옳다 해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옳은 말을 하는 이상적인 장면.

내가 바라는 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