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자인가?

2017.08.20 00:27  조회 수 3212

나는 여성이고 소득으로 분류하면 도시의 저소득층 생활자다. 이 두가지 만으로도 나는 이른바 사회경제적으로 구조적 약자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약자인가?
나는 글을 쓴다. 그 이유로 나와 비슷한 연령과 소득의 여성남성들에 비해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다. 무명의 작가라고 해도 작가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긍정성과 장점을 누리고 산다. 그리고 여자다. 그 이유로 사회가 도입한 약자배려의 혜택을 누린다. 동료시민들이 규범으로 가진 여성에 대한 배려도 받으며 산다.

나는 약자인가?

나는 사회경제적 약자로 분류될수 있고 주장 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타인의 삶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나는 이 곳에 몇 마디 쓰는 일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일, 겪은 일, 진실만으로도 그럴 수 있고, 조금 과장을 섞어서 내가 가진 글쓰기의 요령으로 잘 포장해 누군가를 망가뜨릴 수 있다.
피해서사를 극대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거기에 여성이라는 나의 성별, 그간 내 영역에서 직업적으로 쌓아온 신뢰의 정도, 인간관계들을 활용해서 기능적으로 호소하면 얼마든 파장을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이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효과도 크다.

나는 약자인가?

어떤 사안이 있으면 스스로 정의로운 이들은 누가 약자인가를 판별하려고 한다. 그걸 기준으로 가해/피해(자)를 규정하며 그 결과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의로움을 과시하거나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해 연대한다는 믿음의 자뻑에 빠져든다.

그러나 약자라는 규정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관계, 어떤 사안,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와 얽혀있는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게 약자성이다. 같은 사안 안에서도 상황에 따라 피해자도 약자성도 무시로 변한다.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나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사회지표상 그는 나보다 강자지만 그와 나의 관계에서 나는 약자가 아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한 진보매체의 여성기자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그랬다.

“만약 내가 나의 이전 파트너나 내가 함께 일해본 진보의 유명한 남성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한다면 기자님은 그거 의심하시겠어요? 저는 정말 그럴듯하게 잘 쓸 수 있고 어떤 일들은 사실을 포함하기도 해서 약간만 포장을 해도 상대가 부인하지 못할수도 있어요. 수 년 전의 일도 모두 소급해서 쓸 수도 있구요. 그럼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먼저 여자인 내 말을 의심할까요 믿어줄까요? 폭로란 이렇게 위험하고 허약한 겁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먼저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자라서, 경제적 약자라서 약자로 규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안에 대한 판단은 그게 우선이어서도, 그게 전부여서도 안 된다.

타인의 약자성을 판별하는 데 들이는 공을 자신의 약자성을 성찰하는 데에 써보자.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약자인가? 어떤 면에서 약자인가? 나는 약자이기만 한가?
같은 질문을 어떤 상황에 놓인 타인들에게도 던져봐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약자인가? 어떤 면에서 그런가? 그는 약자이기만 한가?

우리는 좀 더 공정한 방식으로도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