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인 더불어민주당의 남(윤)인순 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을 40퍼센트 강제 할당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2108432)을 발의했다.
비례대표 후보 뿐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에 여성 40퍼센트 강제 할당, 시도지사 후보에 여성 및 남성을 각각 1명 이상 추천, 시·군·구의 장 선거에는 선거구 총수의 30퍼센트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페미 진영은 특정 성별이 60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것을 방지하는 법이므로 여성할당이 아니라 동등참여 보장법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기만적 언술에 불과하다.
현재 여성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적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등한 참여는 현재도 보장되어 있다.
정치적 직위에서 여성할당을 주장해 온 페미 진영은 이제 여성할당제라는 말 대신 ‘동등참여’라는 말을 쓴다.
여성할당제라는 용어가 여성에 대한 특혜, 특권, 차별적 보상이라는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를 가리려는 의도에서다.
‘공무원양성평등채용목표제’도 처음에는 ‘여성채용목표제’였으나 이름을 바꿔 지금은 마치 양성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제도인 것처럼 오도한다.(이 제도가 왜 문제인지는
“남성이 이득을 본다는 ‘공무원양성평등채용목표제’는 폐지가 답” 문서 참조)
그러나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 해도 여성할당이 성차별 정책이며 위헌적인 제도라는 점은 가려지지 않는다.
남인순 의원의 법안에 공동으로 참여한 발의자는 민주당 여성의원인 신현영·김상희·진선미·양경숙·정춘숙·백혜련·권인숙·이수진(비)·서영교·송옥주와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다.(출처: 뉴스원)
남인순 의원은 동등참여라 주장하면서도 목적은 '여성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출처: 여성신문)
현재 할당제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후보 여성 50퍼센트 의무, 남녀 후보를 홀짝으로 교차(여성이 홀수)시키는 교호순번제, 여성후보 추천이 일정 비율 이상인 정당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시행 중이다.
페미 진영은 이것으로 부족하다며 지역구에도 여성강제할당을 시행하라고 요구한다.
국가혁명당(대표: 허경영)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여성후보 30퍼센트 이상을 추천해 여성추천보조금 8억4천여 만원을 받았다.
허경영 대표는 이를 두고 “우리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가는데 나라에서 왜 돈을 주는지 모르겠다”며 예산 가지고 장난하는 예라 지적했다.
출처: 유튜브 허경영강연 채널
할당제의 위헌성을 알아보기 위한 사고실험(思考實驗)
그렇다면 할당제가 왜 국민주권 원리를 침해하는 제도인지에 대해 간단한 사고실험을 통해 확인해보자.
우선 현행 공직선거법의 할당 조항을 지역구 선거에 적용하는 3가지 사고실험을 해보자.
사고실험1: 선거를 했다.
선거가 끝난 후 다수득표를 한 자가 남성일 경우는 빼고, 나머지 득표자 가운데 여성을 당선자를 결정한다는 소급적 법률이 제정된다면?
사고실험2: 본 선거 시작 전에 후보들에 대해 투표를 한다.
후보들은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다 하게 된다.
그러나 남성을 찍은 표는 결국 무효표로 다뤄진다는 의미의 법률이 사전에 제정되어 시행된다면?
사고실험3: 애초 남성은 입후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한다면?
1안부터 누구라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덜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2안도 소급입법인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만 다를 뿐, 오로지 성별을 이유로 남성은 뽑지 않는다는 점에서 1안과 같다.
2안도 국민주권 침해라는 면에서 1안과 똑같이 위헌적이다.
3안의 경우 애초 입후보를 못하게 함으로써 만일 해당 남성이 출마했다면 표를 얼마나 받았을지 결과를 아예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지역구 선거의 공천에서 남성 출마를 몇퍼센트 이하로 제약하는 것은 3안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2안의 경우 적어도 사전 선거운동과 여론조사 등을 통해 남성이 다수득표자가 되리라는 예견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3안은 2안의 예측상황이 공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출마 자체를 금지하는 제약을 추가한다.
추가 제약을 더했으므로 2안보다 더 강제적인 법안이 되는 것이다.
권리의 침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침해의 사실조차 제도적으로 모르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는 더 불의한 침해에 해당한다.
할당제는 위 1,2,3안이 가진 문제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이 세가지 안 모두 국민주권 원리를 위반하기 때문에 어떤 안이 덜 제약적이고 덜 침해하는 것이냐 하는 논의는 사실 무의미하다.
비례대표 후보 선거에 위의 사고실험을 대입해 보자
현행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보자.
