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해악이 되는 페미 진영의 사운드 바이트(1) : '전쟁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

이선옥 승인 2022.02.11 23:52 의견 0
  페미니즘 진영이 성별 대결을 조장할 때 자주 쓰는 방식이 여성 피해만을 부각하는 비윤리적 사운드 바이트이다.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란 미디어나 정치인이 주장을 핵심적으로 전달하려 뽑아낸 짧고 강렬한 문장을 말한다.

페미 진영이 자주 사용하는 사운드 바이트로는 ‘여자라서 죽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다’, ‘같은 일을 하고도 여자는 남자의 60퍼센트’, ‘전쟁의 최종 피해자는 여성’, ‘혐오는 아래로 흐른다’ 등이 있다.   이러한 구호는 강렬하고, 극단적이며, 논리적 사고를 권장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캐나다의 총리 트뤼도는 취임 후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한 이유에 대해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라면서 당연한 결정임을 부각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2015년이라는 성평등한 시대에 훌륭한 여성총리가 집권해야지 왜 남성인 자신이 총리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런 설명은 없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주로 민주당의 의원을 포함한 페미 진영의 남성들은 물론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소속 젊은 남성 정치인도 여성할당제와 같은 정책이 당연하다며 “이는 다 끝난 얘기”라는 말로 비판을 일축한 바 있다.

마치 친여성정책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는 당연한 것이며 이에 대한 이견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다.

심지어 여성에게 편파적 이익을 제공하는 성차별적인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조차 시대착오적 견해이며 부정의한 행위라는 규정을 서슴없이 한다. 페미 진영은 비윤리적인 사운드 바이트를 통해 끝없이 사회를 세뇌(brainwashing)시킨다.

이들의 사운드 바이트가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지 예를 들어보자.  

전쟁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

2016년 트럼프와 맞붙은 대선에서 과거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이 조망돼 화제였다. “Women have always been the primary victims of war.

Women lose their husbands, their fathers, their sons in combat.”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   “언제나 여성은 전쟁의 가장 주된 피해자다.

여성들은 전투에서 그녀들의 남편과 아버지와 아들을 잃는다”는 힐러리의 발언은 해당 대목만이 부각돼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군인에 대한 존중이 높은 미국사회 일각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1998년 영부인 시절 엘살바도르를 방문했을 때 여성폭력을 종식시키자는 연설에 등장한 문구였다지만, 힐러리의 페미니스트 포지션과 여성차별을 내세운 선거운동 전략과 맞물리면서 성차별적인 메시지로 작동했다.

과거 힐러리의 연설은 여성의 피해를 부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 남성의 희생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힐러리 사례와 무관하게 페미니스트들은 실제로 여성이 언제나 가장 주요한, 그리고 최종의 피해자라고 주장해왔고 지금도 주장한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사운드 바이트는 그리 드물게 듣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말이 남성에게 어떻게 들릴지에 대해 이들은 관심이 없다.

페미니스트들에게 기본적으로 결여된 태도는 동료시민을 설득이나 공감을 구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은 언제나 약자이며 피해자이므로 누구라도 여성의 말을 들어줘야 하고, 논박해서는 안 되며, 오직 무조건적 공감만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언론사의 여성 기자.

미투를 검증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가져갔다.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집회에 등장한 구호   남성은 전쟁에 동원돼 목숨을 잃는다.

다행히 살아 돌아온다 해도 부상과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기도 한다.

어떤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인간에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크게 취급받는 고통은 없다.

어떠한 보상도 죽음 이전의 삶을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남성이 죽어나가는 전쟁의 예를 들어 여성이 언제나 주요한 피해자라는 주장은 당연히 남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의 미망인도 당연히 고통받는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 아들을 잃은 엄마 또한 전쟁의 피해자이며 연민과 구제의 대상이다.

전쟁에서 강간이나 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 또한 마찬가지다.

남성들은 이 고통을 부인하거나 서열을 매기지 않는다.

애초 이 가족들을 지키고 더 나은 삶을 계획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논리가 끼어들어 서로에게 향하는 연민을 갈라놓는다.

