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서 불행했고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정당

이선옥 승인 2024.04.09 00:44 | 최종 수정 2024.04.16 15:10 의견 0

길을 걷다가 정의당 어느 지역구 후보의 유세차와 마주쳤다. 운동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이동하는 유세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중이었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가 되어야 모두가 안전해집니다. 여성이 안전해야 아이도 안전하고 노인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 저희 정의당이 만들겠습니다. 저희 정의당 000후보가 만들겠습니다!"

정의당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며 엎드린 심상정 전대표.(출처: 연합뉴스)
정의당의 총선후보와 대표단이 광화문에서 사죄의 절을 올리고 있다.(출처: 뉴스1)

정의당을 지지해달라는 심상정 전대표(출처: 뉴스1)


정의당이 광화문에서 큰절 올리며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며 빌게 만든 게 바로 저런 생각과 말 때문인데, 여전히 이를 반복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의 위 연설은 그들의 논리가 어떻게 틀렸고, 왜 오늘날 정의당을 망하게 했는가 알 수 있게 한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모두가 안전한 사회'라는 정의당류 페미니스트 집단의 주장은 틀렸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라고 해서 모두가 안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라는 페미니스트 집단의 요구에 응해 만들어진 정책들을 보자.

▶여성1인가구 방범장치 지원
▶여성안심주택
▶여성안심귀가 서비스
▶여성안심택배
▶여성안심전화
▶여성안전앱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이 대표적인 여성안전 정책들이다. 이 외에도 지자체별로 여러 형태의 여성안전 정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정책들이 시행되어서 노인과 아이들의 안전이 함께 보장되었는가?

여성1인가구 방범장치 지원에 아동과 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여성안심주택 입주에 아동과 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여성안심귀가 도우미는 젊은여성의 귀가길을 보호해주며, 여성안심택배 서비스, 여성1인 점포 비상벨 지원 사업은 여성에게만 해당된다.

그런데 지자체와 정부기관들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특혜적 서비스의 불공정함을 지적하면 실상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는 서비스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대부분 서비스는 이름 자체에 '여성'이나 '여성안전'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시민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며, 여성안심주택과 같은 가장 큰 주거혜택의 수혜자는 오직 여성이다.

이러한 정부기관들의 정책이 생겨난 이유는 정의당과 같은 페미니스트 집단이 '여성은 약자이며, 안전에 가장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만을 위한 안전대책 요구는 당연한 권리이자 정부의 의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력범죄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통계적 근거(이 통계근거에는 왜곡이 있다: '강력흉악범죄 피해 84퍼센트가 여성'이라는 통계의 진실(링크)' 여성들의 공포를 내세워 이러한 정책들을 관철시켜왔다.

여성들이 안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경로는 다양하다. 그러나 무차별 살해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일어난 후 호신용품을 구매하고 불안에 떠는 것은 남성 시민 또한 마찬가지다.

생활의 영역에서 모든 시민은 보호가 필요하며, 이 가운데 특히 안전에 취약한 계층과 상황 또한 언제나 존재한다. 주거안전이 필요한 대상은 여성 뿐 아니라 독거노인, 조손가정, 장애인 가구 등 다양하다.

그러나 안전 대책을 중점적으로 마련한 여성안심주택에 입주할 자격은 젊은여성이지 노인과 아동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배타적 안전정책은 안전 취약계층을 모두 포함하지 않는다. '여성안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서비스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성이 안전한 사회여야 아이와 노인도 모두 안전하다'는 정의당류 페미니스트 집단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취약한 상황과 계층'에게 배정되어야할 사회의 분배체계를 교란시켜 모든 시민의 안전을 공정하게 보장하는 경로를 왜곡할 수 있다.

당장 여성안심주택에 입주자격이 있는 근로소득이 있는 20대 여성의 경우를 보자. 이들이 무주택 독거노인이나 조손가정의 시민보다 더 안전취약계층인가?

그런데 페미니스트 집단의 논리 속에서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약자는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이며, 가장 범죄피해를 많이 당하는 것도 젊은 여성이고,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도 젊은 여성이라는, 현실과 다른 논리가 등장한다.

젊은 여성들이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현상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감정을 크게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안전에 가장 취약한 존재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정부는 안전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되 그 공포와 불안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과장된 공포와 불안은 제거해야 하는 의무 또한 있다.

특정 집단이 아닌 '취약성' 그 자체가 해결과제가 되어야 분배체계가 왜곡되지 않는 법이다. 특정 집단만을 위한 제도설계는 필연적으로 사회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낳는다. 실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차별과 피해의식이 만들어져 결국 정책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공동체는 분열된다.

그러므로 정의당과 같은 불합리한 주장에 휘둘려 보상체계가 왜곡된 기존의 정책들은 재정비되어야 한다.

주거와 생활 영역 전반에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처하고, 안전에 더 취약한 대상에 대한 보호책을 마련해야 그 안에서 취약한 여성도 보호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지향하면 모든 여성의 안전 또한 지켜지지만, 여성만의 안전은 모든 여성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정의당은 페미니즘에 몰두해 모두가 안전해야 그 안에서 여성도 안전해진다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원칙을 무너뜨리는데 집중했다. 그결과 정의당 내부가 먼저 분열했고, 사회의 공정한 분배체계를 교란시킴으로써 성별 갈등을 조장하다 결국 스스로 멸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왜 망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여성안전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메갈리아 사태 이후의 정의당은 우리 사회에 많은 해악을 끼쳤다. 그 수년을 함께 해서 불행했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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