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신고자를 알 수 없는 스쿨미투: 광주 D여고의 대형 스쿨미투, 그후 1년 6개월 ⓶

이선옥 승인 2020.02.14 00:58 의견 0

 

만일 광주 D여고와 같은 미투운동을 계속 허용하고 지지한다면, 어떤 학교든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는 학교장의 말 한마디면 곧 사실로 인정될 뿐 아니라 허위신고의 가능성은 고려되지 못한다.

원한을 가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순간의 감정적 배설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학교장이나 권력자의 자의에 따라 기획된 미투도 가능하다.

  신고자를 알 수 없는 스쿨미투 2018년 연말 나는 긴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자신을 “세계 최대규모의 스쿨미투가 터진 광주 D여고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에 대해 알리고 싶어했다.

당시 나는 <우먼스플레인>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성별 갈등 이슈를 주로 다루고 있었다.

비판적 견해를 봉쇄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문제도 자주 얘기했다. 미투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투 이후 한국사회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를 마주했다.

미투는 억압 관계로 인해 말하지 못했던 성폭력 피해사실을 스스로 드러내고 폭로함으로써 더이상 피해자로 남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이 운동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났다.

헐리우드의 거물 제작자가 도산과 함께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고, 유명인사들이 속속 미투의 대상이 되면서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유력 정치인과 문인, 배우 등 각계의 유명 남성들이 미투운동으로 커리어를 잃거나 직업영역에서 퇴출당하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목숨을 끊기도 했다.

나는 모두가 이 운동을 지지하고 심지어 국가마저 미투를 장려하는 상황이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나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이런 국면에 설 자리가 없었다. 어느날 촉발된 미투운동은 브레이크 없이 사회 각 영역으로 확산되며 학교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학생들의 스쿨미투운동이 가세한 것이다.

전국 각지의 중고등학교에서 스쿨미투가 터지기 시작했다.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왔지만 D여고의 교사들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해 같은 교사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들은 어떤 정의는 제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 제물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미투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다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겪기 전에는 그게 어떤 일인지를 모르고, 겪은 후에는 발언권이 사라졌다. 입이 있으나 말할 권리를 빼앗긴 이의 긴 편지를 제대로 읽은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나는 이 사건이 미투운동에서 느꼈던 공포의 요소들을 모두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교사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그래왔듯 거역할 수 없는 사례들 앞에서 비판의 견해는 위축된다.

스쿨미투운동이 들불처럼 퍼지는 상황에서 이념이 아닌 권리 자체를 옹호하는 나같은 사람이 설 자리는 없었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가야 한다고 결정한 이유는, 찬찬히 읽어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말 한마디를 믿고 8개월 동안 나를 기다린 D여고 교사들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나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예 서지 못했다.   베일에 싸인 신고자, 말을 바꾸는 교장 2018년 7월 23일, 1학기 2차고사가 끝난 광주 D여고 학생들 8백여명에게 무기명 설문지가 돌려졌다.

학교장은 예고 없이 반장들을 불러 설문지를 나눠주라고 했다.

학생과 교사들 모두 교육청에서 의례적으로 하곤 했던 평범한 설문조사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학년부장 선생님도 몰랐을 만큼 전격적으로, 비밀리에 시행된 설문조사는 뜻밖에도 ‘성비위에 관한 무기명 신고’였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규모에다 성비위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조사인데도 학교 차원의 회의나 결정 과정은 없었다. 극히 일부 교사만 교장에게 설문사실을 들었지만 그나마 무슨 내용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 설문조사의 답변 결과는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교감의 서랍에 하루 동안 보관됐고, 다음날 교장 A씨 혼자서 설문지의 결과를 정리했다.

교사들은 이 일이 시작된 이유와 진행과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오직 교장 A씨만이 알고, 결정하고, 통보했다. 설문조사를 마치고 이틀 후인 2018년 7월 25일, 임시부장회의가 소집됐다.

교장은 남교사들은 모두 성비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화를 내며 참담하다고 했다.

교사들은 이날에야 처음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이유를 듣게 된다.

7월 17일 학생들이 교장실에 찾아와 남교사들의 성비위를 신고했고, 다음날에는 학부모가 전화로 성비위를 제보했다는 것이다.

교장은 시험기간이라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교육청 변호사와 상담하고 고민하다가 23일에 학교 자체 설문을 실시했다고 했다.

교사들은 그때까지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설문의 결과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D여고 사태를 다룬 뉴스.

모든 매체가 교육청과 학교의 일방적인 발표를 사실로 단정했다.
 
광주 D여고의 스쿨미투가 가진 많은 문제들 중 첫 번째는 신고자의 존재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광주 D여고의 스쿨미투가 가진 많은 문제들 중 첫 번째는 신고자의 존재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장 A씨는 신고자의 존재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왔다.