유권자들은 정당에 투표를 한다.
각 정당은 당내 민주주의에 의해 후보목록을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당내 민주주의라는 의미는 해당 정당이 어떤 식으로 후보를 결정하든 문제삼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당은 유권자와 입법기관을 연결하는 정치적 중개체로서 사적인 결사체가 아닌 특수한 조직이다.
후보목록을 정하는 과정 자체가 정당의 틀 안에서 행사하는 국민주권 행사의 방편이며, 정당은 국민의사를 결집하고 형성해서 민주적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현행 비례대표 할당제 또한 왜 위헌적인지 사고실험을 대입해 보자.
사고실험1: 당내 경선으로 선거를 마친 후 소급입법으로 60퍼센트를 넘어선 당선자 남성은 탈락시킨다면?
사고실험2: 소급적용 하지 않고 기표는 다 할 수 있는데 남성 후보의 득표는 사표가 되도록 한다면?
사고실험3: 남성은 아예 입후보를 못하도록 한다면?
이 세가지 안 모두 당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권한에 대한 침해라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다.
현행 비례대표 선거는 홀수 번호에 아예 남성은 입후보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절반은 여성에게 강제 할당된다.
아무리 최고득표를 해도 남성은 1번 자리를 받을 수 없다.
만일 1명만 당선이 예상되는 정당의 경우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로 다수득표를 하고도 당선이 되지 못한다.
훨씬 더 많은 득표를 한 남성들 많은 수가 떨어지는 대신, 그보다 적은 득표를 한 여성이 우선해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소속 정당의 이념을 견지하면서 의정활동을 잘 할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투표했더라면 누가 당선됐을지 결과를 아예 모르도록 제약을 추가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제약을 어떤 정당이 스스로의 당규에 의해 실행한다면 이는 국민주권주의의 침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어떠한 정당이 성별을 이유로 능력 있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정책을 채택한다면 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국민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은 정강정책으로 경쟁하고 국민들의 선택을 통해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주권주의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차별적 제도가 정당의 정책으로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할당제의 폐해: 정의당의 사례를 보자
정의당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내 경선 19위와 21위를 차지한 후보가 비례대표 1번과 2번에 배치돼 당선됐다.
당원이 아닌 유권자는 정의당의 후보 가운데 예선에서 상위권에 당선된, 할당제가 없었다면 다수득표로 정당하게 후보가 되었을 정치인을 아예 알지 못한다.
당원인 국민조차도 정당하게 선출되었을 후보의 정치적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
또한 남성 정치인은 성별이라는 요인 때문에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비례할당제는 여성 50퍼센트 배당, 홀수번호 배정, 가점 부여 등의 조치로 정당한 후보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평등의 원리를 부인한다.
국민주권 원리의 심대한 부인을 그냥 가려놓은 조치인 것이다.
지역구에 40퍼센트 이상 여성 후보 강제 할당을 하는 정책 또한 입후보 단계에서 남성의 도전 기회를 제약한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지원조차 못한 사람은 결과로는 안 보이는 것과 같다.
지역구 강제 할당제는 이런 폐해를 법률로 만들어 국회의원 선출 전체에 적용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경선결과
정치적 직위의 할당제는 관용이 아닌 더 엄격하게 보아야 할 영역
사람들이 정치는 특수한 영역이라 생각해서 할당제를 관용적으로 본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공직이나 정치는 상징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징성을 관철하려면 국민주권 원리에 따른 대표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는 제도가 할당제이다.
3천표를 받은 남자후보와 5백표를 받은 여자후보가 있는데, 여성을 우대한다는 원칙에 따라 지역구 당선자는 여성이라고 정한다면 이는 국민주권 원리의 침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의사가 명확하게 드러났음에도 이를 왜곡하면서 대의제라 주장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의권력의 부당한 전횡이다.
선거로 의사를 결집하는 게 대표성이지,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자신들이 대표성이라고 생각한 패턴을 공직 분포에 부과하는 것은 대표성이 아니다.
여성의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주장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페미 진영의 요구를 정치권은 철학이나 논리 없이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도 문제의식 없이 합헌 판결을 내린다.
거대 정당들이 이 문제를 아무런 헌법적 숙고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이라는 국가기관이 아닌 매개체 조직이 국민주권 원리를 제약하고, 왜곡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할당제의 문제를 제기하며 폐지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여성혐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페미 진영은 할당제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이므로 불공정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선 전제한 불평등이 무엇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여성이 공직에 적은 이유가 어떤 차별 때문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할당제를 시행했더니 불평등이 해결되었는가?
