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의도를 가진 전체주의적 사고의 위험

이선옥 승인 2021.12.06 03:32 의견 0

  "인권을 다같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한 말이다.

선정적으로 들리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N번방 사태가 일어나고 미성년 여성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들을 접한 후 그녀는 동료시민을 향해 인권을 포기하자는 다소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한테 사찰을 당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시민의 권리를 양보하자는 주장이다. 그녀가 여기에서 말한 인권 침해는 표현의 자유 침해, 국민 개인에 대한 국가의 사찰과 감시 허용이다.

수사기관이 언제든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는 온라인 공간을 사찰할 수 있고, 자유롭게 함정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함정수사는 위법성 논란이 있는 수사방법이다.

사안에 따라 위법 여부가 갈리고 늘 인권침해 논란도 따른다.

수사기관들은 범죄를 적극적으로 소탕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해명하지만, 연루된 당사자들은 국가기관의 기본권과 인권침해 피해를 호소한다. 함정수사 뿐 아니라 국민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은 국가권력과 시민 개인 사이에 언제나 긴장의 최전선인 영역이다.

이수정 교수가 수많은 범죄피해 현장을 경험하면서 내린 (일부)인권 포기라는 결론은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해도 매우 신중히 발언해야 할 주장이다. 어떤 공권력이든 범죄의 억지와 안전의 확보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내세운다.

이러한 명분을 앞세운 공권력과, 약자 보호라는 선량한 의도에서 나온 시민들의 전체주의적 요구가 만날때,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손쉽게 위협당한다.

이수정 교수는 악인을 처벌하기 위해 우리 모두 인권을 조금 포기하자고 하지만 개별 악인의 응징을 위해 모두의 권리를 내어주자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수정 교수의 논리는 사실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다.

언제나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면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는가?", "피해자 인권보다 가해자 인권이 중요한가?" "더 강한 처벌, 현행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형을 때려야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옳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쓰든 정당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하지만 이 원칙은 곧잘 잊는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원칙’을 견지하는 일은 어렵다.

선한 목적은 구체적인 절실함과 늘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에 대한 잔혹한 성범죄 사례 앞에서 이수정 교수와 같은 견해는 쉽게 지지를 얻는다.

그럴 때마다 국가기관들은 여론을 명분으로 국가의 처벌권이나 국민에 대한 통제와 규제를 강화한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도 멈추고, 교도소 앞에서도 멈추고, 거역할 수 없는 사례들 앞에서도 멈춘다.

무죄추정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 우선인 원칙들은 악한 권력이 아니라 이처럼 선한 의지들 때문에 위협받기도 한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엄중하게 규제한다.

국가는 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같은 중차대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오직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이 헌법 원칙은 특정한 시기에 다수의 복리를 위한 요구가 거세질 때 사람들의 기본적 지위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지, 그저 명목상 국민의 지위를 확인하는 조항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는지, 두려움을 조장해서 통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존재로 보는지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비상상황일수록 헌법 원칙의 준수가 필요하다.

이 원칙이야말로 인류가 전쟁·재난·범죄·역병과 같은 수많은 ‘비상상황’을 거치면서 확립한 궁극의 보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자의적으로 법을 변형하고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특히 성범죄 영역에서 자주 일어난다.

거역할 수 없는 사례들 앞에서 자유의 견해는 위축되고, 특히 페미니스트 진영은 약자에 대한 동료시민들의 선의에 기대 초법적이며 위헌적인 요구들을 관철한다.

선량한 얼굴을 한 전체주의적 사고의 위험성을 늘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국민에 대한 처벌과 규제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먼저 국가 자신이 법적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 자격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지 않고, 시민들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공정성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과 같은 헌법, 형사법,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사적 제재와 야만적인 폭압기구의 지배를 경험한 후 인류가 합의에 도달한 소중한 원칙들이다.

또한 형사재판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 힘없는 개인 간의 문제다.

처벌이 아니라 약한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모든 국민은 자유를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 평등하다.

근대 문명국가를 지탱하는 단순한 원리를 우리는 온갖 말과 주장의 현혹 속에 자주 잊는다.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국가와 개인이라는 권력 관계를 고찰하면서,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정치인이 간절하다. 우리를 지켜온 힘은 폭력행사권한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국가라는 권력에 대해, 그리고 동료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우리 안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대해, 늘 경계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온 시민들의 견고한 권리의식이었다.  

우리 모두 인권을 포기해야 한다 / 이수정 교수가 말하는 범죄영화 그리고 N번방: 영상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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