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게 원하는 건
자신들의 이중잣대를 돌아보고 앞으로는 타인에게 했듯 똑같이 엄격하고
강도높은 처벌을 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남윤인순 의원이 박시장 측에 고소인의 동향을 알린 일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나라도 가까운 사람이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당할 처지에 놓인 사실을 알게됐다면 바로 연락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이는 인지상정이다.
사정을 들어보려 했을 수도 있고,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우려 했을 수도 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해 알지 못하니 인지 시점에서 고소인의 주장을 다 신뢰할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구라도 같은 상황이 된다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지인에게 사적으로 알릴 수 있기 때문에 이 행위자체를 곧 가해자의 편에 선 2차 가해라 문제삼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시점에서 고소인의 주장이 진실됐다는 근거 또한 없다.
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게 원하는 건 자신들의 이중잣대를 돌아보고 앞으로는 타인에게 했듯 똑같이 엄격하고 강도높은 처벌을 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그의 편에 섰다고 생각되는 행동들을 섣불리 악마화 하지 말라는 요청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일반적 행위들을 페미니스트들은 가차없이 2차 가해라 비난해왔다.
남윤인순 의원과 여연대표의 행위가 일각에서 비난하듯 박시장이 권력자이고 힘있는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적으로 맺어온 관계의 형태에 따른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인간적인 고려도 용납하지 않아왔다.
가해자로 지목되면 주변인들은 그를 앞장서서 성토하거나 인간관계를 끊는 수준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모두 2차 가해자로 매도당한다.
침묵도 2차 가해이고, 사실관계를 알기 위한 질문들도 2차 가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단체와 관련있는 사람에게 왜 너는 아무말도 하지 않느냐고 공격한다.
개인마다 다른 사정들을 헤아릴 생각은 없다.
이들은 마치 거대한 가해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듯 극단적인 수사를 사용해 주변인들을 단일한 가해그룹으로 묶는다.(안희정 전 지사의 모친상에 화환을 보낸 것도 이들에게는 2차 가해다)
그렇다면 이런 운동방식에 익숙하고 반성폭력운동의 법칙을 만들어온 여성연합의 상임대표와 남인순 의원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여성운동의 평생 동지이자 페미니스트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박시장의 피소사실을 접했을 때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선 믿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간 보아온 삶과 인간적인 관계에서 남들과 똑같은 비난을 퍼부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비난하기란 쉽다.
그러나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가해사례로 지목되었을 때 이에 대해 말하기란 어렵다.
사실관계를 알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들 또한 일반적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인 것 뿐이다.
수십년 여성운동을 해 온 당사자들도 겪어보니 그간 악마화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성연합의 반성지점은 반성폭력운동단체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반성폭력 운동의 규칙이라 자신들이 주장해 왔던 것들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변화노력이어야 한다.
나라면 이렇게 사과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피해자의 편에 서겠다고 타인에게 요구해왔던 말과 행동, 준칙들이 섣부르고 경솔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성찰하고, 타인을 향한 요구에도 신중하겠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태도, 가해자로 지목된 이에 대한 악마화를 경계하고
보편의 규범을 준수하면서 사실관계를 밝히도록 노력하겠다.
그동안의 반성폭력 운동과정에서 섣부른 낙인으로 가해자와 2차 가해자로 지목돼 피해를 입은 분들께 사과드린다.
이런 수준의 내부성찰이 가능하다면 여성운동은 질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사과문을 보면 요원한 일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검찰 수사결과발표에 대한 한국여성단체연합 입장>
오늘 발표한 검찰의 수사결과에 언급된 여성단체 대표 D는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로 그에 의해 ‘사건 파악 관련 약속 일정’이 외부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반성폭력운동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여성연합은 피해자와의 충분한 신뢰 관계 속에서 함께 사건을 해석하고 대응활동을 펼쳐야 하는 단체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여성연합은 정의로운 싸움에 함께 할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고 송구했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해 분투하신 피해자와 공동행동단체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피해자와 지원단체에 대한 2차가해, 사건 본질의 왜곡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해당 내용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파장, 사건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하여 바로 사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연합은 이 일을 확인하고 상임대표를 직무 배제했으며, 그동안 반성폭력운동의 원칙과 책무에 대해 다시 고민했고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검찰 발표에 당황하셨을 여성연합을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도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검찰의 수사결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본인이 문제가 될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고 권력형 성폭력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하고 성평등한 노동 조건과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반성폭력운동단체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피해자와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해오신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리며 여성운동단체로서의 책무를 깊이 새기며 본연의 역할을 위해 책임지고 행동하는 여성연합이 되겠습니다.
2020.12.
30.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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