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순 의원 발의 낙태법 개정안의 핵심내용

1. 공식 법적용어 변경: 낙태와 임신중절 '임신중지' 로
2. 임신 전기간(평균 40주) 동안 사유 제한 없이 낙태 허용
3. 낙태시술 약물 허용
4. 낙태시술 약물과 낙태 수술에 보험급여 제공

2019년 이후 입법공백 상태였던 낙태관련 대체법안이 발의됐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이수진ㆍ서미화ㆍ전진숙ㆍ조계원ㆍ박주민ㆍ최혁진ㆍ김 윤ㆍ이재정ㆍ전종덕ㆍ손 솔 등 11명은 2025년 7월 11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핵심 내용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용어사용 변경: 공식 법적용어를 낙태와 임신중절이 아닌 '임신중지' 로
2. 낙태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금지: 임신 전기간(평균 40주) 동안, 여성 본인의 의사로만, 여하한 사유에 관계없이 전면적 낙태 허용
3. 그간 금지되었던 낙태시술 약물 허용
4. 낙태시술 약물과 낙태 수술에 보험급여 제공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남인순 의원의 법안은 헌법재판소가 입법부에 권고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을 균형있게 다루는 새 법안을 만들라'는 결정에서 여성의 결정권만을 존중한 면에서 균형을 잃은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낙태자유 국가가 될 예정이다.

남인순 의원은 여성단체 대표 출신 정치인이며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자신이 속한 이데올로기 집단의 숙원사업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법안내용이다. 낙태에 대한 처벌 금지를 넘어 전면적인 허용은 페미니스트 진영의 오랜 요구였다. 박주민 의원은 24주 이내까지 허용하는 주수 제한 입법시도를 했다가 페미니스트 의원들의 반발로 철회한 바 있는데, 이번에 주수 제한이 없는 남인순 의원안에 동참했다.

남인순의원의 낙태법 발의. 낙태와 중절 대신 법적 용어를 임신중지로 바꿨다.


낙태법 공백상태에 대해 입법부와 정부는 책임을 방기한 면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6년동안 대체입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별 의원들이 발의안 법안이나 정부안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남인순 의원의 법안도 통과여부는 알 수 없으나, 다수를 차지한 여당의원들이 결심하고 페미니스트 진영이 압박한다면 통과도 가능한 상황이다.

낙태는 단순한 하나의 법안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여성운동계가 포함된 진보진영은 낙태에 대한 전면적 허용(Pro-Choice)을 요구하고, 종교운동계가 포함된 보수진영은 이에 반대(Pro-Life)해왔다. 낙태 이슈는 평범한 여성들의 실제 삶에 연관된 문제로서 다뤄지기보다 여성운동의 힘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거나, 진보와 보수진영의 치열한 권력투쟁의 도구로 다뤄지는 느낌이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세계적인 상황도 낙태에 대한 전면적 금지국가는 소수이고, 대부분 부분 허용 법안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들도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 면에서 전면 금지와 처벌은 가혹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부분적 허용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여성계는 부분적 허용이 아닌 완전 허용을 요구한다.

현재 법적으로 주수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캐나다가 유일하다. 정확하게는 낙태와 관련한 법조항이 없으므로 법적 제한이 없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진영은 금지법이 없어도 낙태율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례로 캐나다를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어떠한 법이든 해당 사회의 관련제도와 질서, 문화와 관습에 따라 적용되는 방식이 다르므로 캐나다의 사례가 우리의 대안이거나 정답일 수는 없다.

우리사회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왜 낙태가 아닌 임신중지인가?

페미니스트 진영이 바꾸라고 강요하는 용어는 많다. 낙태를 '임신중지' 또는 '임신중단'으로 부르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낙태법 관련 기사들을 보면 언론은 낙태가 아닌 임신중단이라는 용어를 쓰는 중이다. 아래 2022년도의 기사를 보면 한국일보와 SBS는 이미 기사 제목에 낙태가 아닌 임신중단이라 썼다. 헝가리에서 공식적으로 임신중단이라 부르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법조항도 낙태죄이지만, 페미 진영이 낙태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요구한 후 상당수 언론과 정당, 기관들이 이미 이를 받아들인 상태다.

남인순의원의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도 첫머리부터 용어변경에 주력한다.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모자보건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2조제7호 중 ““인공임신중절수술”이란”을 ““인공임신중지”란”으로,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를 “약물이나 수술 등 의학적인 방법으로”로, “배출시키는 수술을”을 “배출시켜 임신을 중지하는 행위를”로 한다.

