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규범을 위협하는 약자감수성

인권감수성이 발달했다는 도덕적 우월감은 동료 시민을 손쉽게 혐오주의자로 낙인찍는 우를 범한다. 

주간경향 연재-11(원본링크)

지난해 경기 고양의 저유소에 화재가 발생했다. 언론은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을 검거해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진보 성향의 기자와 인권운동가들은 용의자의 국적을 표기한 기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소수자와 약자 혐오가 심한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범죄행위 보도는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논리다.

유명한 여성 운동선수가 코치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자,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가해 남성의 이름을 기사 제목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고 가해자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미디어가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에 민감해야 한다며 내놓은 해법은 이렇다. 범죄 피해자가 유명 여성일 경우 가해 남성의 실명으로 사건을 호명할 것, 사건의 당사자나 피의자나 여성일 경우 성별을 적시하지 말 것, 범죄 피의자가 빈국 출신의 노동자일 경우 국적을 특정하지 말 것 등이다. 특히 여성이 피해자로 규정된 사건은 가해 남성의 신상과 이름을 적극 호명해야 인권원칙에 부합한 보도라고 주장한다.

언론 보도에 특정인의 실명이 적시되는 순간 적정 절차에 따라 혐의가 확정되기 전부터 ‘마녀사냥’과 사회적 낙인이라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기본권은 이런 위험에서 사회구성원 모두를 보호한다. 누군가의 권리를 희생시켜 약자를 보호한다는 논리는 오히려 보편규범의 기능과 목적을 왜곡한다.

약자의 권리가 특별히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는 보편의 권리보장에 복무해 사회구성원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하기 위해서다. 여성의 이름 대신 남성의 실명과 사진을 보도하는 행위는 보편규범인 기본권 보장의 의무를 충족하는가? 미군범죄 보도는 문제없지만 스리랑카인은 혐오 보도이므로 안 된다면 사건·사고마다 약소국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정할 것인가? 국적을 보도한 것만으로 한국인들이 스리랑카인을 혐오할 것이라는 예단은 정확한가? 그리고 정당한가?

인권감수성이 발달했다는 도덕적 우월감은 동료 시민을 손쉽게 혐오주의자로 낙인찍는 우를 범한다. 

미디어의 공적 의무는 자신들이 규정한 피해자를 위해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가해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다.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안인지를 먼저 판단하고,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을 편견없이 공정하게 취재한 후, 피해자든 가해자든 여론재판과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존중하는 일이 먼저다. 이를 위해 절차적 정당성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것까지가 미디어의 공적 의무다. 

성별이나 국적과 같은 정체성에 따라, 다수 대중의 여론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은 보편규범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 흉악범일지라도 인권을 고려해야 하고, 비위 혐의를 받는 고위공직자라도 권리를 가진 시민이므로 피의사실 공표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두 기본권에 근거한다.

누구의 권리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의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여야만 약자의 권리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