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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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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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14:52 조회 수 13129
진보매체의 남성기자들과 진보남성 지식인들은 여성운동가나 여성학자, 여성계에서 어떤 용어를 개념화해서 주장하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성평등한 의식을 가진 진보남성으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페미니즘에 기반해서 어떤 주장을 한다 해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수용할 건 하고, 논쟁할 건 하는 게 필요한 자세이지 '우리는 기득권을 누려온 남성이니 가르침에 잘 따르겠습니다' 하는 건 지식인으로서, 미디어 종사자로서 취하지 않아야 할 게으르고 비겁한 태도다.
페미니즘 또한 이즘 가운데 하나일 뿐 성역이 아니다.
지금 터져나오는 보도들을 보면 상당수가 데스크의 역할을 하고 있을 남성기자들이 어떤 지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는 회의적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기본권의 지위에 두는 착각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성평등, 인권, 기본권 등에 대한 추가 공부없이 개념화가 안되어 있으니 그냥 페미니즘에 쉽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니 다른 정치적 용어들이 개념화될 때 뒤따르는 논쟁이 페미니즘에는 없다.
강간문화, 젠더감수성, 데이트폭력, 여성혐오, 가스라이팅,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등등 뭘 던지기만 하면 논쟁없이 그냥 정식 개념화 해버리는 이상한 상황이 진보매체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나하나 다 따져봐야 할 개념들이고, 매우 거칠게 제기되고 있는데도 이를 공론의 장에서 차분하게 다뤄보려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반지성적인 태도가 전매체를 망라해 지금처럼 일관되게 나타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세상의 절반을 위함으로 진정한 평등을 이루려는 선의가 이토록 집약된 상황인데, 왜 세상은 점점 성별갈등과 대립만 깊어질까? 성평등한 사회를 거스르는 반동의 물결로 취급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불편부당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차분하고 지성적으로, 좀 느리더라도 이것이 진보매체다운 기사다 하는 글을 보고싶다.
공정하고 좀 더 정의로운 방식으로도 우리는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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