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점을 총3편에 걸쳐 정리했습니다.
3편에서는 리얼돌 규제의 본질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금지를 금지하라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 허가 판결 후 리얼돌 규제를 요구하는 청원이 20만 명을 넘었다. 한국은 유교 바탕의 문화적 규범과, 해방 후 들어온 기독교의 청교도적인 문화규범이 한 번도 도전받지 않아 왔다. 성적 자유의 물결은 잠시 불었다 사라졌다. 성적인 것을 죄악시하고 비천하게 보는 금기의 감정(파토스) 위에, 여성을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적 착취 피해자로 규정하는 페미니즘이 만나게 된다. 유교, 기독교, 페미니즘이라는 세 영역의 금기가 연합해 성윤리의 기풍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사회는 셋 중 어느 하나만 받아들여도 성적 규제에서는 같은 결론을 지지하고 실천하게 되어 페미니즘의 성규제 요구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리얼돌 규제 주장이 힘을 받는 데는 한국사회의 이러한 특수성이 작용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성적 즐거움을 죄악시하는 문화를 넘어 법규에 의한 범죄화로 가고 있다.
특히 성적 영역은 2010년 이후 법규적 범죄화 속도가 빨라지는 중이다. 성적 엄숙주의와 범죄화는 끊임없이 강화로만 갈 뿐 풀린 적이 없다. 만인이 만인을 옥죄면서 결국 인간을 힘들게 하고 중대한 가치와 멀어지는 중이다.
리얼돌 규제 사태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기본권적 원칙은 기본권은 단순하게 사변적인 자유연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얼돌은 성적대상화다→이는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것이다→인간 존엄성을 해치므로 규제가 마땅하다’와 같이 자유연상을 고리화한다면 금지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안은 없다. 이 자유연상 과정에는 아무런 권리 논증이 없다.
법체계의 정확성에 어긋나는 리얼돌 규제 주장
리얼돌 규제 주장은 법체계의 정확성에도 어긋난다. 하드코어 살인물을 본 후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범죄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법체계는 그 표현물을 봤다고 해서 살인행위를 면책해주지 않는다. 현실에서 처벌을 받는 부분은 살인이라는 ‘행위’다.
우리 법률은 문화물을 봤을 때 통상적인 방식으로 소비하는 이성적인 행위자를 전제로 한다. 이성적 행위자가 아니라고 판단할 때 면책이 되어 책임조각사유가 된다. 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데에 표현물이 영향을 끼쳤다고 해서 규제한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하는 행위다. 그런 작위는 신뢰할 수 없다. 욕망에 대한 충족을 처벌한다는 것은 판타지의 소비자가 책임 없는 주체라는 전제에서 나온다.
또한 범죄자는 행위의 책임을 외부에 떠넘기려는 속성을 갖는다.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고 사회에 널리 퍼진 속설에 부응해 면책을 받기 위함이다.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성경을 읽고 심판을 위해 연쇄살인을 했다 해서 성경 탓이라 할 수는 없다. 원인은 성경을 잘못 읽고 행위로 나아간 것에 있지, 읽은 것 자체나 성경출판자의 잘못은 아니다.
인과성의 사슬에서 어떤 사람의 주체적인 결정-심판을 위해 살인을 결심한 한 살인자의 결정-이 개입하는 순간, 이를 규범적인 인과관계로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법원리의 중대한 원칙이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
권리의 단위는 개인이며 리얼돌 규제는 중요한 기본권인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타인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 모든 개인은 성적취향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일부 범죄 가능성의 예를 들어 규제를 지지하는 것은 부당한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결문에서처럼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해서 국가의 간섭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또한 리얼돌 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권리에 더불어,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지배권까지 갖게 된다. 다른 구성원들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이 타인에 의해 지배당하는 권리의 훼손을 경험한다. 이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권리행사의 불평등을 일으키는 문제다.
모든 국민은 자유를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 평등하다.
가치와 규범의 혼동
가치와 규범의 혼동은 리얼돌 규제 주장의 중요한 원인이다. 규범은 어떤 행위를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등하게, 예외 없이 이행해야 할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고, 가치는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선호다. 규범은 타당하거나 타당하지 않거나 이지만, 가치는 주관적인 괜찮음 혹은 나쁨, 매력적임과 같은 주관적 판단요소를 포함한다.
‘여성이 인격적으로 존엄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리얼돌 규제 주장은, '인격' '존엄' '침해' '권리' 같은 개념을 주관적인 판단의 해석자들이 좌우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므로 규범의 근거로는 적용할 수 없다.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신조에 따른 규범을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타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자신의 신념을 불공정하게 주입시키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궁극적 자율성을 무시하는 행위다.
자유의 견해를 바꾸는 전략
우리 헌법 제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37조 2항은 ‘모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성적 영역에서 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자유의 견해를 바꾸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전에는 안전, 전통 가치, 덕과 같은 가치(value)들이 자유를 공격하는 추세였다면, 요즘은 자유 자체의 개념을 변형한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진보 매체들은 리얼돌 논란에서 이를 혐오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인간 존엄 개념을 내세우고, 규제하는 국가들의 사례만 부각한다. 리얼돌이 여성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지위는 포르노물의 금지, 성적 표현물이나 도구의 금지가 아니라, 한 사회의 문명화, 근대화, 법치주의와 시민의식의 성숙으로 결정된다.
리얼돌이 누구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권리의 단위를 아동, 여성과 같은 집단정체성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욕망과 상상을 범죄화하고 금지하는 일은 온당한가?
더 많은 자유를 외치며 국가의 억압에 대항해 왔던 진보는 어디에 서 있는가?
리얼돌 규제사태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고 시민들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공정성이다.
우리는 점점 자유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
참조: 리얼돌 규제 문제를 다룬 이선옥TV 영상들
리얼돌은 여성과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hIX0VhkMck&t=83s
리얼돌 이용은 실제 강간범죄로 이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y_rl2oliSw4&t=34s
리얼돌은 성상품화와 성적대상화로 여성의 존엄을 훼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at7Tt6JLS4&t=34s
리얼돌 규제 주장자들의 논리, 무엇이 문제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8QtM5w-_flg&t=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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