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리얼돌 규제 주장의 문제점(1): 성적 보수화와 남성혐오

이선옥 승인 2019.10.04 01:51 | 최종 수정 2024.03.29 19:08 의견 0

리얼돌 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점을 총3편에 걸쳐 정리했습니다.

2019년 6월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허가 판결 이후 리얼돌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거나 규제사례를 부각하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특정인물과 아동을 형상화한 리얼돌을 규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6만명이 참여했고, 정부는 당사자의 동의없는 리얼돌과 아동형상의 리얼돌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처벌하겠다 응답했다.

아동형상과 실제인물을 모방한 주문제작형 리얼돌에 대한 규제 청원이지만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리얼돌(섹스돌, 러브돌) 자체에 대한 규제이다. 최근에는 리얼돌 반대 시위를 열어 '인간으로서의 여성 존엄성을 훼손하고 성상품화를 부추기는 리얼돌은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얼돌 관련 보도의 제목들.

리얼돌 규제 사례와 주장들만을 부각하고 있다.

국회는 여성들의 요구에 부응해 리얼돌 규제법안을 발의(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 아청법일부법률개정안)했고, 국회입법조사처는 다양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식견해를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보호를 위해서는 규제를 불사하겠다고 한다.

반면 소수의 리얼돌 이용자 외에는 국가의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실현,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 대신, 성상품화, 여성의 존엄성, 성적대상화와 같은 개념들만 인용된다.

리얼돌 규제 반대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려는 국가권력의 오래된 습성을 통제하고, 불가침의 대상인 사적 영역의 자유를 보장받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논의는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性)적 엄숙주의, 보수주의, 규제주의, 엄벌주의 강화로 가는 한국사회

2015년부터 페미니즘 물결과 여성혐오 배격 운동이 대중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성적 행위와 표현 영역에서 보수주의와 엄벌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미투(me too)운동의 결과로 무고수사유예적용 매뉴얼과 비동의간음죄가 사실상 도입되었고, 혜화역 시위 등의 결과로 HTTPS 차단, P2P 업로더 처벌, 음란물 규제 강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이어졌다. 특히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성범죄 영역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되는 특성을 보인다.

문화적으로는 여성혐오, 피해자 중심주의, 성상품화, 성적대상화, 2차 가해, 성인지 감수성 등의 개념이 확산되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성적 표현 영역에서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표현들은 보수주의와 엄숙주의로 바뀌고 있다.

대중문화는 제도적 규제가 도입되기 이전 소비자 운동의 형태로 페미니즘과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가 직접규제 수준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와 창작자들이 이 운동의 대상이 되어 직간접의 타격을 입었다.

국가 대 개인이라는 구도 대신 성별 대립구도 등장


전통적으로 규제를 반대하고 자유와 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좌파와 진보진영, 페미니스트들이 이 변화를 주도하는 특성을 보인다. 금지를 금지하고 더 많은 자유를 외쳤던 세력이 오히려 규제를 요구하고 엄벌주의에 찬성하고 있다.

주장의 기저에는 국가 대 개인이라는 구도 대신 정체성 정치에 기반한 성별대립구도가 깔려 있다. 강자/억압자/가해자(남성) 대 약자/피억압자/피해자(여성)라는 구도는, 권리를 제한하고 규제를 도입하려는 국가에 대한 경각심을 무너뜨린다. 이에 더해 약자의 보호와 권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에게 점점 권리침해의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침해, 위헌적인 제도와 문화의 확대

“여성을 혐오스럽게 묘사하는 창작의 자유는 위축되어야 한다”
“성상품화와 성적대상화는 여성혐오이다”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는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성희롱과 성차별의 입증책임은 신고를 당한 자에게 있다”
“성별에 기반한 폭력은 특수하게 취급해야 한다”
“가정폭력이 ‘예상’되는 현장에서 체포를 하지 않은 공권력은 처벌해야 한다”
“(위력간음죄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해도 대법에서 무죄로 판결나기 전까지는 유죄이다”
“성범죄에 대한 유무죄의 판단에는 성인지감수성을 적용해야 한다”

위의 발언들은 공적 매체에 기고되거나 국회의원이 발의한 입법안, 행정부 장관의 국회발언, 사법부의 판결문에 적시된 표현들이다. 이처럼 지금 한국사회는 위헌적인 제도와 문화들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이다.

문화운동이 앞장서고 제도가 수용하는 형태로 증거주의, 입증책임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와 같은 형사법의 대원칙들이 무력화되고, 자유권적 기본권들이 형해화되고 있다.

여성의 주체성을 외쳤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체로 묘사한다. 빅팀 페미니즘(victim feminism)은 여성운동의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며, 극단의 사례들을 부각해 개인의 자유권을 축소하고 규제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거역할 수 없는 사례들 앞에서 자유의 견해는 위축된다. 자유의 제한은 오직 자유의 확대를 위해서만 허용된다는 오랜 원칙이 권리 논증 없이 왜곡되고 있다.

남성에 대한 혐오문화의 확산


제도적 평등이 자리잡은 근대법치국가에서 여성들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범죄와 문화이다. 특히 성범죄는 여성들의 피해 가운데 극단적 사례들이 존재하므로 손쉽게 규제와 처벌에 동의를 구할 수 있다. 성범죄의 특수한 부각은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남성성이라는 특질은 유해한 것으로 규정돼 욕구 자체가 혐오와 규제, 교정과 억압의 대상이 되며 이를 당연시한다.

이 결과 남성을 반문명적인 존재로 혐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남성의 욕구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으려 하며, 남성의 욕구를 수용하는 것은 곧 남성지배의 강화라 비난한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방어하기 힘든 영역이 되었다. 젠더감수성, 성인지감수성, 성상품화, 성적대상화, 피해자중심주의와 같은 개념은 문화적으로 여성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나 사실상 명확하게 개념화할 수 없고, 권리로서 논증되지 않은 개념들이다.

그럼에도 이를 명문화된 처벌과 규제의 영역에 기준으로 적용하려는 데서 갈등과 진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리얼돌에 대한 규제요구도 이 연장선에 있다.(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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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리얼돌 규제 문제를 다룬 이선옥TV 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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