총선과 지방선거에 여성할당제를 도입한 지 20년이 넘었다.
각 정당의 선출직, 임명직 임원 지명 등에 여성은 할당을 통해 자리를 보장받는다.
이처럼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우대해도 진출이 저조하다면 정치가 여성에게 덜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 분석이다.
앞서 말했듯 적극적 우대조치가 제정 당시 명분을 일부 가졌던 것은 ‘한시적’이라는 조건부 시행이었기 때문이다.
차별임을 인정하면서도 한시적으로 하자는 사회적 합의로 시행된 것이지 차별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효 없이 시행하다 보니 이제는 강제할당 주장까지 나온다.
입법으로 시한을 명시하지도 않는다.
페미 진영은 여성의 비율이 적은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없다.
무조건 남녀동수, 40퍼센트 보장 등을 주장하며 입법으로 강제하려 하고, 여성의 진출을 위해 자격이 있는 남성들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는 논리가 없다.
여성이 절반이므로 여성의원도 절반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가 아니다.
그런 식의 배분 논리라면 세대별, 지역별, 직업별 대표성 또한 모두 비례해서 배분해야 한다는 논리도 부정할 수 없다.
합리적인 논증없이 무조건 남녀동수가 민주주의라는 페미 진영의 주장(출처: 여성단체연합)
억압적 문화로 인한 구조적 차별이라는 주장에 대해
페미 진영은 제도적 차별이 없으니 문화적 억압을 내세워 구조적 차별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문화적 억압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막연해서 개선되어야 할 구체적 지점을 명확히 특정하고 집어내지 못한다.
그저 여성할당제를 수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텅 빈 개념에 불과하다.
페미 진영의 이러한 논리는 여성이 정치영역에 관심이 없거나,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하지 않거나, 선출직 공무원에 입후보하지 않는 상황을 곧 억압에 따른 결과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본인이 선출직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지 않거나 이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부당한 억압 때문이라는 결론을 곧바로 도출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 여성들의 정치영역 진출을 막는 법제도적인 장애는 없다.
만일 사실적 장애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모두에게 보장되는 권리를 여성은 협박이나 공공연한 압력의 행사로 인해 제약 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한 협박이나 위해요소가 없다면 이는 선택의 영역이다.
여성이 정치영역에 진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기질과 여건에 따라 선택한 행위들의 집합적 결과라 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페미 진영은 자신들이 미리 설정한 비율에 맞지 않는 것은 곧 억압에 따른 구조적 차별이라 주장한다.
지금 선출직 공무원에 진출한 숫자는 남성의 경우도 국민 중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민들은 모두 억압받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가? 페미 진영은 사실적 장애나 입증이 가능한 질곡이 있다면 이를 정확하게 특정해서 지적하는 합리적인 발언 법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여성 정치인이 적어서 여성들이 불행한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몇 개 던져보자.
여성들이 정치에 진출하는 데에 소극적인 문화가 여성을 불행하게 하는가? 페미 진영의 논리에 따르면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정치에 진출하지 못한 여성들은 그러한 차별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차별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해서 불행을 못느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개인들에게 오히려 불행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타인이 느끼지 않는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대리할 수는 없다.
다음 질문.
정치영역에 도전하지 않는 여성들의 선택은 모두 비자발적인 것이며 억압의 산물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러한 선택 또한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자발적인 삶의 형태라는 사실, 즉 여성의 주체성이 부인되어서는 안된다.
남성 안에서도 정치에 진출하는 남성은 소수이며 기업의 고위 임원 또한 소수다.
이들은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영역을 선택하고 도전해 경쟁한 결과 이뤄낸 정당한 성취이다.
노력 없이 특혜를 통해 어떠한 자리에 오른 사례는 남녀 모두 똑같이 존재한다.
나경원이라는 중진에 계급적 금수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는 것, 남인순이라는 중진의원이 여성이라는 기득권 프리미엄으로 청년남성 도전자와 경쟁 없이 단수공천을 받는 것, 정의당에서 당원 득표 약 500명, 300명으로 총 순위 19위, 21위를 기록한 류호정, 장혜영과 같은 여성청년이 2천표 넘게 받은 남성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이 되는 대표성의 왜곡이 할당제의 현실이다.
이렇게 선출된 대표에게 어떤 정당성이 부여되겠는가? 할당제는 끝없이 자질 논란과 불공정 시비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제도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들에 우선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할당제가 국민주권 원리를 위반하는 위헌적인 제도라는 사실이다.
할당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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