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려는 페미니스트 진영의 의도(1)

[정치하는 엄마들]의 사례를 들어

이선옥 승인 2023.08.14 20:31 | 최종 수정 2023.12.15 19:52 의견 0

2023년 7월 3일,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운동단체에서 국토부에 공문을 보냈다.

현행 철도안전법 제47조에 따라 지하철 등에서 "철도종사자와 여객 등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가 금지행위에 해당한다"는 안내방송을 하고 있는데, 이 내용 가운데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수정해달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단체는 2021년 대검찰청이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거나 성차별 개념 용어를 개선한 사례에 성적 수치심이 포함되었다며, 국토부 역시 국민의 법감정과 성감수성을 반영해 국토부 관할 기관 모든 안내문과 안내 방송에서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성폭력범죄나 아동,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법조문에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교육기관, 공공기관, 기업체 등 광범위한 조직들에서도 성희롱과 관련된 규범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였는가 여부가 행위와 규제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페미니스트 진영은 그동안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라고 주장해왔고 제도권에 진출한 페미니스트 관료들과 여성단체의 운동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를 압박해왔다.

이들의 주장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면 차별적 용어의 개선이라는 별 것 아닌 요구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페미니스트 진영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반드시 그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있음을 확인해왔다.

특히 성범죄와 관련된 요구사항들은 여성에게는 배타적인 이익을, 남성들에게는 범죄자의 낙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으며, 그 결과 페미니스트 집단에게는 더 큰 정치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진영에게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는 것은 왜 중요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수치심'에 비해 '불쾌감'은 더 주관적이며, 주관성이 처벌의 근거가 될수록 여성들이 성범죄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형벌권 행사의 기준을 주관적 예민함이나 민감도에 좌우되도록 만들어 공적 형벌권 행사의 엄격성을 노골적으로 없애버리려 한다.

그러한 사회가 될수록 페미니스트 진영은 법률보다 우위에서 통제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실익이 있기 때문에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진영은 성적 수치심에서 '수치'의 의미를 따로 떼어내 이 용어가 성범죄 피해자에게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가져야만 된다고 강요하고, 정조관념을 요구하던 시대의 잘못된 개념이며, 성차별적이기 때문에 성적 불쾌감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런 논증이 없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여기에서도 작동한다.

그렇다면 수치심과 불쾌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수년 전 진보진영의 한 정치인이 악수를 청했다. 그는 악수를 하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나의 손바닥을 긁었다. 그게 어떤 의미의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았으나 불쾌감을 느꼈다.

그와 나 사이에 악수라는 신체접촉이 있었으니 내가 불쾌감을 이유로 그를 고소하면 그는 성범죄자가 될 수 있을까? 성범죄의 구성요건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꾼다면 가능한 일이다. 불쾌감은 전적으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형법상 범죄의 구성요건인 성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은 상호주관적(구성원들이 상호간에 공감하는 공통적인 주관성)이며 사회적 평균인의 규범적 기대라는 합당한 기초가 있다.

모욕죄에 인격을 비하한다는 판단이 들어있듯, 수치심은 심적 상태이지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한다'는 객관적 구성요건의 기준이 있다.

여기에서 '사람'은 합리적 평균인이지 구체적 개인이 아니다.

어떠한 개인이 수치심을 느꼈다고 해서 바로 인정하는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평균인에게 그 행위가 어떠한 성적 의도가 담긴 행위로 공유되는가가 판정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악수하면서 손바닥을 긁은 것이 불쾌할 수는 있지만 가슴을 만지는 행위와는 다르게 평가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인이 수치심을 주장할 때 합리적 평균인이 느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객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관적으로는 진실되더라도 범죄의 인정은 받지 못한다.

물론 성적 수치심에 대한 판례 또한 사법부에 의해 점점 주관화되고 있다. 그렇다해도 수치심에는 아직 규범적 평가가 작동한다.

그러나 불쾌감이 구성요건이 된다면 규범적 평가 대신 무제한적인 구성요건이 적용된다.

쳐다만 봐도 불쾌하다고 주장한다면, 끈적한 시선에서 불쾌감을 느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불쾌감은 그러한 규범적 절차를 다 걷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페미니스트 진영의 목적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구성요건이 가진 최소한의 객관적 판단기준을 없애고 지극히 주관적인 불쾌감이라는 구성요건의 변경을 통해 국가형벌권의 행사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휘두르려는 부도덕한 권력욕에 있다.

국가 형벌권의 행사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개별인의 심리상태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한사람에 의해서도, 특정 집단에 의해 좌우되어서도 안된다.

우리 사회가 페미니스트 진영의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국토부는 <정치하는 엄마들>의 요구에 대해 법원행정처와 법무부의 신중검토 의견과, 불쾌감이라는 더 개방적인 표현이 되면 법집행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변호사회 등의 견해를 근거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진영 또한 이대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입법운동을 벌일 것이며, 행정부와 사법부를 계속 압박할 것이다.

이미 권인숙 의원과 고민정 의원은 성적 수치심을 불쾌감으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사법부와 대검찰청은 페미니스트 진영의 요구를 내부적으로 수용했다.

그렇다면 성적 수치심에서 수치심은 정말 피해자에게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것이며 성차별적인 용어일까? 다음 편에서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의 정의에 대한 페미니스트 진영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운동단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한다.

이들이 압박하고 다니는 기관은 다양하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하고 있는 운동들을 보면 개인이 하면 '갑질'에 '맘충'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는 행위가 단체를 만들어서 하면 '운동'이 되는 부조리한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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