제12조의 제목 중 “인공임신중절”을 “인공임신중지”로 하고, 같은 조 제1항 중 “인공임신중절”을 “인공임신중지”로 한다.

페미 진영이 낙태 대신 임신중지로 바꾸라고 하는 이유는 낙태라는 용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 즉 생명을 인위적으로 죽였다는 부정적 행위의 주체가 여성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부정적 의미의 용어들을 바꾸는 것은 페미 진영에서 주력하는 일 중 하나다. 성평등 언어 제작, 성차별 용어의 변경들이 그러한 목적에서 벌이는 일이다. 출산을 출생으로 바꿔 출산율을 써야 할 자리에 출생률을 쓰고 있는 기이한 상황이나, 낙태를 임신중지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시댁을 시가로 바꾸는 캠페인들이 그 예다.

그런데 임신중단은 낙태라는 의미를 대체할 수 있는가? 무엇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 상태에서 멈추도록 한 상태를 말하지 다음단계로 넘어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임신이 중단됐다면 임신상태에서 중단이 된것이지 태아를 유산시킨 최종 행위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낙태란 태아를 떨어트리는것, 즉 태아를 모체와 분리해 사망시키는 조치를 뜻한다. 법상으로는 자연유산이 아닌 인위적인 유산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에 형법상 낙태의 죄로 처벌을 받았다.

임신중지도 마찬가지다. 임신을 중지하려면 성행위를 중지하거나 피임을 해야하는 것이지, 임신 자체가 중지된다는 말은 낙태행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페미 진영이 목표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낙태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려는 게 아니라 낙태라는 개념을 바꾸는 게 목표다.

태아를 인위적으로 사망하게 했다는 행위가 가진 부정적 의미와 책임에서 여성을 자유롭게 하려면 용어에서 행위자를 사라지게 해야한다. 낙태는 태아를 인위적으로 사망시키는 것이고 그 조치는 모(母)인 여성이 하기 때문에, 인위적 노력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 자체를 가리키는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것이다. 출산을 출생으로 바꾸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남인순 의원은 이러한 페미 진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낙태와 임신중절이라는 용어들을 법문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낙태 대신 임신중지로 부르는게 어떤 차이와 의미가 있는지 관심이 없지만 이데올로기 집단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태아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존중이 없는 법안

남인순 의원의 법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했던 기존 형법조항이 태아의 생명을 지켜야하는 법익에 합치한다고 보았다. 다만 여성의 결정권이 과도하게 제한되는 면이 있으니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법안을 새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인순 의원의 법안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고려한 내용은 없다. 기존의 모자보건법에서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조항들을 삭제하고, 태아가 모체 밖에서도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는 낙태를 금지했던 주수 제한도 삭제했다. 주수 제한과 사유 제한을 전면적으로 없애고 오직 여성의 결정권만을 충족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신체기관이 자리를 잡고 모체와 분리돼도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 주수에 이른 태아도 여성이 원한다면 사유제한 없이 낙태가 가능한다.

남인순 의원과 발의자들은 왜 이처럼 급진적이고 편향적인 법안을 원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페미니즘에 따르면 여성들이 생산권, 결정권, 안전권, 독립권, 생명권, 자율권 등을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제도는 부당하고 불의한 것이다. 그러한 권리가 다른 헌법적 권리와 충돌될 때면 언제나 여성의 권리가 모든 권리에 우선한다. 여성은 약자이고 억압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억압에 관계된 제도를 철폐하는 일은 이들에게 언제나 정당하다.

페미 진영은 두 가지 고질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낙태 사안에서도 이는 반복된다. 첫째, 이들은 여성이 원하는 모든 것을 권리라 여기고 이의 실현은 모두 옳다고 주장할 뿐 왜 그 권리가 왜 정당한지 논증하지 않는다. 둘째, 다른 구성원의 권리와 충돌할 때 이를 조율하려는 노력이 없다. 오히려 조율의 노력을 여성억압으로 규정한다.

페미 진영이 권리를 논증하지 않는 문제는 낙태권 주장의 부조리함에서 잘 드러난다. 프로 라이프 진영은 페미니스트들이 생명을 경시한다고 비난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스트 진영은 다른 생명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에는 앞장선다.

낙태권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와 진보좌파 진영은 대부분 동물권과 식물권, 종평등권 등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을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권리로서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이 현상은 상당히 부조리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동등하기 때문에 생명권을 인정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는 세력이, 오직 인간인 태아에 대해서만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생명을 박탈할 자유를 요구한다.

