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해악이 되는 페미 진영의 사운드 바이트(2) : ‘글로벌 성격차지수 세계 108위의 성차별국가'

이선옥 승인 2022.02.22 17:17 | 최종 수정 2024.06.05 16:07 의견 0

성격차지수가 구조적 성차별의 근거라 주장하려면,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아시아1위, 세계 10위권의 성평등국가라는 데이터 또한 구조적 성차별을 타파한 근거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페미 진영이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단골 근거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 108위(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00위권 밖)라는 순위이다.

이 외에 성별임금격차, 여성 고위직 임원비율, 여성 정치인 비율 하위권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여성가족부와 페미니스트 진영은 성격차지수(GGI) 하위권을 앞장세워 한국이 여성차별국가라 주장해왔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이나영 교수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이 순위를 언급했다가 출연한 남성 뮤지션에게 해당 수치의 의미를 지적받자 엉뚱한 답으로 온라인 상에서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이 교수는 내전으로 죽은 남성들의 불행은 고려 대상이 아니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불행하다는 사실만을 유효하게 고려한다.(관련글: 해악이 되는 페미 진영의 사운드 바이트1): '전쟁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

글로벌 성격차지수는 성차별 지수가 아닌 성별 격차에 대한 단순 비교수치

한국은 성격차지수 순위에서 해마다 100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에는 153개국 중 108위, 2021년에는 152개국 중 102위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경제 규모 세계 10위인 나라 치고는 불균형적인 수치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숫자를 보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이 한국보다 상위권에 다수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격차지수는 성별 격차만 비교하므로 격차가 적을수록 상위, 격차가 크면 하위에 배치된다. 만일 남녀 모두 똑같이 교육수준이 낮거나, 똑같이 높은 경우 변별력 없이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르완다, 필리핀, 남아공 등의 국가가 왜 세계 6위, 8위, 19위 등의 상위권을 차지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교육수준, 질병과 건강 등의 지표에서 격차가 거의 없지만 정치인 비율, 고위임원 비율에서 여성이 낮아 하위권에 위치한다.

이런 요소 때문에 성격차지수는 성차별 정도를 판단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꾸준히 나왔음에도 페미 진영은 여전히 이 세계 100위권이라는 선정적 숫자에 기대 비윤리적 선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사회적 발언에 조금이라도 책임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전으로 남성들이 죽어 여성들이 정치와 경제활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국가, 남녀 모두 교육의 기회가 낮은 국가들보다 한국이 100위권 밖 수준으로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주장을 펴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해당 통계의 근거가 되는 항목과 산출기준에 대한 정보들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와 페미 진영은 성격차 지수를 이용해 한국이 세계 최하위권의 성차별 국가라는 선동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무책임하며 비윤리적인 행태이다.

성격차지수를 성차별의 근거로 활용하는 예는 많다.

류호정(정의당 의원): 국제사회 여러 성평등지수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도 성별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

장예찬(국민의힘 청년본부장): 한국은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선정한 아시아 1위, 세계 11위 성평등 국가다. 여성활동가들이 많이 인용하는 성격차지수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데, 두 기구의 국제적 공신력 차이가 먼저 있다.
성격차지수는 여성과 남성인권이 똑같이 낮으면 오히려 점수가 높아지는 지수다.
우리가 115등일때 르완다 6등, 필리핀 8등, 남아공이 19등. 여성낙태 금지국 필리핀, 여성강간율 높은 남아공, 내전으로 50만명 여성이 집단강간 르완다 이런 나라가 6등, 8등하는 성격차지수를 인용해서 우리나라가 성차별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구조적 성차별의 근거로 성격차지수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아시아1위, 세계 10위

우선 필자는 세계 몇위라는 순위로 성평등, 성차별 여부를 판단하는 통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판단을 하는데 참고하는 수준으로 활용한다.

가령 임금수준이 높고 보육지원이 잘 되는 국가에서 여성들이 경제활동보다 육아에 전념하는 선택을 더 많이 한다고 할 때, 외부적인 데이터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낮으므로 성차별 국가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전업주부를 선택하고 그 삶에 가치를 두고 만족한다면 성차별국가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통계에는 이러한 함정이 있으므로 어떠한 사안을 판단하는 데에 보조적 자료로 쓰더라도 자의적인 해석이나 왜곡에 대해서 늘 경계하는 것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책임있는 태도다.

