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대 방종이라는 세뇌된 이분법(1): 강남 비키니 라이딩 처벌사례

이선옥 승인 2022.09.25 21:40 의견 0
  강남의 대로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오토바이 뒤에 타 화제가 된 여성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과다노출죄로 여성을 입건하고 경범죄 위반혐의를 조사했다고 한다.

해당 여성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경찰에 출석할 때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겠다고 하였고, 실제 실행했다.

여기에 더해 2차 라이딩까지 예고하며, 만일 경범죄 위반으로 처벌받는다면 정식재판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녀는 여성의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시대의 억압처럼 경직된 사회에 해방감을 표출하는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인터뷰] ‘강남 비키니녀’ 임그린 “60년대 미니스커트처럼 해방감 표출”) 이 퍼포먼스를 기획한 기획자의 입장 또한 같다.([인터뷰] ‘오토바이 비키니녀’ 기획자 “좀 더 자유롭게 삽시다”) "좀 더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성인들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며 이를 깨트리는 파격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억압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자유가 뭔지 느끼기 어렵다"는 의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필자는 리얼돌 규제를 반대하는 글([시리즈]리얼돌 규제 주장의 문제점들3): 자유의 감각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한국사회가 자유의 감각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썼다.

규제와 처벌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행동이 시민적 권리에 해당하는 자유인지를 시민들 스스로 사고하도록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비키니 라이딩 사태에서 보인 경찰의 태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 경찰이 이 여성을 처벌하려는 이유는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경범죄 위반 사안들과 달리 이 여성이 우연히 대중의 관심을 받아 주목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 연합뉴스   여론이 주목하는 사안이 되면 국가기관들은 일단 처벌하고 규제해 공권력이 사회질서유지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쪽으로 행동한다. 이 사안이 공권력이 개입해야 할 권리의 침해가 있는지에 대한 숙고보다 자신들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 여론의 지탄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이 우선한다. 시민의 본질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하는 의무는 발동되지 않는다.

공권력이 이러한 기준으로 행위를 결정하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탈행위에서 처벌을 가르는 기준은 우연히 대중적 관심을 얻었는가 아닌가가 된다. <경범죄 처벌법> 33조 과다노출 조항은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ㆍ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을 처벌한다고 하고 있다. 이 조항은 그러나 장소를 특정하여 규제하지 않는다.

즉 해수욕장에서는 비키니를 입어도 되고, 길에서는 금지한다는 장소성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강남의 도로에서 비키니가 금지된다면 해수욕장의 비키니도 처벌되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해수욕장을 벗어난 도로나 수영장 인근에서의 비키니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경범죄 처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공공의 질서유지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그러나 경찰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보다는 질서유지에 방점을 둔다.

어떠한 복장을 할 것인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이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다.

비키니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탔다고 해서 누구의 어떤 권리가 침해되었는가? 속도규정을 준수한 오토바이 탑승행위가 어떠한 공공질서를 위반하는가?   경찰출두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임그린씨(출처: 플레이조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일탈적으로 여겨지는 행위가 늘상 존재한다.

일탈적이라는 기준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위 인터뷰에서 임그린씨가 말했듯 미니스커트가 규제를 받던 시절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특이하고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한 여성과 남성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이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은 매우 낮다. 노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한 예능 프로그램은 신체의 주요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여성과 남성들이 자신의 몸을 뽐내며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내용으로 방송된다.

이들의 신체는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된다.

해수욕장의 비키니 차림 또한 아이를 포함한 가족단위 이용객들에게 무작위로 노출된다. 이 조항의 요지는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다는 판단에 있다.

불쾌감이나 부끄러운 느낌은 그 자체로 모호하고 감정에 기반한 것이라 결국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는 공권력의 태도에 달려있다.

즉 한 국가의 공권력이 처벌과 규제를 통한 질서유지에 방점을 찍는가, 자유와 권리의 보호에 방점을 찍는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지향에 따른 불쾌감이나 수치심은 다 다르다.

또한 그 정도도 천차만별이므로 계량도 불가능하다. 대다수 사람에게 아무런 불쾌감을 주지 않지만 일부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는 사례와, 대다수 사람들이 불쾌해 하지만 일부 사람은 전혀 불쾌하지 않은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공권력은 '불쾌감을 가진 사람의 존재'가 다수든 소수든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두 상황을 모두 처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쾌감은 그 행위가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은 경우에도 처벌의 만능사유로 작동하여 공권력의 자의적 도구로 활용된다.

강남 대로에서 비키니를 입고 오토바이 뒤에 탔다고 해서 국가가 처벌을 한다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며 미니스커트를 규제하던 시대와 같은 후진적인 행위이다. 한 편으로는 이 사안에 대해 시민적 권리와 공권력의 억압이라는 측면보다, 자본주의적 방종행위가 자유라는 고귀한 개념을 참칭하는 데 대한 문제를 더 본질적으로 여기는 견해가 있다.

이는 자유와 방종이라는 세뇌된 이분법에 기반해 있다.(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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