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여성할당제 왜 문제인가? (1)

이선옥 승인 2022.01.06 13:31 | 최종 수정 2024.05.16 00:31 의견 0

20년 전쯤 진보진영 내, 특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대선후보 지지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한 페미니스트 여성의 도발적인 제기로 시작된 여성 정치인 박근혜 지지 논란은 진보진영 내 주류(페미 진영의 주류를 포함한)의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환원주의는 여성정치가 아니라는 반대논리를 폈다.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는 성별만 여성일 뿐 가부장권력의 대리자에 불과하며 여성정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어떤 권리를, 제대로 말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오늘,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정치라 말할 수는 없으며, 여성의 권리 신장와 정치발전은 성별과 무관하다던 페미 진영은 오직 결과로서 성별의 균등을 이루는 게 평등이라며 생물학적 여성할당제를 요구한다.

여성의 숫자가 무조건 많은 것이 여성정치이자 민주주의이며 정치발전이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페미니스트 변호사는 할당제가 남성이 차별을 당하는 제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사회 전체의 대의를 위해 그 정도 차별은 감내하라는 전체주의적 발언마저 서슴없이 한다.

백분토론에서 남성이 차별받아도 감내하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변호사.(유튜브 화면 캡처)

이러한 주장에서 강경파인 레디컬 페미니스트나 온건파라 불리는 교차성 페미니스트는 다를 바가 없다.

교차성 페미니스트는 지역구 의원 40퍼센트 강제할당을 요구하고, 레디컬 페미니스트는 여경과 남경의 비율을 9:1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수준의 차이일 뿐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여성의 이익을 위한 운동을 펴는 곳이 페미니스트 진영인데, 여전히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며 성평등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오해에 기반해 지지하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과연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고 있는가?

남녀동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여성단체연합. 교차성(온건) 페미니스트로 분류된다.

경찰의 여남성비를 9:1로 만들라는 급진 페미니스트

공공기관과 자치경찰 내 여성비율 50퍼센트를 주장하는 여성의당.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정당이다.

지역구의원 여성공천 40% 의무화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출처: 뉴시스)

2016년 미국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회주의자 대통령 바람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는 여성의 정치진출에 대해 조언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여자이니 나를 위해 표를 던져라!'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월스트리트, 보험 회사, 제약 회사, 화석 연료 산업에 맞설 용기를 가진 여성입니다.
...
민주당에서 여러분이 지켜볼 투쟁 중 하나는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지 여부입니다."

한국의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남(윤)인순, 정춘숙, 권인숙, 김상희, 진선미 등 페미니스트 의원들은 여성의원과 단체장을 강제로라도 많아지게 하는 것이 곧 정치의 선진화이며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여성 정치란 무엇이고, 여성 정치인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는 주장은 어디에서 근거하는가? 박근혜와 최순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비선실세마저 여성이었던 여인천하의 시대는 여성 정치라는 대의가 무엇인가 묻게 했다.

그러나 어떤 페미니스트도 여성대통령의 실패에 대해 여성정치의 실패라 하지 않는다. 이들은 늘 편의적이다.

진선미 전 여가부 장관은 할당제가 있어서 자신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며 할당제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그건 페미니스트 진선미 개인의 성공일 뿐 여성들의 성공과 무관하다.

이를 할당제의 성공으로 주장한다면 그녀 포함, 페미니스트 출신 여가부 장관들이 낙제점을 받고 물러난 것에 대해 할당제의 실패를 자인하고 폐지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페미 진영은 여성할당제를 통해 수혜를 입은 자가 권력유지에 성공하면 할당제의 성과라 자찬하면서, 실패할 경우에는 할당제의 폐해가 아니라 여성혐오 때문이라 주장한다.

언제나 여성 자신의 책임은 없다. 오히려 더 많은 할당을 요구한다. 이들의 논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여성에게 더 많은 자리를 주어야 한다로 귀결된다. 여성이 큰 문제를 일으킨 상황도 이들에게는 모두 추진력이 되어 돌아온다.