성격차지수와 달리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선정하는 성불평등지수(GII)를 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189개국 중 11위, 아시아 1위이다. 해마다 이 순위를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페미 진영은 이 통계를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하나 있다.

국제기구로부터 어떠한 분야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으면 정부는 이에 대해 오해라든가, 사실과 다르다든가 하는 해명을 한다.

예를 들어 ILO에 정부대표와 노동계 대표가 함께 참석하면 노동계 대표는 한국이 노동차별 국가라는 근거들을 고발하고, 정부는 그게 아니라고 해명하며 기싸움을 벌이는 게 의례적인 현상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에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쓸까봐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잘 한 일을 부각한다.

그러나 유독 여성 관련 분야에 대해 정부는 언제나 저자세다. 여성의 날만 되면 정부의 관료들은 '한국은 성평등 후진국이다, 아직도 미흡하다,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라며 번번이 여성단체 앞에서 사과한다.

세계 10위, 아시아 1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끊임없이 부끄러워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자국 정부가 잘한 일에 대해 스스로 밝히지도 않고, 의미를 축소하거나 부끄럽다고 말하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 페미니스트들의 반복적인 사운드 바이트 세뇌가 사회 전반, 특히 정치권에 꽤 효과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단체가 특정 통계치를 선택적으로 이용해 끝없이 한국은 성차별국가라고 주장하니, '약자인 여성의 목소리를 충실히 들어주는 정의로운 정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관료들은 이러한 통계를 검증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일방의 목소리를 사실로 받아들여 공표한다.

개인 차원에서 '스윗남'들의 행동이 정부 차원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스윗함'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성별임금격차의 통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들(노동시간의 차이, 직종별 임금의 차이, 공공부문 미반영 등)이 현재는 누락되어 있으므로 더 정확한 통계를 내겠다고 말하지 않고,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는 성격차지수란 단순한 격차를 보는 것으로 차별의 판단 지표로는 부적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성격차지수가 구조적 성차별의 근거라 주장하려면,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아시아1위, 세계 10위권의 성평등국가라는 데이터 또한 구조적 성차별을 타파한 근거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1위, 세계 10위의 성평등국가라는 유엔기구의 통계를 인용하며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짧은 기간에 성차별한 제도와 문화를 타파했는지, 성평등이라는 과업이 한국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 과업을 훌륭하게 완수한 국가인지 자랑스러워하는 페미니스트를 본 바가 없다.

여기에서 페미 진영의 선택적 통계왜곡과 비윤리적 사운드 바이트의 해악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무엇이 실제 문제인지, 사회구성원들에게 닥친 취약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보다 선정적인 구호로 성차별국가라는 낙인을 먼저 찍는다. 이는 여성에 대한 배타적 지원을 요구하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정치권에 여성정치인이 소수여서 대다수 여성들이 불행한가? 기업의 고위 임원에 여성의 비율이 적다는 사실(이는 하부구조가 바뀌는 중이므로 점차 변화하는 중이다) 때문에 여성들이 불행한가? 그렇지 않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주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취약함 때문에 불행하다.

사회구성원들의 취약성에 대한 대처가 정치가 집중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페미 진영의 '세계최하위 성차별국가'라는 사운드바이트는 여성들 각자의 삶 앞에 놓인 개별적 취약함보다 집단적 개념으로 불행서사를 조장해 여성의 불행과 해결책을 왜곡한다.

어떤 국민이 우리가 경제적 후진국인 내전국가보다 불행한 사회라는 데에 동의하겠는가? 개별적 삶에서 느끼는 주관적 불행도는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이런 식의 선동은 남성들에게 '그렇다면 르완다나 필리핀 같은 성평등 선진국가에서 살라'는 조롱을 양산한다.

이는 또 한 번 성별갈등의 원인이 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반감의 누적으로 작동한다. 성격차지수 세계 하위라는 데이터는 더이상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구조'란 실체가 없는 텅 빈 개념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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