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에 대해 공정할 것

2017.01.24 10:56   조회 수 2413

“권력을 휘두른다고 우리를 비난하면서 당신은 왜 출세를 위해 타인을 모욕하는 거죠?”

블루블러드라는 미드에 나온 대사. 현 뉴욕경찰청장의 두 아들도 모두 경찰인데 그 중 둘째 아들이 흑인민권운동가이자 대중연설에 능한 흑인목사의 타깃이 된다. 아들은 실제로는 무고한데 편집된 동영상으로 연일 공격당한다. 그는 백인경찰 대 흑인피해자라는 구도를 만들고, 막강한 권력자 집안이 결국 아들의 죄를 덮을 것이라고 맹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실제 그 아들이 죄가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결국 경찰청장인 아버지에게 자신을 무슨 위원으로 임명하는 딜을 제안하는데, 아들은 다행히 새로운 증거를 찾아 무혐의가 입증된다.

경찰 내부 감찰반(?) 같은 기구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러 나온 여성관료는 계속 둘째아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빈정댄다. 그녀는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파헤쳐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증거가 나오고 둘째 아들의 무죄가 밝혀진 순간에도 그녀는 그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자의 아들이라 풀려난다고 비꼰다. 그녀를 향해 둘째아들은 저렇게 말한다.

공정함이란 참 어렵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경찰청장의 아들이라서 오히려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고 유능한 경찰이어도 그의 성취는 금수저의 특혜로 받아들여지고, 마땅히 무죄인 사건이라 무죄가 되었는데도 정의를 행한다고 믿는 여자관료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한테는 그가 권력자의 아들이어서 무죄로 풀려나는 상황이어야 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믿는다. 그래야 자신의 정의감이 빛나고 정당해지니까. 타인에 대해 무례한 자신의 태도도 돌아보지 않는다.

흑인목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진실을 알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짓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가장 공격하기 쉬운 구도를 만들어낸다. 흑인피해자 백인가해자, 권력자와 힘없는 자. 대중은 그의 선동을 쉽게 받아들인다.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진실을 취사선택해서 믿는다.

권력자의 아들은 당연히 무능하고 부패한 인간일 거라는 진실, 백인은 가해자이고 흑인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진실. 죄가 없는 게 아니라 권력자의 아들이라 무죄를 받았다는 진실. 이렇게 취사선택된 진실은 의심이나 확인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이재용 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당연히 삼성장학생이어야 하고, 없는 아들까지 만들어내 삼성에 입사를 시키고야 만다. 그래야 ‘이 부정의한 세상’과 아귀가 맞아 떨어지고, 그에 분노하는 나 또한 정당해지니까.

공정함은 정의와 매우 밀접한 단어다. 이재용에 대한 영장기각이 나는 아쉽다. 증거인멸의 우려만으로도 가능한 사안이 아닌가 생각했고, 해당 판사가 이재용이어서 특혜를 받아서도 안되지만, 이재용이라서 불이익을 주어서도 안 된다는 공정함의 강박에 빠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삼성에 유리한 행동을 한 모든 사람이 삼성의 장학생이라서 그랬다고 믿지는 않는다.

즉각 비난하기는 쉽고, 떠도는 소문들을 확대재생산하기도 너무나 쉬운 인터넷 세상에서 필요한 일은 내 중심을 잡는 것. 어떤 사안을 대할 때마다 진실을 취사선택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비추어 판단은 하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신중할 것. 정의를 추구할수록 언제나 공정함에 대해 공정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