페미니스트는 전쟁이라는 피해에서 여성의 고통만을 부각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 ‘전쟁을 일으킨 건 남성이므로 남성 때문에 남성이 죽은 것인데 왜 여자는 잘못한 것 없이 피해를 입는가’라고 반박한다.

병역의 의무를 공동으로 분담하자 요구하면 군대에 끌고가는 건 가부장 남성국가권력이니 국가랑 싸우라며 일축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전쟁을 일으키고 결정하는 권력과 이에 강제로 동원되거나 자원하는 남성은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페미 진영은 어떠한 형태로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모든 세력 자체를 남성일반과 일치시켜 남성권력이라 칭한다.

이들에게 계급, 자본, 국가 간 경쟁, 인종, 종교 등등 분쟁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은 알 바 아니다.

전쟁에 끌려가거나 징집의 대상이 되는 남성들은 대부분 하위 계급이라는 사실 또한 알 바 아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몇몇 전쟁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군사작전에 개입했다는 사실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직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 가해자로서 남성’이라는 가상의 남성권력만이 이들의 논리에서는 유효하다.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기사.

한달 된 아이의 아빠와 예비신랑이 포함돼있다.

(출처: 연합뉴스)
  하루 평균 5명씩 사망하는 산재 사고 중 중대재해 사망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최근 발생한 여천 NCC폭발사고 현장에서도 한달 된 아이의 아빠와 예비신랑이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페미니즘 논리대로라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들 노동자의 사망이 아니라 남겨진 아내와 아이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이 전쟁 때문에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아들을 잃기 때문에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면, 앞으로 살인이라는 죄는 누군가를 죽인 데 대한 벌이 아니라 살해당한 남성의 아내나, 엄마, 아이에게 고통을 준 죄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살해한 자체보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에게 고통을 준 죄가 더 크니 그 죄로 처벌받아야 하지 않는가? 페미니즘 논리대로라면 형벌체계도 이렇게 작동해야 한다.

이게 무슨 논리인가?  

누가 남녀를 이간질 하는가?

전쟁에 동원되는 남성과 이들의 죽음과 부상으로 고통받는 여성은 모두 전쟁의 피해자다.

이 당연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대결을 부추기는 건 바로 페미 진영이다.

이들은 서로 충분히 동의하고 연민할 수 있는 고통에 대해 여성과 남성을 이간질해 갈라놓는다. 고통에 서열을 매기고, 여성의 고통만을 부각해서 이들이 얻으려는 건 여성은 약자라는 그릇된 페미니즘 이념의 지속과 여성에 대한 배타적인 보상이다.

권력화된 페미 진영은 끝없이 여성피해 서사를 발굴해서 이를 영속적인 것으로 박제시킨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부추겨 동의를 이끌어 내어야만 자신들의 이념과 권력이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에 동원되는 페미 진영의 비윤리적인 사운드 바이트가 끼친 해악은 크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인식보다 여성 피해를 우선하는 일은 참전군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

사회와 가족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 아닌 오직 여성에 대한 가해행위로 규정되도록 이끈다.

남성 일반을 가해집단으로 만들어 적대를 부추기고 사회의 통합을 해친다.

동료시민을 연대와 연민의 대상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 집단으로 갈라놓는다. 앞서 언급한 선정적인 구호들, ‘여자라서 죽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다’, ‘같은 일을 하고도 여자는 남자의 60퍼센트’, ‘전쟁의 최종 피해자는 여성’, ‘혐오는 아래로 흐른다’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구호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성별 갈등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동한다. 페미 진영은 합리적인 검증이나 논증 대신 선정적 구호를 주창하고 사회에 강제로 주입해 왔다.

이러한 사운드 바이트를 통해 여성과 남성을 이간질하고, 사회의 합리적인 분배 체계를 교란시킨다.

서로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길을 방해한다. 성별 갈라치기의 주범은 ‘이대남’이나 정치권이 아니다.

페미 진영이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합리적 힘이 제어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일부 정치권은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모른 채 여성은 약자라는 도식에 빠져 페미 진영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아직도 우리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내전국이나 빈국보다 못한 성차별 국가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페미 진영이 주창하는 해악이 되는 사운드 바이트에 대한 논박은 하나씩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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