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노동 없이 여자의 삶이 가능할까?(feat: 카밀 파글리아)

이선옥 승인 2020.02.16 20:25 | 최종 수정 2023.12.28 21:02 의견 0

여자들만의 도시를 만들었다고 치자.

배관이 고장나 물이 새고, 건물이 갈라지고, 태풍에 유리창이 깨질 때, 쓰레기가 쌓이고, 통신이 말썽을 부리고, 강도가 침입해 여성을 위협할 때, 여성들만의 힘으로 해결이 가능할까?

여자들만의 도시를 만들어서 우리끼리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페미니스트가 늘었다. 특히 성범죄에 대한 공포와 남성혐오가 깊어진 젊은 여성들이 그런 바람을 피력한다. 성별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예전에도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만의 공동체를 꿈꿨다. 그러나 성범죄에 대한 공포나 극단적 분리주의 성격보다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자유로운 해방구를 꿈꾸는 차원의 바람이었다. 폐쇄적인 안전구역을 지향하는 지금의 여성전용 개념과는 다르다.

여자들만의 도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녀들에게 묻고 싶다. 시멘트를 만들고, 콘크리트로 건물을 쌓고, 벽돌을 나르는 노가다를 하고, 용접과 배관작업 등의 건설노동은 직접 할 것인지. 당신들이 혐오하는 남성들의 노동 없이는 이 세상은 하루도 굴러갈 수 없음을 알고는 있는지.

여성들도 힘든일에 종사한다, 맞다. 그러나 우리 삶의 물적 토대가 되는 영역에는 압도적으로 남성들이 노동한다. 당신들이 지금 도시의 사무실에서, 자신의 원룸에서, 편리한 통신시설을 이용해 여성도시를 꿈꾸는 글을 쓸 수 있는 기반도 남성들의 노동 덕이다. 당신은 인터넷이 고장나면 하루도 참기 어렵다. 트위터를 하루라도 하지 못하면 금단증상이 일어난다. 이를 해결해주는 노동 역시 남성의 몫이다.

여성전용 도시를 만들었다고 치자.

배관이 고장나 물이 새고, 건물이 갈라지고, 태풍에 유리창이 깨질 때, 쓰레기가 쌓이고, 통신이 말썽을 부리고, 강도가 침입해 여성을 위협할 때, 여성들만의 힘으로 해결이 가능할까? 도시를 만들어서 여성들만 입주해서 산다 한들 남성들의 노동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그렇다면 매우 간단한 사실이 남는다. 여성들의 도시를 만들려면 남성의 노동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므로 남성의 노동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급식조리실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병든 노인들을 간호하고, 성희롱에 시달리며 감정노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감사와 연민을 느끼듯 같은 취급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감사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존중은 필수다. 페미니스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카밀 파글리아(Camille Paglia) 교수는 이런 페미니스트에게 일침을 가한다.

"정말이지 자신들의 직장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사회기반시설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남자들 또한 보이지 않겠지만, 남자들은 지금 당장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더럽고, 위험한 길을 닦는 일, 콘크리트를 붓고 벽돌을 쌓는 일, 지붕에 타르를 입히고 전선을 연결하고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하수관을 설치하고, 나무를 자르고 정돈하는 일, 주택개발을 위해 땅을 개간하는 일 등은 압도적으로 남자들의 일이다. 우리가 있는 사무실 건물의 골격이 되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들어 올리고 용접하는 것, 50층 높이의 고층건물에 넣을 판유리를 제작하고 끼워 넣는 머리가 쭈뼛해지는 그런 일들도 남자들이 한다.

매일 필라델피아의 델라웨어 강을 따라서, 거대한 유조선과 화물이 쌓여있는 화물선들이 세계 곳곳으로부터 도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위풍당당하고 거대한 물건들은 남자들이 싣고 조종하고 내린다. 엄청난 생산과 분배의 체계 속에서 현대 경제는 남자들의 대 서사시이고, 그 속에서 여성도 생산적인 역할을 감당하지만 여자들이 이 서사시의 저자는 아니다. 분명히, 현대 여성들은 이제 마땅히 공로를 돌려야할 사람들에게 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

여성도시 건설 주장에 대해 한 남성이 유머러스하게 대꾸의 말을 달았다.

"나는 환영한다. 여성전용 도시건설에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할 의사도 있다. 단 그녀들은 영원히 거기서 나오지 않아야 한다." 웃픈 장면이다.


**카밀 파글리아는 미국의 페미니스트인데 국내에는 번역서가 거의 없어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도 블로그의 글 하나 발견해서 읽었고, 영상이 짧은 게 있네요.

20세기 세계의 지식인 20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무척 흥미로운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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