할당제는 위헌적 제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당제는 평등을 위해 기능하지 않으며 위헌적인 제도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평등은 무언가를 동등하게 나누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동등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할당제 확대를 주장하는 페미 진영은 평등과 차별의 개념을 왜곡한다.

이들은 차별받는 여성의 이익을 끌어올리는 것이 평등이라고 규정한 후 이를 위해 위헌적인 제도들을 시행하라고 요구한다. 국가권력이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옳다고 설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 국민집단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사회를 우리는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적 직위의 할당제는 이 영역에 진출하는 남녀의 숫자를 강제적으로 맞추기 위해 입헌민주주의국가의 국민주권원리를 부인하는 위헌적인 제도다.(다음 편에서 남인순, 정춘숙 의원 등이 발의한 지역구 여성공천 40퍼센트 의무화 법안의 예를 들어 여성할당제가 왜 위헌인지에 대해 다루도록 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의 대전제는 헌법의 틀 안에서, 다른 구성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할당제는 한시적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페미 진영은 한시적이라는 전제를 없는 듯이 무시하고, 다른 구성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대전제 또한 무시한다.

할당제 옹호 논리의 문제점

할당제 옹호 논리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할당제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이므로 불공정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둘째, 할당제는 세계 선진국들이 모두 시행하는 조치이므로 글로벌 스탠다드다.

이 논리는 진보진영 뿐 아니라 보수정당의 의원들도 동일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할당제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조치가 아니며 글로벌 스탠다드이므로 따라야 한다는 논리 또한 타당하지 않다.

할당제가 태생적으로 지닌 모순은 권리의 단위를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상정한다는 점이다.

할당제는 특정한 인종, 성별, 지역, 세대와 같은 우연적인 동질성을 기본단위로 하여 배분하지만, 어떠한 기회의 장을 열어 권리를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혜의 최종 단위는 결국 개인이다. 그러므로 할당제는 그러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 모두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정체성집단 안에서도 특정 소수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간다.

원 기득권 집단(인종적, 성적 다수자) 안에서 어차피 기회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하위집단의 반발과 차별감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들이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며 진입하게 되는 영역에서 기득권 다수자 집단의 하위계층은 애초부터 기득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당제의 혜택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은 애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소수 엘리트 여성과 소수 청년이다. '평일 오후 2시에 여의도 정치판의 회의에 드나들 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

진입의 장벽을 제거하는 것과 강제보정으로 균질한 결과를 만들고 이를 평등이나 차별해소로 주장하는 것은 다르다.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우대조치(또는 적극적 평등실행조치, 적극적 차별시정조치 등)의 특성 중에는 중요하게 ‘잠정적’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국가공무원중 여성비율을 높이기 위해 잠정적 우대조치로 도입된 '여성채용목표제(현 양성평등채용목표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정의한다.

‘잠정적 우대조치라 함은 종래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일정집단에 대해 그동안의 불이익을 보상하여 주기 위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입학 등의 영역에서 직ㆍ간접적으로 이익을 부여하는 조치를 말한다.

잠정적 우대조치의 특징으로는 이러한 정책이 개인의 자격이나 실적보다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혜택을 준다는 점,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 항구적 정책이 아니라 구제목적이 실현되면 종료하는 임시적 조치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헌재 1999.12.23.98헌마363)

적극적 우대조치는 한시적으로 시행해 이를 통해 기회의 평등을 최대한 구현해보는 조치로 시작됐다. 헌재 또한 이 조치가 가진 위헌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페미 진영은 할당제의 부당함에 대한 비판을 받을 때마다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대응논리로 꺼내든다. 할당제의 혜택을 오히려 남성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비가 이는 자체로 할당제는 부당하며, 차별적이고, 갈등을 조장하는 불공정한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차별적인 특혜논란을 받을 이유는 없다.

2022년에 만료되는 이 제도는 누가 집권하든 다음 정부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지금 여성에게 기회의 평등을 차단하는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구제목적이 실현되어 시효를 다한 제도에 대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페미 진영이 계속 개념을 왜곡해 존치와 확대를 주장할 뿐이다. 페미 진영은 위 두 가지 논리로 할당제를 옹호한다.

이들의 논리가 왜 틀렸는지 하나씩 살펴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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