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의'와 너의 '도의'

이선옥 승인 2018.05.02 00:08 의견 0

2017.05.17 15:56  조회 수 2274

이것은 원칙과 규범에 대한 이야기다.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여성단체들이 주관한 위 행사에 한 운동조직이 책자를 팔고 선전활동을 했다.

주최측에 사전 양해를 구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선전물의 내용이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기존 운동진영의 대응이나 개념화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 자기들 조직이 경험한 사례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조직에서 일어난 사건은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가해 문제에서 기존 운동조직들이나 여성주의 활동가들한테 비판을 많이 받은 걸로 안다.

말하자면 문제적인 내용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선전하고 팔았던 것. 그 자리에 토론자나 관객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본 반응에서는 짜증스러운 의견과 함께 '상도의'가 없다는 비난도 많이 보인다.

경멸하는 듯 강도 높은 비난의 표현도 보였다. 여기서부터가 나의 고민 지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을 했고, 성평등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이 시작된 후 성소수자운동가들이 항의를 했다.

문재인 후보가 기독교단체와 만남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혼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또 하나, 대선 막바지 문재인 후보가 TV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답변을 했다.

다음날 ‘국방안보특보단 천군만마 발대식'에 성소수자운동가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항의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위 두 사건에 대해 언론은 ‘소란’ ‘난입’ 같은 표현을 썼다.

주최측과 합의하지 않은 행동이었고, 행위로 인해 행사장에 소란이 있었으니 그렇게 표현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운동가들은 이 두 행위에 대해 그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내용과 형식 모두 정당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성소수자로서, 인권운동가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이고,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거나 깃발을 들고 다가갔을 뿐이기 때문에 평화로웠다는 것이다. 운동가들은 다른 조직이나 개인의 행사에 합의 없이 참여해 선전을 하는 일이 많다.

사실 대부분 원치 않는 곳에 가서 항의를 하는 게 일상이다.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에도 여러 조직이나 개인들이 와서 항의를 하고 선전물을 뿌린다.

성평등포럼 행사도, 천군만마 행사도 항의한 운동가들에 대해 예의와 도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위 여성단체의 토론장에서 책자를 팔고 선전활동을 한 단체에 대해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비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평등포럼 기조연설은 주제가 연관되었지만, 천군만마 행사는 성격이 달라서도 대중들의 비난이 많았다. 이번 여성단체의 행사에 간 운동조직은 주최측의 토론과 같은 주제에 대해 자기 주장이 있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를 선전했다.

앞선 행사들에서 활동가가 한 행위와 이들의 행위는 다를까? 다르다면 어떤 지점에서 다를까?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반대자의 입장에서 합의하지 않은 불청객이 될 수도 있고, 불청객을 맞이해야 하는 주최측일 수도 있다.

주최측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내 감정은 당연히 다르다.

항의자의 입장일 때는 내 문제가 절실하고, 내 주장이 정당하다고 여길 테고, 주최측의 입장일 때는 불쾌하고 불편하고, 심하게는 쫓아내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형교회의 목사가 동성애혐오발언을 하는 자리에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이 가서 항의할 수 있다.

그들의 신도들도 퀴어행사에 와서 항의를 한다.

도의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정당한 행위라는 주장도 각자 처한 상황에서는 일리가 있다. 합의 없이, 원치 않는 자리에 가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형식의 예의를 갖추는 걸 기준으로 할 것인가? 내용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삼아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인가? 각자가 생각하는 ‘도의’가 다를 때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규범을 만드는 노력은 누가 해야 할 것인가? 같은 운동진영 뿐 아니라, 그 영역 외의 대중을 만날 때 필연적으로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주장의 정당성을 설득하려는 노력과 함께, 공동의 원칙과 규범을 만드는 일이다.

주장을 설파하는 노력만큼,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행위의 허용기준과 규범에 대한 의견이 활발하게 나와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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