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2016.05.30 12:43   조회 수 2880

웹툰 <송곳>은 정규직 해고문제를 다뤘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얘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방통위 우수상 수상작 선정 이유에도 비정규직의 해고를 다뤘다고 써있다. 심사위원들이 드라마를 안 봤거나, 자세히 안 봤거나, 비정규직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봤기 때문에 안보였을 거다.

진보 언론이라는 곳들도 송곳을 다룰 때 비정규직 해고를 다뤘다고 쓴다. 이랜드투쟁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졌고, 주인공의 모델이 된 사람들이 실재하니 그런 사전정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착시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본다 해서 정확하게 보는 건 아니다. 의도와 행위의 결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착시가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사실 아닌 것이 사실로 되어버린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전달된 정보는 교정하기 어렵다. 자신이 받아들인 생각에 이야기의 의미를 가둔다. 비정규직 해고 문제를 다룬 작품이 아닌데 그걸 다뤘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한다. 비정규직보다 강자인 정규직의 해고 문제를 다뤘다면 훌륭함이 덜했을까?
우리가 보고, 듣고, 공감하고 분노하는 많은 사안들에는 이런 착시가 있다.

송곳은 정확하게는 이랜드투쟁 전 까르푸 노조의 투쟁이 모티브다. 이랜드투쟁을 많이 떠올리는데 세상을 흔든 큰 싸움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해고를 당할 뻔하고 그걸 막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 노조를 알게 돼 만들고, 회사와 일합씩을 주고 받으며 지리한 투쟁을 하는 작은 사업장의 이야기다.

처음 노조라는 걸 경험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변화들. 짜릿한 승리의 경험, 쓰라린 패배의 경험, 피가 끓으면서도 두렵고, 가끔 정의롭고 적당히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노조를 한다. 송곳은 이들의 성공과 실패, 성장과 변화의 순간들을 작업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이들이 삶의 위기에 처했을 때 노조라는 존재가 어떤 해답을 줄 수 있는지, 2003년 시점의 이야기지만 노조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다.

나는 그래서 송곳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