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2: 필요한 이야기를 안하는 언론

이선옥닷컴은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기사의 문장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는 ‘문해력’(literacy)을 넘어, 언론의 보도태도와 기사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시리즈입니다. (편집자 주) 

 

청와대의 몰카수사 브리핑 발표
받아쓰기 하는 언론
이 사안에서 필요한 이야기는?

 

지난 7월 3일 청와대는 홍대 몰카 사건이 편파수사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국무회의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의 ‘성희롱·성폭력 방지 보완 대책’을 보고받은 뒤 문대통령이 한 말이다. 청와대는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날 국무회의 발언들을 전했다.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다. 처음에는 홍대 몰카 사건이 편파수사가 아니라는 대목을 강조하다가, 여성들이 가진 문제의식을 제대로 파악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몰카범에 대해서는 현재보다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 점을 강조했다.

 

몰카범죄 관련 청와대 국무회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들

 

기사들은 ‘편파수사가 아니라는 발언’, ‘현재보다 처벌 강화 주문’, ‘성별갈등 격화 우려’등 청와대의 발언을 골자로 보도했다.

‘한국일보’와, 언론이라 하기 모호한 ‘인사이트’의 제목만 좀 달랐다. 한국일보는 “문 대통령 성범죄 가해자에 강력대응 지시, “직장에 즉각 통보””, 인사이트는 “문재인, 성범죄자 직장에 즉각 통보해 가해 이상의 불이익 줘야”라고 썼다. 본문은 제목에 언급한 대목을 특화한 내용은 없이 대동소이하다.

 

 

직장에 통보한다는 대목을 강조한 한국일보와 인사이트의 기사

 

특별한 논평이 필요한 발언이 아니어서 였을까?

 

이 날 발표 내용에 대해 분석적으로 논평한 매체는 아직 없다. 문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여성학자의 페이스북 글을 기사로 다룬 국민일보의 보도가 한 건, 몇몇 커뮤니티 유저들의 반응을 보도한 중앙일보의 기사 한 건이 후속보도로 나온 정도다.

특별한 논평이 필요한 발언이 아니어서 였을까? 매체들 모두 문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기 때문일까?

홍대 몰카 사건이 편파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사건 초기부터 많이 얘기되었다. 경찰의 발표처럼 용의자를 특정하기 쉬운 상황이었고,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걸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억지스러운 주장이라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정부는 왜곡된 근거로 생긴 국민들의 과장된 공포를 해소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가진 불안과 분노를 헤아려야 한다는 문대통령의 주문은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발언이다. 다만 그 다음 구체적인 조치를 강조한 대목은 위험하다. 청와대가 이를 여과 없이 전한 사실도 우려스럽다.

 

한국은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법치를 지탱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번 국무회의 내용에는 “사건이 발생한 초동단계부터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다루어나가는, 그리고 피해자는 특별히 보호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수사가 되면 해당 직장이라든지 소속기관에 즉각 통보해서 가해를 가한 것 이상의 불이익이 가해자에게 반드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이 포함되었다.

이 발언대로 정부의 후속조치가 이어진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
행정부의 월권과 포퓰리즘의 우려

 

한국은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반드시 법률로 정한 조항이 있어야 한다. 현행 법률로 정해진 양형 이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행정부의 수반이 직권으로 승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법치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인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법률에 의해 최종판단을 받기 전 직장과 소속기관에 통보하고, 가해 이상의 불이익을 받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불공정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로 적절하지 못하다. 또 다른 불공정에 대한 신호로 읽힐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하는 언론이 없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성별갈등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집행하는 국가기관들이 먼저 공정함을 지켜야 한다. 우세한 여론에 따라 그때그때 자의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신호를 준다면 신뢰 받기 어렵다.

지금보다 엄격한 법률이 필요하다면 입법부인 국회에 요청을 하거나, 행정부의 권한 안에서 가능한 대책을 발표하거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든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대로 일관된 대응을 하는 게 법치를 표방한 국가의 의무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인식에서 공정함을 획득하지 못하는 한 정부의 바람과 달리 성별갈등은 해소되기 어렵다.

몰카범죄는 피해 여성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정부도 명예훼손 하나만 가지고도 언론사가 문을 닫을 정도로 엄중한 벌을 받는 외국의 사례를 강조하면서, 피해자를 또 한 번 가해하는 언론의 선정보도를 비판했다.

 

공정한 처벌과 피해여성의 보호는 양립할 수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다만 명예훼손이 그토록 엄중하게 다루어져야할 문제임을 인식한다면, 수사가 개시된 단계에서부터 범죄자로 규정되어, 소속기관과 직장에 통보되는 ‘현재 무죄인 자’의 명예 또한 똑같이 엄중한 문제로 취급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으로 보장된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법 앞에 평등하다. 

공정한 처벌과 피해여성의 보호는 양립할 수 있다.

편파성을 해결하겠다는 방안이 다른 구성원의 권리를 위협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원한이 쌓이게 된다.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해야 할 원칙은 불편부당함과 공정함이다. 그것이 사회적 지지와 승인 속에서 결국 약자를 효율적으로 보호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이번 발표가 포함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분석적 비평을 하는 언론이 없다는 게 실망이다. 몰카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관심과 빈도에 비해, 그 사건들이 왜 문제이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부족해 보인다.

언론의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는 사회구성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이다. 선의에서 나온 발언이라 해도 그 주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가일 때, 바로 그 선의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 문제를 제기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그 고민이 함께 할 때 그간 몰카 사건을 열심히 보도한 이유가 선정성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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