낙태권과 생명권 모두 권리논증을 하지 않고 그저 요구하면 즉각 권리가 된다고 여기는 사고체계가 이러한 부조리를 만들어낸다.

낙태법 개정 사안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는 태아를 헌법적 지위를 가진 인간으로 볼 것인가, 본다면 어느 시기부터 볼 것인가 여부이다. 페미니스트 진영은 태아에 대해 잉태부터 40주까지 전 기간동안 어떠한 헌법적 지위도 갖지 못하는, 사실상 인간으로 보지 않는 법안을 지지한다. 이는 꼭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생명존중을 당연하게 여기는 대중들의 기본적 인식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어긋난다.

낙태권이 진보좌파 진영의 상징적 권리가 된 이유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낙태 문제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립을 상징하는 이슈이고, 개인의 정치성향을 구분할 때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으로도 이용된다. 진보좌파 진영이 낙태권을 지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 낙태는 개인의 신체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지배라는 측면이 있고 전통적으로 국가권력의 권리억압에 저항하는 쪽이 좌파이기 때문이다. 둘째, 낙태는 오직 여성에게만 관련된 일이므로 약자의 권리투쟁을 옹호해온 좌파진영에게 여성이라는 전통적 약자의 보호는 당연한 일이다.

여성의 선택권, 결정권, 안전과 보호를 내세운 낙태권 지지 주장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진보좌파 진영이 낙태권 지지에 적극적인 이유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유가 크다. 계급투쟁에서 정체성 정치로 전장을 바꾼 진보좌파 진영에게 낙태권 문제는 상징적인 의제가 됐다.

낙태법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기 이전에도 한국사회는 사실상 낙태를 처벌하지 않은 비범죄화 상태였다.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든다면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한참 아래쪽에 위치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는 평범한 여성들에게 시급한 권리사안이라 주장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의제였다.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진영에게는 중요한 상징을 갖는 문제고, 진보좌파 진영에게도 보수우파 진영과의 투쟁 면에서 의미가 있는 사안이므로 지속적으로 싸워온 것이다. 보수우파 진영도 마찬가지로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 사안에 맞서왔다.

낙태권을 둘러싼 대립을 보며

오늘날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적인 사안들의 결론은 점점 균형적 해법을 찾기보다 진영 사이 권력투쟁의 결과로서 좌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낙태는 살인이라는 주장과, 낙태는 권리라는 주장 모두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으려 한다.

낙태문제는 이렇게 양분되어 서로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 형국으로 진행됐다. 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중 무엇이 우선이냐는 논쟁으로는 충돌하는 갈등의 해답을 발견할 수 없다. 균형적 해답을 제시해야 할 입법기관의 의원이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있다면 더욱 갈등만 격화된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평화롭게 공존하고 공정하게 협동할 수 있는 규범에 의해야 하고, 이 도구로 유효한 것이 헌법논증인데 남인순 의원과 페미니스트 진영은 그러한 논증과정을 생략하고 당파적 법안을 제시했다.

한편 낙태권에 반대하는 진영 또한 인간이 가진 신체의 자유와 궁극적 선택권을 찬탈하는 면, 여성들의 선택권과 결정권, 자신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꾸려갈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자보건법]은 모체가 전염병에 걸렸거나, 생물학적 부가 범죄자인 경우 등에 낙태를 허용해왔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법은 존재할 수 없는게 원칙이지만 인간 존엄과는 공존할 수 없는 행위를 법적으로 허용해 온 것이 한국사회의 타협점이었다. 여성과 의료진을 사실상 느슨하게 처벌하거나 처벌하지 않아온 것도 일종의 타협이다.

이러한 고민을 담은 타협점을 후퇴시키고 새롭게 갈등을 격화시키는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태아의 헌법적 지위를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권리행사를 전면적으로 금지하지는 않는 않는 공동체적 해법이 마련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남인순 의원의 법안이 균형적 해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그동안 페미니스트 진영의 요구를 수용해온 역사, 권력투쟁의 승리로 결과가 결정되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큰 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 진영이 원하는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다.

공동체의 선택은 때로 옳은 길이 아니라 힘있는 자들이 원하는 길로 향한다. 우리 사회의 현 수준과 질서가 그러한 상태라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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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에 대한 헌법논증은 필자의 저서 <단단한 개인(구매링크> 에 자세히 수록해 두었다.