스쿨미투가 일어난 다른 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소셜미디어에 피해 사실을 폭로하거나, 제보를 받은 운동단체를 통해, 혹은 학교 안에 포스트잇과 대자보를 붙이는 등의 폭로로 시작됐다.

특정되지는 않더라도 피해자가 존재하고 피해 사실이 공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D여고는 달랐다.

8월 3일 학교장 A씨가 학부모들에게 보고한 문서에는 “7월 18일 교사가 학생들에게 들은 성폭력 내용을 신고하였고, 20분 후 학부모가 같은 내용을 전화로 신고했다.”라고 되어 있다.

7월 25일 임시부장회에서 교장실에 학생들이 찾아와 신고했다던 말과는 달리 신고자가 교사로 바뀐 것이다.

신고 날짜도 17일에서 18일로 바뀌었다.

8월 초 언론의 보도에는 학생회 간부가 교장에게 신고했고, 학부모가 교감에게 최초 신고 전화를 했다고 나오다가, 8월말 광주시의회에 이 사건이 보고될 때는 여교사가 교감에게 신고했고, 학부모가 교감에게 전화한 것으로 다시 바뀐다.

스쿨미투 사례에서 이렇게 신고자가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오직 교장만이 알고, 결정하고, 통보했다 내가 만난 교사들은 신고자의 존재가 계속 바뀌는 이유와, 진실에 대해 여러 차례 교장에게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도 최초 신고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성폭력 사례 전수조사, 형사고발, 재판, 대량징계로 이어진 D여고 스쿨미투의 근거가 된 최초 신고자의 존재는 명확하지 않다.

익명의 학부모가 신고 전화를 했고, 불이익을 우려해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통화한 내용을 입증할 녹취록이나 증거자료를 통해 신고자 자체의 존재 여부와 폭로내용은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D여고는 학교장 외에는 신고자와 신고내용을 알지 못하고, 신고를 접수한 이후에도 이를 공개하고 논의하는 절차도 없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중심주의에 따르면 신고자의 존재를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를 2차 가해라 주장한다.

그러나 고발사건에서 고발인의 실재 여부와 고발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은 필수다.

그 절차 없이는 고발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8백명 넘는 전수조사 설문지를 본 사람은 교장 A씨 뿐이다.

학생들이 쓴 내용을 검토해 성비위 행위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처리를 논의하는 중요한 일에 교내 성고충위원회나 다른 기구들은 가동되지 않았다.   기획된 미투도 가능하다 만일 광주D여고와 같은 미투운동을 계속 허용하고 지지한다면, 어떤 학교든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는 학교장의 말 한마디면 곧 사실관계로 인정될 뿐 아니라 허위신고의 가능성은 고려되지 못한다.

원한을 가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순간의 감정적 배설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학교장이나 권력자의 자의에 따라 기획된 미투도 가능하다.

“누군가 신고했다, 그래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라고 하면 끝 아닌가.

피해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거나, 미투운동을 폄하하려는 극단적 예시일 뿐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에 더 강력한 원칙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 한 번의 극단적 사례일지라도 미투에서 거짓은 곧 한 사람의 삶이 파탄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투의 형식적 완결성을 요구하는 주장이 아니라 미투운동 자체가 가진 근원적인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일에 싸인 신고자, 알 수 없는 신고내용과 설문내용, 공적 논의과정 없이 교장의 단독적인 판단으로 성비위 결정, 소명기회 없이 바로 사법처리.

이것이 광주 D여고의 스쿨미투가 진행된 과정이다.

시작은 불투명하고 과정은 불합리함 투성이이며, 결과는 참혹했다.

많은 교사들의 삶이 무너졌다.

오직 미투만이 원칙을 어기고도 면책을 받는다.   전수조사라는 위험한 방식 설문지를 혼자만 들여다보고 정리했다는 학교장 A씨는 전수조사 결과가 참담해 차마 보여줄 수 없었다고 했다.

형사처벌과 징계의 근거가 되는 가해 사실을 정작 당사자들은 피의자가 되어 조사 받는 과정에서야 볼 수 있었다.

7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이번에는 교육청의 조사원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1:1 면담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3일 후인 2018년 7월 31일, 교사 11명에게 성비위 의심교사로 분리조치한다는 통보문자가 왔다.

이들은 내가 어떤 행위로 가해자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학교에서 쫓겨났다.

전수조사부터 불과 1주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학교와 교육청은 가해자 즉시 분리라는 매뉴얼에 따른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그 후로도 분리조치 교사는 계속 늘었다. D여고는 전체 교사 59명 중 남교사가 39명인 학교였다.

이들 중 무려 남교사 22명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형사처벌과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다.

스쿨미투 운동가들은 학교현장의 성폭력이 그만큼 만연했다는 증거로 이 숫자를 해석한다.

그러나 D여고에서 실시한 전교생 무기명 설문조사는 애초부터 비정상적인 숫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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